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참극을 보면서 2002년 마이클 무어의 도발적인 다큐멘터리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이 떠오릅니다. 1999년 콜로라도 콜럼바인 고교에서 10대 학생 두 명이 90여발의 총탄 세례를 퍼부어 13명이 목숨을 잃은 끔찍한 참사였죠. 감독은 왜 그들이 총을 들었을까하는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무대뽀 정신으로 무장한 채 좌충우돌 취재를 해댑니다.
대표적인 군수업체 록히드 마틴을 찾아가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하고 미국 총기협회 고위간부인 영화배우 찰톤 헤스톤을 돌발 인터뷰해 우아하고 품위있게 말년을 보내고 있던 스타급 원로 배우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만들고, 아무에게나 총알을 팔아대던 대형할인점 K마트를 찾아가 취재 겸 시위를 벌여 결국 탄약을 매장에서 팔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기도 하고, 가해 학생들이 악마적인 록 음악가인 마릴린 맨슨을 즐겨들었다는 이유로 이 가수가 마녀사냥을 당하자 그를 직접 찾아가 억울하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합니다. 마릴린 맨슨은 인터뷰 말미에 ‘그 가해 학생들이 앞에 있다면 그냥 걔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들어주고 싶다,’는 인상적인 말을 남기기도 합니다.
악동이자 괴짜인 뚱뚱한 이 감독의 좌충우돌 행각에 당혹감을 느끼거나 낄낄거리며 가볍게 보아넘기다가 어떤 부분에서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들면서 점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심각함을 일깨워주는 독특한 다큐멘터리로 2002년 칸 영화제에 46년 만에 다큐멘터리로는 최초로 본선 경쟁작으로 진출했으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최우수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부시 대통령에게 ‘창피한 줄 아시오!’(Shame on You, Mr. Bush)라고 일갈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마이클 무어의 시각이 좌파적이고 급진적이어서 그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이 작품은 탁월한 통찰력을 갖췄다는 극찬을 받은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당시 개봉 했지만 소리 소문없이 사라진 경력이 있습니다. 다행스럽게 비디오와 DVD로 출시됐으니 한번 구해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드러내주는 충격적인 사실은 미국이 총기 소지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할 정도로 건국이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만을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 인디언을 학살하기 위해, 열차나 은행 강도질을 하고 그 강도로부터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법과 공권력 이전에 손 가까이 총을 놓아두는 오래된 전통도 중요한 요인이지만 미국 총기 협회 소속 군수업체들이 이런 이데올로기를 세련되게 개발하고 발전시켜 총기 규제 강화 논의가 법제화 되지 못하도록 꾸준하고 집요하게 정치권에 대한 로비를 한다는 것도 중요한 핵심이라는 사실입니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에 대해 범행 동기, 즉 왜?라는 질문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자신을 차버린 여자 친구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라면 애인에게 버림받은 청춘 남녀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비율이 얼마 정도인지 뒷받침되어야 설득력을 갖출 수 있을 것입니다. 우울증이나 정신이상이 겹쳐서라면 이런 증세를 가진 사람들을 감시하다가 애인에게 버림받는 즉시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해 감시하거나 가둬야 할까요. 용의자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국에 교포나 유학생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는데 비이성적인 야만이 판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나무만 죽어라 꼼꼼하게 들여다보며 분석하고 정작 큰 숲은 보지 못하는 오류에서 벗어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에도 눈을 돌려 관심을 두고 공유하도록 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는 것만 빼고는 점점 살기 좋아진다는데 이런 비극적인 참사가 왜 반복되어야 하는지 답답한 마음에 끄적여봤습니다. 어이없는 참변을 당한 희생자와 그 가족 분들께 멀리서나마 깊은 애도와 조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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