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4월 18일부터 22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경의선과 동해선 열차의 시험운행을 5월 17일에 실시한다는 데 합의했습니다. 합의가 제대로만 실행된다면, 분단 반세기만에 끊어졌던 철길이 열리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아직 조심스러운 이유는?
열차 시험운행이 합의됐음에도 불구하고, 시험운행의 성사에 대해 아직 조심스러운 이유는, 시험운행 실시 하루 전에 행사가 취소됐던 지난해의 경험 때문일 겁니다. 지난해 북한은 열차 시험운행에 합의해 행사 계획까지 다 마련해놓고도, 하루 전에 전격적으로 행사를 취소함으로써 정부를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당시 북한이 시험운행을 취소했던 이유로 들었던 것은, 열차가 군사분계선 지역을 통과하는 데 필요한 군사보장 조치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는데, 사실 정부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열차 시험운행을 날짜까지 확정해 준비할 정도면 군부 뿐 아니라 김정일 위원장의 재가까지 이미 끝났다고 볼 수 밖에 없는데, 갑자기 하루 전에 행사를 취소하면서 군부를 핑계로 들었으니 말입니다. 아마도, 김정일 위원장이 시험운행 하루 전에 갑자기 마음을 돌린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는 군부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군사보장이 관건
지난해의 쓰라린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는 만큼, 정부는 이번에는 군사보장 조치를 확실히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북한에 뒤통수를 맞을 경우, 국내의 비판은 물론 남북 경협에도 상당한 지장이 초래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부 당국자들 말을 들어보면, 북한의 경제관료들이 '이번에는 지난해와 다르다, 군부하고도 얘기가 다 끝났다'는 말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즉, 이번에는 군부하고 사전 조율이 다 끝난 상태니, 안심하고 열차 시험운행을 추진해도 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군사보장 조치를 논의하기 위한 군사회담은 남한 쪽에서 먼저 제의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 북한 경제관료들의 입장이라고 합니다. 얘기는 다 돼 있는 상태지만, 자기들이 군부에 회담을 하라고 직접 말하기는 어려운 상태라는 겁니다.
경제 관료 對 군부
북한의 경제관료들이 군부에 회담을 하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은, 군부가 아직 열차 시험운행을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는 것과 북한의 경제관료들이 아직 군부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경제적 필요에 의해 상층부에서 열차 시험운행을 밀어붙였지만, 군부에 이래라 저래라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지요. (북한은 열차 시험운행을 실시하면 남한으로부터 8천만 달러어치의 경공업 원자재를 받게 돼 있습니다.)
어느 사회주의 사회건 개혁, 개방이 이뤄지는 시기에는 경제개발을 우선시하는 경제관료들과 체제 수호를 우선시하는 보수 군부와의 세력 다툼이 있어 왔습니다. 보통 '紅(이념)과 專(실리)'의 대립으로 일컬어지는 이러한 논쟁은 경제개발을 추진하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피할 수 없는 부분인데, 지금 북한 땅에서 벌어지는 경제 관료와 군부 사이의 대립도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총칼'을 무디게 만드는 '돈'
이번에 열차 시험운행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북한의 경제 관료들은 군부와의 경쟁에서 또 한번의 승리를 기록하게 될 것입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지역의 경제 지역화에 이어, 철도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군사운송 수단이 경제 수단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군부의 퇴조 현상은 앞으로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 경제가 피폐한 상황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제 관료들의 얘기를 군부가 무작정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북한이 선군 정치를 부르짖으며 군대를 중시하고 있지만, 그러한 선군 정치의 근간은 갈수록 허물어져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한 상황에서,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총칼'이 아니라 '돈'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북한에 스며들어가는 '돈'은 갈수록 그들의 '총칼'을 무디게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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