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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우유부단은 없다?

노무현 VS 김근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두 전직 의장 간의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집은 무너져가는데 남 탓 공방에 정신이 없다.

먼저 포문을 연 건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 대통령은 탈당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김근태,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구태정치라고 비판했다.

과연 당신들이 열린우리당 창당선언문을 낭독한 사람들이 맞느냐는 것이다. 대통합신당 운운하지만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기 위하여 당을 깨고 만들고, 지역을 가르고, 야합하는 구태정치라는 말이다.

열린우리당 책임론을 의식해 조심스런 행보를 보이던 김근태, 정동영 두 전직 의장들도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특히 김 전 의장의 공격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우유부단'이란 말이 늘 따라다녔던 김 전 의장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보좌관들조차 당황할 정도였다.

정동영 전 의장도  대통령이 양심의 명령을 말하고 있는데, '편가르기 정치'가 '양심의 명령'이냐며 반격하는 등 역공을 폈다. 하지만 역시 이날 취재진을 놀라게 한 건 김근태 전 의장의 날선 공격이었다. 현역 의장 때도 볼 수 없는 모습에 오랫동안 김 전 의장을 담당했다는 모 신문사 기자마저 어리둥절해 했다.

8일, 김 전 의장은 부동산 정책발표회를 한다며 기자들과 만났다. 영상물이 상영되고 내 집 마련대책이 소개됐다. 기자들은 전날 대통령의 공격에 대해 물어볼 요량으로 질의응답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김 전 의장이 먼저 대통령의 편지에 대해 말씀드리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김 전 의장은 정치인 노무현의 꿈을 생각하기에 앞서 노무현을 찍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흐르는 피눈물부터 생각하라고 했다. 수많은 지지자들이 꿈꿨던 개혁이 과연 이런 것이었냐고 반문했다. 그리고는 노 대통령의 비난에 대해 조목 조목 반박했다.


▲ 구태정치 VS 노무현식 분열정치

노 대통령은 구태정치라고 김 전의장을 비판했다. 김 전 의장은 그런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딱지를 붙이고 매도하는 것이야말로 노무현식 분열정치라고 맞받았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이 지난해 외부선장론을 내세워 내부 후보자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어놓고는 정작 외부선장에 해당하는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전 총장까지 이런 저런 품평으로 상처를 내 낙마시켰다며 각을 세웠다. 그런 행태야 말로 구태정치라고 꼬집었다.

▲ 당 해체 주장할꺼면 나가라 VS 너나 나가라

노 대통령은 "당이 어려우면 당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당원에 대한 도리이자 국민에 대한 도리"라며 "가망이 없을 것 같아서 노력할 가치도 없다 싶으면 그냥 당을 나가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그러나 누가 누구보고 나가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맞받았다. 의원 100여명을 갖은 거대정당이라는 기득권이 대통합의 걸림돌이 된다면 당 해체를 통해 기득권을 버리자고 결의한 것이 지난 2.14 전당대회의 총의이고 국민들의 동의였는데 당을 지키자고 말하는 건 합의 위반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대통령이야말로 기득권에 집착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 신당은 지역주의 VS 대통합은 시대정신

김 전 의장은 대통령이 신당 창당을 지역주의로 몰아부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어떤 발언을 문제삼은 건 지는 모르겠다. 다만 자신은 단 한 번도 지역주의와 인연을 맺어본 적이 없다면서 노무현 대통령이야 말로 일관되게 특정지역에 매달려온 사람이 아닌가라며 몰아세웠다. 이른바 영남신당을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 친노 직계를 중심으로 열린우리당을 리모델링해 영남신당을 만들려한다는 가정을 공박한 것으로 보인다.

▲ 명분과 가치중시 VS 그런 게 있었나

김 전 의장은 노 대통령이 명분과 가치를 내세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말 그런 게 있기나 했냐고 반문했다. 당정분리를 외쳤지만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열린우리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탈당하겠다고 협박했고 반미면 어떻냐고 했다가 친미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국민은 물론 지지자들에게 아무런 설명이 돌아섰다고 했다. 이런 식의 무원칙에 무슨 명분과 가치가 있냐고 따졌다.

김 전 의장은 아파트 분양원가공개, 대미관계, 국가보안법 처리, 사립학교법  재개정 등 민감한 사안마다 대통령은 일관된 원칙과 가치를 훼손했고 이 것이 결국 대통령은 물론 당에게 심한 상처를 줬다고 주장했다.

▲ 폭로... 폭로...

명분과 가치를 얘기하던 김 전 의장은 약간 망설이는 듯한 기색을 보이다 말문을 열었다. 지난해 중순 자신이 당 의장을 맡고 있을 당시, 평소 소신으로 갖고 있던 4년 중임제 원포인트 개헌을 언론에 전향적으로 알렸다고 했다. 단임제 하에서는 일단 당선되고 나면 대통령이 선거에 신경쓸 필요가 없어지는 만큼 대통령이 민심에서 멀어지는 걸 막아야한다는 게 당시 언론 인터뷰의 요지였다. 하지만 어느 날 노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와 4년 중임제 원포인트 개헌을 주장한 것은 자신을 비판한 것 아니냐며 비난을 퍼부었다고 했다. 김 전 의장은 그랬던 노 대통령이 얼마 후 자신이 주장했던 원포인트 개헌안을 똑같이 들고 나왔다며 분개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적이 없다고도 했다. 폭로전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질의응답이 끝나자 김 전 의장은 기자들과 악수를 하며 자리를 떴다. 하지만 기자들은 김 전 의장을 잡았고 이런 저런 것들을 물었다. 그런 가운데 김 전 의장은 자신이 살모사 정치를 하고 있다고 한 청와대의 비난을 떠올리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결국 이제 그만 하자는 보좌진이 나선 뒤에야 '정책발표회'는 끝났다.

열린우리당이 해체와 탈당의 기로에 서있다. 사수파도 있다. 5월말이면 결판이 난다고 한다. 몰릴 만큼 몰린 것이다. 노 대통령의 말대로 책임지고 그만둘 생각이 아니라면 '우유부단'이란 단어를 달고 지내온 김 전 의장이라도 날선 발언을 내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당에서 떠날 사람만 떠나는 게 맞는 것인지, 당을 해체하고 대통합신당을 만드는 게 맞는 것인지 판단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정치란 생물이라고 하니까 정답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통령과 당을 믿었던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이런 식의 소모적인 논쟁과 다툼은 멈추는 것이 그들에게 희망을 맡겼던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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