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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제론 단상...

중도개혁통합신당(대표:김한길)과 민주당(대표:박상천)이 어제(4일) 마침내 합당을 선언했습니다.

국회 본청 귀빈식당에서 열린 합당선언식에는 100여 명의 취재진이 몰려, 근래 보기 드문 열기를 발산했습니다.

이런 열기에 고무된 듯 김한길 대표와 박상천 대표는 준비된 합당합의문등 외에 별도의 인사말까지 했습니다.

김 대표가 먼저 따로 준비했다면서 "우리는 대통합을 위해 필요하다면 지난 2월 집권여당을 떠날 당시의 결단을 다시 할 수도 있다."고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랬더니 먼저 자기 순서를 마치고 앉아있던 박상천 대표도 "저도 인사말을 하겠다. 12월 대선 승리를 위해서 오늘 합당을 하는 것이다."고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아마도 이 합당을 두고 대선이 아닌 내년 총선용 소통합이라는 열린우리당측 비난을 염두에 둔 발언인 듯 했습니다.

기자들의 관심은 그러나 배제론에 있었습니다.

배제론이란 쉽게 말하면 민주당 박상천 대표가 "이념이 지나치게 왼쪽에 치우친 사람들과 현 정부 국정실패에 연루된 사람들로서 열린우리당의 심볼처럼 돼 있는 사람들은 통합민주당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한 논리를 말합니다.

김근태, 천정배 두 사람은 이념성향 때문에, 정동영 전 의장은 심볼이기 때문에 같이 하기 힘들다는 강력한 의사표시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배제론 때문에 두 당의 합당도 물건너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전격적으로 합당이 이뤄진 것은 바로 배제론이 합의문에서 빠졌기 때문입니다.

김한길 대표는 "두 당이 합당하면서 합당합의문을 능가하는 것은 없다. 합의문에 나온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된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즉, 배제론은 폐기된 것이라는 강력한 의사표시였습니다.

그런 줄 알았는데 박상천 대표가 어제 합당선언식이 끝난 뒤 국회 민주당 대표실에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배제론이 철회됐다고 확대해석하지 마라. 두 당 사이에 의견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굳이 배제론 부분을 합의문에 넣을 이유가 없기에 내가 넣지 말자고 한 것뿐, 배제론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이지요.

두 대표의 말이 이렇게 다르니 기자들 사이에서는 "도대체 배제론은 죽은 거야, 산거야?"하는 의문이 사라질 수가 없었습니다. 혹자는 "이 건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니여"라고 우스개 소리도 했고요.

그런데 박상천 대표가 배제론을 강하게 얘기하던 도중 의미심장한 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국민들이 괜찮다 하면 그 때는 보다 유연해질 수 있습니다."는 것이지요.

박 대표의 한 측근은 "유연이라는 말에 좀 더 초점을 맞춰주기 바란다."고 했습니다.

결국 박 대표가 합의문에도 빠져있는 배제론을 강하게 얘기하는 것은 정말 다양한 성향의 인사들이 포진해 있는 당내부 단속용이라는 얘기로 들렸습니다.

민주당의 원외인사들은(제가 예전에 출입해봐서 민주당의 정통을 자랑하는 당원들을 많이 봐서 잘 압니다. 당에 대한 애정과 정치판을 읽는 눈,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무한한 충심등에 있어서는 모두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들이죠)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주역들에 대해 여전히 강한 분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2002년 대선 승리의 주역 민주당이 3년 넘는 세월 풍찬노숙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열린우리당쪽 사람들에게 찾고 있는 거죠.

상황이 이러니 박상천 대표도 이들의 눈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그 측근들 얘기입니다.

물론 이 측근들도 저한테 말할 때는 "배제론은 유효하다, 어떻게 그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하나?"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단 둘이 있을 때는 슬며시 말의 강도가 약해지더군요.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배제론 때문에 뭔가 일이 크게 틀어지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정치라는 게 생물 같아서 언제 어디에서 배제론 말 한마디로 두 당의 합당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 어제 합당선언식이 끝나면 두 대표들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순서가 없어졌는데요, 통합신당측 한 의원이 이런 뒷얘기를 전했습니다.

"민주당측에서 요청이 왔다. 합당선언식 주변에 민주당의 특무상사들(위에서 언급한 열성당원들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이 많이 와있는데 혹 배제론 관련해 폐기됐다는 등의 얘기가 나오면 이들이 항의하면서 합당선언식이 모양 좋지 않게 끝날 수 있다. 그러니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것은 안하는 걸로 하자고 제안해왔다. 우리도 생각해 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어서 동의했다."

결국 기자들은 그 혼란스런 와중에 두 대표를 따라 계단을 뒷걸음질 치면서 질문 공세를 퍼부어야 했습니다.

카메라 기자들한테는 늘 위험한 순간입니다. 뒷걸음치다 한 번만 헛디디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김한길 대표는 그럼에도 끝내 카메라앞에서의 인터뷰는 고사했는데요.

차를 타기전 저한테 이러더군요. "합의문이 최고입니다. 그리고 그 합의문이 깨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민주당 대표실에서 여유있게 기자들의 질문을 받던 박대표는 이제 그만하자는 유종필 대변인의 제지를 제가 뿌리치고 두마디 정도 더 질문했더니 "어이,유대변인 가만히 계쇼.뭐가 이해가 안된다는 건지 내가 이해가 안되네. 자세히 얘기해 봅시다."고 했습니다.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해야 직성이 풀리는 박 대표의 진면목이 또한번 드러나는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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