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 7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아제르바이잔의 '가발라' 레이더기지를 공동 사용하자고 제의한 것은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MD) 추진 계획을 무력화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이는 체코에 MD 레이더 기지를 설치하지 않더라도 2002년부터 러시아가 사용중인 가발라 기지를 보완함으로써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모든 (방어)시스템은 유럽 전역을 커버할 수 있고 미사일 파편이 해상에 떨어지게 함으로써 자칫 유럽 국가에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해야 한다"고 밝힌 것도 가발라 기지가 체코에 세워질 MD 레이더 기지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또 "가발라 기지를 활용하는 것이 유럽 국경에 우리(러시아)의 군사장비를 배치하는 것을 불필요하게 만들 것"이라면서 가발라에 공동 방어기지를 세우면 유럽에서 미국과 불필요한 군비경쟁을 할 필요가 없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러시아 전문가들도 가발라 기지는 체코 기지를 대체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라면서 이번 기회에 미국이 추진하는 MD 계획의 진정한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주장대로 동유럽 MD 기지가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대한 방어를 주요 목표로 하고 있다면 미국측이 푸틴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만일 거부한다면 러시아의 주장대로 미국은 동유럽에 MD를 배치함으로써 러시아를 겨냥하고 있다는 방증이 되는 셈이다.
러시아 정치군사평론가인 알렉산드르 흐람치힌은 "푸틴의 가발라 기지의 공동 사용 제안은 미국의 MD 계획에 대한 진정한 의도를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밝혔다.
모스크바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이메모)의 알렉세이 아르바토프 연구위원은 "가발라 기지는 터키에서부터 파키스탄에 이르는 넓은 권역을 커버할 수 있는 만큼 러시아, 미국, 아제르바이잔에 공통의 이익이 되는 것이며, 푸틴의 제안은 옳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가발라 기지의 활용이 러시아와 미국간의 대치 국면을 조정하고 체코에 레이더기지 설치를 필요없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일간 베도모스티는 8일 푸틴의 제의는 미국이 유럽에 MD 배치를 거부하도록 만들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동유럽에 MD를 갖다놓는다면 이는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크렘린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일부 러시아 언론은 가발라 기지 활용 문제를 미국이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며 미국 정부도 사전에 알고 검토해왔다고 전했다.
일간 코메르산트는 8일 러시아와 미국의 전문가들이 최소한 2주일 전부터 이 문제를 논의했다면서 러시아측은 가발라 기지를 공동 사용할 경우 폴란드와 체코의 MD 기지가 무의미해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반면 백악관측은 3곳(아제르바이잔, 폴란드, 체코)에 MD를 배치하는 것을 의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 당국 간에 가발라 기지 활용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 미국측에 사전에 통보했을 것이라면서 부시도 푸틴의 제안을 사전에 숙지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미국 정부는 체코의 MD 기지를 무력하게 만들 가발라 기지를 활용할지, 아니면 러시아의 제의를 거부할지를 놓고 어려운 선택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실제 푸틴 대통령은 7일 부시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알리예프 대통령과 가발라 기지 문제를 논의했다고 말했다.
아제르바이잔 외무차관은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 외무장관 간에 최근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며, 아제르바이잔 당국은 러시아, 미국과 양자 및 3자간 협의를 할 준비가 돼있다고 밝혔다.
(모스크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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