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와 상관도 없고 10여 차례나 중국을 오가곤 했는데 갑자기 입국 거부라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인천에 사는 회사원 장 모(50) 씨는 지난 20일 인천발 국제여객선을 타고 중국 다롄(大連)항에 도착했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주민등록번호의 뒷자리 7자리 숫자 중 앞자리 3자리가 '125'로 시작된다는 이유로 선상비자 발급이 거부된 것.
장 씨는 주민번호 뒷자리가 125로 시작되는 것이 왜 비자 발급 거부 사유가 되는지 따져 물었으나 중국 출입국 당국 공무원은 '상부지시에 따른 것일 뿐'이라며 선상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16시간에 걸친 오랜 항해 끝에 중국에 도착했던 장 씨는 결국 자신이 타고 왔던 국제여객선으로 쫓겨나 배가 출항할 때까지 객실에서 혼자 6시간을 기다려야 했으며 다시 20시간의 항해를 거친 끝에야 인천에 도착할 수 있었다.
23일 인천∼중국 카페리를 운항하고 있는 국제여객선업계에 따르면 이런 일은 다롄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특정 주민번호에 대한 선상비자 발급 거부는 웨이하이(威海), 칭다오(靑島), 단둥(丹東) 등 인천과 국제여객선 항로가 연결된 중국 10개 도시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지난 2월 이후 국제여객선을 탔다가 선상비자 발급이 거부된 여행객만 해도 50여 명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제여객선업계에 따르면 중국측은 지난 2월부터 주민번호 뒷자리가 125 또는 225로 시작되는 한국인에 대해서는 선상비자를 발급하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측으로부터 공식적으로 통보받은 것은 없지만 현지 지인들을 통해 비자발급 거부 사유를 알아본 결과 탈북자들의 입국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의 경우 탈북자 정착지원사무소인 '하나원'이 경기도에 있어 이 지역 출신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주민번호 뒷자리가 남자는 125로, 여자는 225로 시작된다.
중국측은 탈북자들이 중국에 들어와 가족과 친척 등을 한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보고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탈북자들의 입국을 막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문제는 탈북자의 경우만 주민번호 뒷자리가 125, 225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어서 장씨처럼 엉뚱하게 피해를 당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도 안성, 안산, 용인, 김포, 인천시 옹진군 지역에서 태어난 한국인 중 상당수는 주민번호 뒷자리가 125, 225로 시작된다.
이 때문에 이들은 국제여객선을 이용해 중국에 입국할 경우 선상비자 발급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사전에 비자를 발급받아야만 낭패를 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호적등본 등 출생지를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추가로 제출해야 하는 불편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선상비자는 여권과 사진 1장, 비자발급비 20달러만 내면 중국 목적지의 출입국 당국에서 비자를 발급해 주는 편리함 때문에 국제여객선 이용객 상당수가 선호해 왔지만 중국측의 새로운 방침으로 인해 이용객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해졌다.
선상비자가 거부될 경우 국제여객선 이용객은 왕복 운항시간과 출항 대기시간 등 36∼60여시간 가량을 배 안에서 허비해야 한다.
정부 당국 역시 엉뚱한 피해자가 잇따르고 있는 점을 감안, 중국측에 비자발급 거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촉구하는 등 협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행정자치부 주민등록번호 업무 담당자는 "탈북자의 주민번호가 특정되는 것에 따른 문제점이 많다고 보고 탈북자 실거주지에서 주민번호를 부여받을 수 있도록 통일외교부와 협의를 마쳤다"며 "특정 주민번호에 대한 중국측의 비자발급 거부 건에 대해서는 외교통상부가 진위 여부를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인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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