연세대와 이화여대를 비롯한 주요 사립대학들이 정시모집에서 내신 4등급까지 만점을 주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보도를 내보낸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보도 이후 교육부는 사실상 '내신 무력화' 기도라며 제재방침을 밝혔고, 대학들은 하루만에 말을 바꿔 확정된 게 아니라며 한 발 물러섰습니다. 이후 대통령의 지시로 범정부차원의 대응방안까지 나왔습니다. 내신 2등급까지 만점을 주겠다는 서울대의 올해 입시안도 제재대상에 포함됐습니다. 그러나 서울대는 지금 입시안을 바꾸면 혼란이 가중되는데다 사립대의 방침과 서울대의 입시안은 질적으로 다르다며, 입시안을 그대로 강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서울,경인지역 입학처장협의회는 오늘 오전 긴급회동을 갖고 이르면 다음달초까지 내신 반영률과 관련된 대학들의 입장을 정리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러는 사이 교육부 홈페이지에는 이번 사태에 대한 찬,반 댓글이 6백건 넘게 올라왔습니다. 내신과 관련된 논란 속에서 특목고와 일반고, 그리고 재학생과 재수생 사이에서 희비가 엇갈리고 있지요. 여기까지가 지난주초 SBS가 단독보도한 이후 벌어진 '주요 사립대 내신 무력화'와 관련된 사태의 전말입니다.
내신의 40%에 해당하는 4등급까지 만점을 주겠다는 일부 사립대학의 움직임은 서울대가 단초를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립대학들은 서울대의 입시안을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4월 6일 입시안을 발표한 서울대는 내신 2등급까지 만점을 주겠다고 밝혔지만, 정시모집 2단계에서는 수능성적을 반영하지 않고 내신과 논술, 면접, 구술고사 성적으로 당락을 가르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수능성적은 1단계 통과기준으로만 사용하겠다는 것이죠. 특히 사립대학의 평어(수,우,미,양,가) 중심 전형과 달리, 서울대는 석차 백분율로 평가를 하기 때문에 내신 중심으로 전형을 한다고 서울대는 밝혔습니다. 게다가 수능 없이 내신과 특별전형 위주로 선발하는 수시모집 인원의 전체의 절반을 넘는 55.7%를 차지 하기 때문에 서울대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서울대는 오늘 교육부가 정시모집 일반전형에서 내신 1·2등급에 만점을 주는 2008학년도 입시안을 두고 제재 가능성을 시사한 데 대해, "입시안을 바꿔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며 기존의 입시안을 그대로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서울대는 올해부터 학생부 교과, 비교과, 논술, 면접의 실질 반영률을 명목 반영률인 4:1:3:2에 맞추기로 해, 내신의 영향력이 크게 강화됐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입장 변화가 없다는 서울대측의 논리도 일면 타당한 것은 사실입니다. 다양한 전형방식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고, 수능성적을 아예 안 보거나 1단계 통과기준만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내신 석차 백분율 10%까지 학생을 선발했기 때문에, 9등급제로 변화된 이번 학생부에서 백분율 11%까지의 학생에게 만점을 주겠다는 입장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서울대의 이런 논리도 자신들만의 입장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적인 태도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국내 최고 대학인 서울대에서 내신 2등급까지 만점을 주겠다고 한다면, 다른 대학들은 어떻게 학생들을 뽑으려고 할지 진지하게 따져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립대학의 '내신 무력화 방침'을 두둔하는 건 아니지만, 서울대가 다른 대학들은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2등급까지 만점을 주겠다는 서울대가 3-4등급까지 만점을 주겠다는 사립대학과 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질적으로 다른다는 주장의 근거는 허술합니다. 지난해 선발한 학생의 석차 백분율이 10%였기 때문에 9등급제에서 11%에 해당하는 2등급까지 만점을 주겠다는게 서울대의 논리인데요, 이는 1등급(4%)과 2등급(7%)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9등급제로 변화된 학생부에는 등급외에 원점수와 과목평균, 표준편차가 함께 제공됩니다. 같은 등급의 학생이라 하더라도 원점수와 표준편차 등으로 얼마든지 세분화될 수 있습니다. 지난해까지 절대평가의 성취도만을 제시한 학생부와 올해 학생부가 달라진만큼, 이를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입시안을 바꿔야 하지만 서울대는 그렇게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서울대가 간과한 게 있다면, 1등급을 더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일 겁니다. 또 같은 1등급 내에서도 표준편차가 다른 학생이 얼마든지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서울대가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는 게 있다면, 그건 결국 내신의 변별력이 약하다는 점일 것입니다. 내신의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건 사실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닌데다, 비단 서울대만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다음 기회로 논의를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1등급과 2등급의 차이를 두지 않는 건 학생부 비중을 강화하는 현행 입시정책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라는 점은 거듭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럼 주요 사립대는 왜 4등급까지 만점을 주면서까지 학생을 선발하려는 것일까요? 