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20분이라는 짧지 않은 상영시간, 간간이 등장하는 송강호의 편안한 유머에 웃음을 터뜨렸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괴로웠습니다. 이 쓸쓸한 여인은 어찌 저렇게 지지리 복도 없이 불행하기까지 할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극장문을 나서면서 묘한 행복감이 밀려왔습니다. 감독의 깊고 넓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통찰과 그것을 영화로 유감없이 표현해 내는 재주, 꼼꼼한 만듦새,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전도연, 송강호에게서 최대치를 뽑아낸 연기 등 이런 묵직하고 뻐근한 느낌을 주는 영화를 본다는 감격 때문입니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은 올해 60회를 맞는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습니다. 저도 이 기간에 맞춰 출장을 다녀올 예정입니다. 시사회가 끝난 후 이구동성으로 '칸에서 상 하나 받겠다. 전도연 여우주연상이 유력할 것 같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습니다. 제 생각에도 한국적 특수성을 강조하는게 아니라 외국 사람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라서 칸에서 이 영화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예상을 해봅니다.
영화의 첫 장면, 카메라는 밀양 땅을 비추는 하얀 조각 구름이 걸려있는 눈부시게 푸른 하늘을 비추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하늘은 승용차 안의 앉아있는 신애의 아들 준이 차창을 통해 바라보는 하늘입니다.(이 부분은 영화의 엔딩 장면과 댓구를 이루며 중요한 의미를 던져줍니다.) 남편을 사고로 잃은 신애(전도연)은 6살 아들 준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와 피아노 학원을 꾸리며 새 삶을 시작합니다. 우연히 만난 카센터 사장 종찬(송강호)은 이런 신애에게 호감을 느껴 호의를 베풀며 신애 주변을 맴돌지만 신애는 종찬 앞에서 '아저씨는 속물이예요.'라며 대놓고 무시합니다.
신애의 남편은 불륜을 저질러 신애를 한번 배반했고 결국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신애는 그런 사실을 부정하며 남편의 뜻을 기리는 차원에서 내려왔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합니다. 또 업신여김받지 않기 위해 돈이 많아 밀양에 쓸만한 땅도 투자하겠다며 물색하고 다니는 위악스러운 면이 있는 평범한 여성입니다.
이런 허풍은 결국 아들 준이 유괴돼 살해당하는 비극의 단초를 제공합니다. 한줄기 실낱같은 희망을 키워가던 신애는 다시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처음에는 콧방귀도 끼지 않았던 이웃 약사의 전도에 이끌려 하나님에게 의지하며 절망의 심연에서 수면위로 솟아올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가쁜 숨을 쉬기 위해 노력합니다. 동료 교인들은 진실한 마음으로 이런 신애를 보듬어주고 교회 언저리에도 가본 적 없는 종찬도 주일날 교회앞에서 주차관리 봉사를 하는 열성 신도가 됩니다.
신앙을 통한 기도와 오랜 고민 끝에 복역중인 범인을 용서해주겠다는 쉽지 않은 결심을 한 신애는 교도소를 찾아가 범인에게 자신의 심경과 용서를 전하려 하는데 너무 평온한 얼굴의 범인은 교도소에 들어온 다음날 바로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을 받았고 지금은 하나님의 품안에서 너무나도 행복해한다는 말을 듣고 망연자실 다시 절망에 빠집니다.
이창동 감독은 '밀양'은 '고통'을 다룬다고 밝혔습니다. 그것도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는게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종교와 구원이라는 오래된 주제도 깊숙이 다뤄지는데 시사회 직후 일부 반응에서 특정 종교를 폄하하려 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 감독은 시사회가 끝난 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저는 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보단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신에 대해서 감히 이야기 할 자격도 없고, 그건 제 몫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자기 삶속에서 희망을 찾고 고난을 찾고 의미를 찾을때 신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신의 뜻이 문자로 쉽게 해석할 수 있게끔, 누구나 알 수 있게끔 그렇게 주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는데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송강호 전도연이라는 확실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에게서 여타 상업영화들처럼 명성을 소비하고 이용하는게 아니라 최대치를 끌어냈다는 점도 이 영화의 커다란 장점입니다. 전도연은 하늘 끝에서 땅끝 까지 정도의 높낮이 만큼 큰 감정의 진폭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카메라는 그런 배우 얼굴의 클로즈업 대신 풀샷이나 뒷모습으로 잡아 관객들의 섣부른 감정이입을 차단합니다. 역 앞에서 찬송가를 합창할 때 평온 그 자체의 얼굴과 유괴 전후 또는 신에 대해 절망한 뒤 절규하는 표정의 대비를 눈여겨 보십시오.
