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하면서 만난 수험생들이 ETS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은 분노 이상이었습니다.
170$, 우리 돈 16만 원에 이르는 큰 돈을 내고 시험을 보는데 서비스가 너무 수준 이하란 겁니다.
ETS에 관련된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한국의 토플 수험생이 ETS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왜 다들 이렇게 토플에 몰리는 것인지, 그것도 문제란 생각이 들더군요.
일단 ETS 이야기부터 해보면, 국제공인시험을 운영한다는 곳에서 어떻게 시험을 이런 식으로 운영할까란 생각이 들더군요.
수험생에게 시험에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전하지 않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시험 일정에 대해서요.
접수가 새벽 시간에 개시되거나 하는 문제는 전세계 동일 시간 개시이니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전에 연중 시험 계획 같은 것을 공지해서 접수가 언제 이뤄진다는 것은 당연히 공개해야 하는 것인데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이번엔 4월 10일에 7월분 시험 접수를 하겠다고 한 달 전에 공지를 했다지만, 그나마 이런 식의 공지도 올리는 것 없이 갑자기 접수 시작된다 이런 식이니까 수험생 입장에서야 시험 보는 것보다 접수하는 게 더 힘들다는 하소연이 나올 수 밖에요.
거기다 공지를 올려놓고도 뚜렷한 이유없이 변경을 하고, 변경에 대해서도 사전 공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이후 사과같은 것도 올리지 않으니 수험생이 xTS라고 부르는 것도 이해할 만 합니다.
더욱 답답한 건 마땅한 문의창구가 없다는 겁니다.
저도 토플 관련 취재를 할 때마다 가장 답답한 건데요.
ETS 측의 제대로 된 입장을 한국에선 들을 수가 없습니다.
관련 문제가 생기면 일단 시험의 한국대행기관인 한미교육위원단으로 가지만 여기도 시험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것일 뿐 시험 자체에 관련된 정책이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ETS 측의 입장을 제대로 들을 순 없습니다.
한미교육위원단 측에서 항상 주장하는 게 '우리는 ETS의 입장을 대변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겁니다.
토플 시험은 ETS가 시험 자체를 관리하고, 시험에 관련된 전산 시스템 등은 프로메트릭 이란 회사에서 관리하는데요.
프로메트릭의 한국 사무소가 있습니다. 이게 한미교육위원단과 같은 건물에 있다가 올해 4월, 별도 사무실로 이사를 갔는데요.
여기선 토플의 전화접수를 담당하고 각종 기술적인 문제를 담당합니다.
전화접수란 게 사실 상담원이 전화 받아서 인터넷 접수하는 것이니까 효용은 없다고 봐도 되고요. 문제는 이쪽 역시 상담은 하지만 한미교육위원단과 마찬가지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자기들은 시험에 관련된 정보가 없다는 거죠.
ETS의 공식홍보대행사도 있습니다.
여기도 자기들은 ETS가 요구하는 보도자료같은 것만 낼 뿐, 각종 사안에 대한 ETS의 입장은 알지 못한다는 답변만 돌아옵니다.
수험생 입장에서 도대체 7월 한국 접수가 열리는 건 맞는건지 확인을 하고 싶어도 한국의 어떤 곳에 전화를 하더라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겁니다.
결국 화가 난 수험생, 미국 ETS로 직접 전화를 합니다.
토플 카페에 보면 ETS 전화번호가 종종 올라옵니다.
하지만 ETS 본사가 있는 뉴저지와 한국이 14시간 차이나기 때문에 그 쪽 업무시간이면 우리나라는 한밤중입니다. 또 그 늦은 시간에 비싼 국제통화료를 감당하고 전화를 해도 그리 만족스러운 답변은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왜 이런 문제가 생길까?
ETS 측의 시험 운영이 미숙하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나름대로 전통을 가진 기관인데 왜 이렇게 일처리가 미숙할까...
한미교육위원단 관계자는 iBT 시험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던 것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작년 9월 시험이 시작됐지만, 사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아직 시스템이 완전하게 정비되지 않았단 것입니다.
국내 일정에 대한 공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해선 자신의 추측이란 단서를 달아서 시험장소를 제공하는 국내 대학들과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공지를 할 수 없었던 것 같다고 이야기 하더군요.
어떻게 됐건 '비싼 돈 들여서 시험 보는데 이 정도 서비스도 못 받느냐'란 수험생들의 항의에 해명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 것 같습니다.
ETS에 대해 우리 정부가 국내 수험생 편의를 위해 행정 지도를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구요.
다음으로,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토플 시험에 매달려야 하느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토플이란 시험은 어찌보면 '그들만의 리그'입니다.
원래 취지 자체가 미국 대학으로 유학가는 외국인 학생에 대한 시험이니까요.
우리나라도 유학을 원하는 학생만 시험을 본다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들어 갑자기 토플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요가 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외국어고 입시입니다.
외고열풍이 토플로 옮아간 것이죠.
바람의 진원지인 강남의 대형 영어학원을 찾아가봤습니다.
토플 수험생의 70%가 중고생이란 주장에 대해 아마 그럴 것이라고 합니다.
강남의 중학교에선 반에서 20등 안에만 들면 토플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다른 지역은 이 정도까진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중고생들이 토플에 매달리고 있는 건 분명한 흐름이더군요.
그러다보니 수험생 사이에선 이번 대란의 원인은 강남 아줌마들이란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수험생 사이에서도 논쟁이 후끈합니다.
국내에서 제출할 성적인데 왜 굳이 비싼 돈을 들이면서 외국 시험을 보고 그 때문에 이렇게 대란을 겪어야 하느냐란 주장이죠.
교육부 관계자를 만나봤습니다.
일단 토플이란 영어 시험이 우수한 시험이기 때문에 많은 교육기관에서 채택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만든 영어능력시험도 여럿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텝스죠.
교육부에서도 국내 기관엔 국내에서 만든 영어능력시험을 채택할 것을 권하고 있지만, 이것을 강제할 수 있는 건 아니죠.
외고와 대학에서 우수한 학생 뽑기 위해 우수한 영어시험인 토플을 사용하겠다는데 교육부가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순 없는 것이니까요.
대신 토플을 대체할 수 있는 우수한 영어능력시험을 제공해야겠죠.
FTA 협상 기간엔 교육 개방 문제가 걸려있었기 때문에 국가가 인증하는 영어능력시험 개발에 대해 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면서 현재 시험 개발 중에 있고 내후년엔 시험 적용할 것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3년 안에 요즘같은 토플 광풍은 잡을 수 있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하더군요.
이런 일이 일어난 건 영어란 게 한국에서 가지는 특수한 위치 때문이란 생각도 듭니다.
ETS가 작년 한 해에만 토플 응시료로 챙긴 돈이 195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제 ETS에겐 원래의 목적대로 유학생을 위한 시험 응시료만 주고, 나머지 국내에서 필요한 건 국내에서 유통할 수 있도록 대체재가 빨리 도입돼야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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