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노조(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가 국민적 우려를 외면한채 정치파업을 되풀이하는데 대해 울산시민들은 노동계의 요구만 대변하는 것으로 정당화 될 수 없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터뜨리고 있다.
특히 이번 한미FTA 비준 반대파업은 지난 해에 이미 같은 이유로 수 차례 파업했고 그 결과 연간 생산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성과금 지급을 놓고 연초부터 온 나라가 시끄럽도록 회사와 싸운지 불과 수 개월만에 또 다시 정치적 이슈로 파업하는 것이어서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18일 현대차에 따르면 노조의 정치파업은 단일 사업장 국내 최대 규모의 엄청난 폭발력으로 민주노총과 과거 현대그룹노조총연합(현총련)의 각종 대정부 투쟁 선봉에 서면서 시작됐다.
노조 집행부는 거의 매년 비정규직 처우개선, 노동법개정 반대, 정리해고 반대 등 법적으로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문제들을 들고 나와 임단협을 재계와 노동계, 노동계와 정부간의 대리전 양상으로 몰아갔고 이를 통해 노동계 내 입지를 강화시켜 왔다.
이 회사 노조의 대표적인 정치파업은 지난 1996년 12월 말~1997년 1월 말까지 계속된 '개정 노동법 반대' 파업이다.
1996년 12월 말 상급단체의 복수노조 허용시기를 유예하는 개정 노동법이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되면서 상급단체로서 합법화를 노리고 있던 현총련의 꿈이 무산되자 현총련의 연대투쟁 선봉에 서서 20여 일간 파업해 회사에 자동차 8만4천여 대의 생산손실을 입혔다.
회사에서는 파업을 주도한 노조 간부들을 고소하고 재산을 가압류 한 것은 물론 급기야 휴업조치까지 내렸다.
1998년에는 정리해고제 도입을 반대하는 민주노총의 대정부 투쟁과 회사의 임단협이 맞물려 30여 일간 파업해 10만4천여 대의 생산손실을 입혔다.
2000년대 들어서는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차별철폐 및 처우개선 요구를 매년 임단협 때마다 '별도요구안'으로 들고 나와 임단협과 국내 노동계의 정치적 현안협상을 병행하는 양상으로 전개됐다.
이런 가운데 2002년 2월에는 철도.발전노조 등 공공노조 파업에 연대투쟁하면서 1차례 파업했고, 2003~2005년에는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차별철폐 투쟁 등에 동참해 매년 1~2차례씩 파업하고 잔업도 거부했다.
지난 해에는 2~4월 민주노총의 비정규직법안 저지투쟁에 동참해 4차례 파업했고 11~12월에는 한미FTA 반대와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 등 민주노총의 4대 요구안 쟁취투쟁을 주도하면서 8차례나 부분파업했으며, 수 차례 잔업과 특근도 거부해 결국 연간 생산목표를 98%밖에 달성하지 못했다.
회사는 "지난 해 노조의 정치파업으로 자동차 2만7천여 대의 생산손실이 발생했으며, 정치파업만 하지 않았어도 생산목표를 100%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생산목표 100% 달성 때 150%, 95% 이상 달성 때 100%'의 성과금을 지급하기로 한 임금협상 합의에 따라 연말 성과금을 100%만 지급했고 노조는 이에 강력 반발해 올초 잔업과 특근을 거부하고 파업까지 벌여 따가운 국민적 비난을 받았다.
울산시민들은 "현대차 노조가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핵심 세력이기 때문에 노동계의 요구를 대변할 수는 있겠지만 회사의 생산손실과 전체 조합원의 임금손실을 담보로 하는 정치파업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이상욱 금속노조현대차지부장은 "노동현장에서 파업하는 것을 정치파업과 노동자권리 찾는 파업으로 이분화하기 어렵다"며 "특히 이번 파업은 한미FTA가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생존권과 국가경제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울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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