앞서 얘기한대로 2등급까지 만점을 주기로 한 서울대가 단초를 제공한 부분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현행 학생부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내신의 변별력이 매우 약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연세대도 전체의 40%에 해당하는 4등급까지 만점을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그동안 어떤 고등학교가 절반에 가까운 학생을 연세대학에 보낼 수 있었을까요? 서울 강남에 있는 웬만한 고등학교조차도 졸업생의 절반을 연세대에 보내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연세대를 비롯해 서울대와 고려대에 졸업생의 절반을 보낸 고등학교들이 있습니다. 바로 특목고입니다. 서울지역의 6개 외고 졸업생의 절반이 지난해 입시에서 서울대와 연,고대에 합격, 등록했습니다. 일반고에서는 기껏해야 전교생의 4-50명 보내는 수준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높은 합격률입니다. 연세대를 비롯한 주요 사립대학들은 이렇게 해당 학교를 지원하는 특목고생들을 뽑고 싶은 속셈을 갖고 있습니다. 내신은 4등급 이하로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외국어 실력이 뛰어나고 수능 성적도 높게 나오는 학생들을 다른 대학에 뺏기고 싶지 않은 것이지요. 그래서 내신 4등급까지 만점을 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예년에도 평어에서 '우'까지 만점을 줬기 때문에 4등급까지 만점을 주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주요 사립대학의 변명은 서울대와 별반 다를 게 없는 논리로 판단됩니다.
2008학년도 대입 제도 개선안은 지난 2004년 10월에 발표됐습니다. 일선 고교의 성적 부풀리기에 따른 내신 불신 문제와 수능 중심 입시로 무너진 공교육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이번 참여정부 시작 단계에서 내놓은 교육대책이었습니다. 일부 학생들은 학업부담이 가중된다며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고 주장했고 잇따라 촛불집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지난 2005년 서울대는 통합교과형 논술고사를 보겠다고 발표해 본고사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교육부는 이른바 '논술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논술 광풍을 잠재우기도 했습니다. 이어 같은해 12월 7개 사립대학에서 정시기준으로 학생부 반영률을 40%로 확대하고, 논술반영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듬해인 2006년 5월에는 24개 대학 입학처장이 모여 학생부 반영비중을 50%로 확대하고, 대학별고사를 최소화하면서 대입전형을 다양화하겠다고 발표했지요. 올해 입시안을 놓고 지난 4년간 끊임없이 논란과 혼란이 지속돼 왔고, 입시를 불과 5개월 앞둔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 없는 것 같습니다.
교육을 담당하는 기자로서 저는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을 100% 지지하지 않지만, 공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성적, 등수 지상주의'에서 탈피하는 부분입니다. 올해 입시에서 수능성적도 등급으로만 표시되고, 학생부도 등급으로 표기돼 제공됩니다. 모든 학생들이 학생부와 수능에서 각각 9등급 내 어딘가에 분포되는 겁니다. 1-2점 차이로 희비가 엇갈리는 과거와 달리, 일정 수준이 학생들이 하나의 등급에 분포되는 것이 이번 입시안의 핵심입니다. 물론 1등급이나 2등급 내에 들기 위해 서로 공책도 빌려주지 않고 예전보다 더 치열하게 경쟁하게 된 폐해가 생겨나기도 했지만, 역으로 1-2점 때문에 당락이 결정되지는 않도록 대입 전형이 개선된 것도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5등급 절대평가로 변별력이 전혀 없는 내신 때문에 오로지 수능으로만 집중된 과거와 달리, 상대평가에 의거해 석차등급과 원점수와 과목평균, 표준편차를 함께 제공해 변별력을 예전보다 향상시킨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시골 학생과 서울 학생의 내신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말입니다.
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수험생 여러분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건 지금 당장 제도가 바뀌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다행히 이번 입시는 수험생들이 잘 알고 있다시피, 전형방식이 매우 다양합니다. 수시와 정시모집이 있고, 수시에서는 수능을 보지 않고 학생부나 기타 특별전형으로 학생을 선발합니다. 또 정시에서도 내신을 보지 않고 수능만으로 선발하는 방식도 있고 논술과 내신, 수능을 함께 보는 전형이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전형방식을 선택하고 입시를 준비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내신 비중이 약화되건 내신 비중이 강화되건, 자신의 내신 성적에 따라 가장 유리한 전형방식과 대학을 선택해 지원하면 됩니다. 혼란스런 입시제도 탓에 제일 피해를 본 게 수험생들이지만, 조금 답답하더라도 바뀐 제도에 따라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전형방식을 선택해 지원하는 길이 가장 바람직 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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