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다 갔습니다. 오늘이 5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이제 내일이면 새 달을 맞는다는 기대감보다 5월 한 달 동안 우리는 중도개혁세력의 대통합을 위해 무엇을 해냈나 뒤돌아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제 벼랑 끝에 서 있다, 시간이 없다 이렇게 말씀은 하고 있지만 어찌보면 이제 6월 들어서면 벼랑에서 떨어지고 있는 건 아닌가 심각한 답답함이 있다는 말씀드립니다."
지난 5월31일 김한길 중도개혁통합신당 대표가 의원총회에서 던진 말이다. 정말로 이제 6월이다. 대선도 여섯달 정도가 남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범여권은 사분오열의 상태에서 변변한 후보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벼랑 끝에 선 게 아니라 벼랑에서 떨어지고 있다는 김한길 대표의 말에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시간에 밀린 탓일까? 드디어 범여권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지난 4월 통합 직전에서 결렬된 경험은 있지만 중도개혁통합신당과 민주당이 협상 재개 열흘만에 또 다시 협상타결 임박을 시사하고 나섰다. 감정 싸움으로 까지 번졌던 지도체제 문제도 공동대표제로 합의했다는 전언이다. 남은 것은 박상천 대표가 줄 곧 주장해온 배제론. 양당 협상단에서는 이 문제도 의견접근을 봤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어떤 인사는 배제한다는 표현 대신 어떤 세력을 통합대상으로 한다는 표현으로 바꿨다고 한다. '배제'라는 단어가 갖는 배타성과 부정적인 이미지를 중화시키고자하는 의도로 보인다. 현재 "중도개혁노선에 동의하는 세력", "국정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로운 세력"을 통합의 대상으로 한다는 선에서 논의가 진행중이라고 양당의 관계자들은 전한다. 6월 3일쯤 합의내용을 발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양당의 통합협상이 이렇게 급물살을 탄 데는 열린우리당의 움직임이 상당 부분 작용한 걸로 보인다. 그 동안 양당의 통합을 소통합이라며 반대해온 열린우리당이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6월초 시민사회진영이 정치세력화를 선언하면 대통합 추진기구를 띄우겠다는 구상을 제시하며 세 규합에 나섰다. 정세균 의장은 최근 최윤 통합번영 미래구상 집행위원장을 만나 "시민사회세력이 먼저 신당을 만들면 모든 것을 버리고 참여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비례대표 의원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출당조치를 할 것이라며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당해체 자체도 불가능하다"고 말해 사실상 당해체도 불사하겠다는 의사까지 밝혔다고 한다. 비장감마저 느껴지는 대목이다.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이런 결행은 최근 당 내에서 불거지고 있는 2차집단탈당 움직임 때문이다. 정대철 상임고문이 주도하는 탈당파는 이미 6월 15일에 탈당을 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다만 지도부가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면 하겠다고 단서를 달았다. 지도부로서는 더욱 절박할 수밖에 없다.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한 대통합 움직임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그 간 특정인사 배제론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던 중도개혁통합신당과 민주당도 사정이 급해졌다. 기왕에 할 통합이라면 시기를 앞당겨 정대철 상임고문과 김덕규, 문학진 의원 등 열린우리당 추가 탈당파와 전병헌, 이강래 의원 같은 잔류파도 함께 끌어 안겠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대통합파와 소통합파 간의 주도권 경쟁이 불붙은 셈이다. 거기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박상천 대표와의 면담에서 막판 후보단일화를 주장한 박 대표에게 대통합을 주문하며 압박한 것도 양당 간 통합협상을 급진전 시킨 원인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성공여부다. 먼저 중도개혁통합신당과 민주당의 통합은 아직도 장담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본인들도 인정하고 있다. 역시 문제는 배제론이다. 협상단 간에 의견접근을 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그런 합의가 받아들여질지가 문제다. 당장 양당 내에서 배제론에 반대하는 세력이 적지 않은 만큼 합의안을 만들었다 해도 양당의 추인기구에서 이를 통과시켜줄지 확실치 않다. 특히 대통합의 밀알이 되겠다고 선언한 중도개혁통합신당의 분위기가 만만치 않다.
어렵긴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다. 탈당파를 막기 위해 최후의 카드를 뽑아들었지만 스스로 나설 수가 없는 한계는 바뀐 게 없다. 시민사회세력이 나서 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의견일치를 보기 어렵고 일 처리가 더딘 시민사회의 속성상 열린우리당이 원하는 시한에 맞춰 움직여줄 지 의문이다. 또 움직인다 해도 열린우리당이 바라는대로 해줄 지 역시 의문이다. 그대로 지리멸렬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벼랑 끝에선, 아니 벌써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지도 모를 범여권이 드디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장담하기 이르다. 아직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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