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0여년 전 어느 소아과 의원의 모습입니다. 아이 둘을 데리고 한 엄마가 진료실로 들어 옵니다. 한 하나는 업었고 또 한 아이는 손을 잡았습니다. 업힌 아이는 엄마 등에서 잠이 들었지만 엄마 손을 잡은 아이는 울면서 엄마 손을 뿌리치려 하고 있습니다.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 됐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아이 손을 놓지 않고 의사 선생님 앞에 앉습니다. 선생님은 근엄한 얼굴로 아이를 살피더니 아이의 입을 벌리라고 한 뒤 소독한 쇠 숟가락 같은 것으로 혀를 누르고 목을 들여 다 보십니다. 선생님의 근엄한 모습에 기가 죽어 울음이 그칠 것 같던 아이가 갑자기 더 크게 울어댑니다. 등에서 자던 동생이 깨나 이상한 상황을 보고 덩달아 울어댑니다. 두 아이가 울어대는 바람에 엄마는 우는 아이들을 달래느라 어쩔 줄 몰라 허둥댑니다. 그 때 근엄하신 의사선생님이 갑자기 소리를 치십니다. "아니 아이가 이지경이 되도록 뭐했어요? 빨리 왔어야지!!" 울던 아이들도 선생님의 고함에 갑자기 울음을 멈추고 조용해 집니다. 의사선생님은 간호사에게 "주사 두 대 놔주고 약 지어 드려요." 그리고는 "다음 환자!!" 하십니다. 엄마는 아이들을 챙겨 진찰실에서 나간 뒤 주사 맞히고 약 지어서 집으로 갑니다. 또 아이들이 아프면 그 병원으로 향합니다.
최근 환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병원들을 취재했습니다. 서울 강서구에 있는 소아과였습니다. 이 소아과에서는 병원 분위기를 조금도 느낄 수 없습니다. 대기실은 아이들 놀이기구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또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응접 세트에서 엄마와 아이들이 앉아서 순서를 기다립니다. 기다리기 지루하지 않게 어린이용 만화 영화가 방영되는 TV를 틀어 놓았고 엄마들을 위해 여성용 잡지를 비치했습니다. 한 엄마가 아픈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진찰실로 들어갔습니다. 아이를 진찰하는 선생님은 아주 작은 의자에 앉았습니다. 아이의 눈 높이에서 진찰하시려 했다고 하십니다. 또 따뜻하고 친절하게 아이의 상태를 살피십니다. 그러더니 간호사에게 아이를 주사실로 데려가라고 하십니다. 주사실에 들어서자 벽에 장난감 기차가 '빽 빽' 소리를 내며 달립니다. 아이가 신기한 기차를 보고 있는 동안 간호사는 재빨리 주사를 놨습니다. 아이들이 주사의 공포를 느낄 틈도 없이 주사가 끝났습니다. 의료진들의 복장도 다른 병원과 달랐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그냥 편한 옷을 입었습니다. 환자들은 마치 맘 좋은 동네 옆집 아저씨를 대하는 같은 느낌으로 진료를 받습니다. 간호사들도 예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분홍색 유니폼으로 곱게 입어 환자들과의 거리를 좁혔습니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내과를 찾았습니다. 이 병원은 정말 환자가 많았습니다. 앉아서 기다리는 의자를 많이 비치했으나 아침 일찍부터 의자는 자리가 없습니다. 아침 9시에 진료를 시작하지만 이 병원은 새벽 6시부터 문을 엽니다. 그토록 이른 시간부터 환자들이 몰려들기 때문입니다. 병원의 인테리어나 분위기는 다른 곳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이리도 환자가 많을까? 의문이 생겼습니다. 의문은 진료를 하시는 선생님을 뵙고 바로 풀렸습니다. 어렵게 허락을 받아 의사선생님의 진료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선 선생님은 환자가 들어오면 의자에서 일어나 문까지 나가 맞이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손을 잡고 환자 의자로 안내 한 뒤 환자의 눈을 보시면서 환자의 얘기를 열심히 경청하셨습니다. 어디가 언제부터 어떻게 얼마나 아팠는지. 아픈 것을 치료하려고 어디를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시시 콜콜 얘기하는 환자의 말을 조금도 놓치지 않고 들어주십니다. 특히 환자가 고통을 얘기 할 때는 같이 호응을 해 주셨습니다. 환자의 얘기가 아무리 길어도 조금도 귀찮아 하시지 않고 들어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환자의 얘기가 끝나자 환자의 두 손을 꼭 잡으시더니 아주 따뜻하고 정이 듬뿍 들은 목소리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제가 다 낫게 해 드릴께요. 아무 걱정 마세요." 라고 하셨습니다. 이 소리에 환자는 그 자리에서 두 눈에 눈물이 고이는가 싶더니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의사는 권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흰 가운을 입고 목에는 청진기를 두르고 냉철하고 차가운 눈을 부릅뜨곤 환자를 살폈습니다. 그러나 "아프면 서럽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서러운 사람들은 육체적인 아픔보다 정신적인 아픔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서러운 환자들에게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더 간절한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환자가 있어야 의사 선생님도 있는 것이 아닐까요?' 환자 입장을 생각하고 환자 입장에서 진료를 하는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의사 선생님들이 많아져 이 사회가 더욱 따뜻해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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