신애 주변을 맴돌며 언제나 거기에 그대로 있는 송강호의 자연스런 생활 연기의 매력도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 않는 균형을 잡아나가며 관객들에게 잠깐의 쉬어가는 휴식을 제공합니다. 교회에서 카메라의 초점은 전도연의 얼굴에 맞춰져있고 뒷줄 옆에 앉은 송강호의 표정은 포커스가 나간채 보여지는데 그 장면에서도 이 '괴물' 배우의 존재감은 선명한 전도연의 얼굴에 뒤지지 않는 힘을 발휘합니다. (기자 시사회에서 송강호가 등장해서 평범한 한마디만 던질때마다 객석에서는 거의 자동적으로 '꺄르르..'하는 웃음소리가 터지더군요, 저는 공교롭게 이창동 감독 바로 뒤에 앉아서 표 나눠준 사람을 원망하며 맘대로 웃지도 못했습니다. 또하나! 거의 실성지경에 빠진 신애가 교회 장로님을 유혹해 차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 장로의 단말마적인 대사에서 웃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제일 많이 웃었습니다.-.-)
조연이나 단역으로 나오는 배우들도 대구, 부산, 울산 등 지역에서 연극활동을 하는 배우들을 오디션을 거쳐 뽑아 식상한 맛 없이 신선하면서 자유로운 연기를 보여줍니다. 길거리 오디션이 아닌 학교 오디션을 통해 뽑은 유괴범의 딸 역할로 나오는 배우(송미림)는 '우는 연기를 할때 코끝이 빨개져서 뽑았다. 코가 빨개진다는 것은 몸이 움직인다는 거다.'는 것이 감독의 설명인데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음악도 독특합니다. 아르헨티나 출신 음악가 크리스티안 바쏘가 맡았는데, 주제곡 '크리오요'는 우리 뽕짝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어떤 사람은 신애와 종찬의 멜로드라마로, 어떤 사람은 신애와 신과의 관계를 그린 삶의 영화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관객이 예측가능할 만큼 통속적인 진행을 거부하고 끝까지 고통스럽게 밀어붙이기에 신애의 비극적인 고통에 관객이 통속적인 공감을 안고 객석을 떠나도록 만들지 않습니다. 영화는 관객의 손이나 마음에 무엇을 쥐어주겠다는 욕망에서 자유롭습니다. 그만큼 열린 구조로 각자의 입장이나 위치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열린 구조를 택하고 있습니다. '내가 볼때 잘은 모르지만 세상과 인간은 이런 것 같은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정도의 질문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글거리는 태양같은 거대한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이번 글을 쓰면서 머릿속과 마음속에서 맴도는 느낌은 많은데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저의 능력없음에 절망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씨네21에서 허문영 평론가와 인터뷰에서 이창동 감독의 발언은 영화인들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곰곰이 생각해 볼만한 화두를 던져줍니다.“자신은 씨네필(어린 시절부터 영화 자체의 매력에 빠진 매니아)출신이 아니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영화가 그렇게 윤리적인 매체는 것? 서로 상찬을 하는지 모르겠다....(중략) ...영화라는 매체가 관객과 소통하면서 무엇을 만들어내는지 궁금하다. 아니면 그냥 소비되고 마는 것인지...”(출처 씨네21 602호)
이창동 감독은 20대에 소설가로 데뷔해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다가 93년, 나이 마흔에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에 시나리오와 조감독으로 영화판에 입문한 한국에서는 비교적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초록 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에 이어 점점 깊어지고 숙성하는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이창동 감독의 존재감이 한명의 관객으로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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