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은 자상하면서도 엄한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식들을 친구처럼 허물없이 대할 줄 아는 분이셨습니다."
25일 97세로 세상을 떠난 국내 최고령 문인 피천득 서울대 명예교수. 벌써 수십 년 전에 분가한 자식들이지만 그들의 기억에는 여전히 "친구같이 편하고 허물없는 부친"의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큰아들 세영(사업)씨는 "특이하게도 아버님과 우리 사이에는 어떤 비밀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며 "항상 친구처럼 대해주셔서 무엇이든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작은아들 수영(서울 아산병원 소아과 의사)씨도 "우리는 '아버지'라는 호칭보다는 '아빠'라고 불러왔다"며 고인이 상당히 소탈하고 탈권위적인 부친이었음을 전했다.
생전 부친의 인상 깊었던 모습에 대해 세영씨는 "여름철 학교에서 강의하고 지친 모습으로 돌아온 뒤 찬밥을 물에 말아 맛있게 잡수시던" 모습을, 수영씨는 "한국전쟁 당시 추운 겨울날 잡곡밥을 먹고 있던" 장면을 떠올렸다.
세영씨는 "누구나 가난했던 그 시절 체구도 작은 아버님이 그렇게 식사를 하는 모습이 무척 안타깝게 보였던 것 같다"며 씁쓰레했고, 수영씨도 "바로 얼마 전 아버님을 모시고 코엑스 근처 목욕탕에 모시고 가 때도 밀어드리고 했었는데…"라며 생전 부친의 모습을 그렸다.
평소 고인이 "내 일생에는 두 여성이 있었다. 하나는 나의 엄마고 하나는 서영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애지중지 사랑한 딸 서영씨. 부친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22일 부랴부랴 미국에서 귀국한 그는 아버님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느냐"며 깊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1910년 5월29일 태어난 고인의 장례 날짜는 29일로 잡혔다. 공교롭게도 고인이 세상에 태어난 날 다시 세상을 떠나게 된 것.
유족들에 따르면 고인은 어떤 유언도, 유고집도 남기지 않았다. 다만 평생 입버릇처럼 말해오던 "항상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라"는 한 마디를 자식들 가슴 속에 심어주고 떠났다.
세영씨는 부친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돌아가시기 1-2시간 전까지도 의식이 남아있었다"며 "편안하게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고인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까닭에 29일 오전 7시 장례식장인 서울아산병원에서 천주교 조규만 주교 주례로 장례미사가 열릴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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