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여의도에 벚꽃 축제가 한창인 걸 보니, 봄이 무르익어가고 있나 봅니다. 행복한 봄날 보내고 계시지요? 오늘은 피아니스트 아르헤리치의 공연을 보고 나서 쓴 글,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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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여제' 아르헤리치를 드디어 '알현'하고 왔다. 어제 LG아트센터에서 열렸던 '한일문화교류 스페셜 콘서트'. 매년 벳푸에서 여는 '아르헤리치 음악제'의 서울 공연 형식으로 열렸기 때문에, 공연 이름은 '아르헤리치 내한공연'이 아니라, '한일문화교류 스페셜 콘서트'였지만, 이 공연이 '스페셜'한 가장 큰 이유는 아르헤리치가 출연한다는 것이었으리라.
김의명-정명화 씨의 첫번째 곡 헨델의 파사칼리아, 이성주-가와모토 요시코-정명화 씨가 연주한 도흐나니의 두번째 곡이 연주되는 동안은, 이 분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아르헤리치를 맞이하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처럼 여겨졌다면 과장일까.
두번째 곡이 끝나고 나서도 꽤 긴 기다림 끝에, 혹시 무슨 일이 있나 객석이 궁금증으로 웅성웅성해질 무렵, 드디어 아르헤리치가 등장했다. 검은 드레스 차림에, 이제 백발이 다 된 긴 머리를 흩날리며. 수수한 할머니 같지만, 한편으로는 '백발 마녀'의 카리스마를 풍기는 아르헤리치. 드디어 이렇게 보는구나!
아르헤리치는 일본의 피아니스트 이토 쿄코(아르헤리치 페스티벌의 프로듀서이기도 하다)와 함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곡을 두 곡 잇따라 연주했다.
처음 연주한 쇼스타코비치의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콘체르티노'는 처음 접하는 곡이었는데, 변화무쌍하고 다채로운 멜로디와 화음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아르헤리치의 터치에서 생기 넘치는 음들이 건반에서 내 귓속으로 통통 튀어들어왔다.
(사진 크레디아 제공. 왼쪽이 아르헤리치, 오른쪽이 이토 쿄코)
다음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K. 545를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그리그가 편곡한 것이었다. 너무나 유명한 멜로디, 도---미-솔-시--도레도~가 울려퍼지자마자, 옆자리에 앉아있던 은우가 고개를 돌리며 웃어보인다. 자기도 아는 멜로디라 반가웠던 모양이다. 그리그는 이 곡을 한 대의 피아노로는 모차르트 소나타 원곡 그대로 치고, 다른 한 대의 피아노로는 새로운 멜로디와 화음을 덧붙여 치도록 편곡했다.
아르헤리치는 '아주 쉽고 편안하게' 모차르트의 원곡을 소화했다. 기교적으로는 '아주 쉽고 편안한' 모차르트의 곡을 정말로 잘 연주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모차르트는 아주 어린 아이나, 혹은 아주 나이 든 대가만 제대로 소화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아르헤리치의 연주는 전혀 힘 들이지 않고, 영롱하고 투명하게, '대가답게' 모차르트를 소화했다.
다행스럽게도 이전 곡에서는 나와 먼 쪽 피아노에 앉았던 아르헤리치가 이 곡에서는 내가 앉은 객석과 가까운 피아노로 바꿔 앉아 연주했기 때문에, 그의 손가락이 가볍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까지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곡은 독주하는 것이 나았을 것 같다. 모차르트의 원곡만으로 완벽한 작품에, 그리그가 덧붙인 부분은 거추장스러운 꾸밈처럼 들렸다. 아르헤리치의 연주를 '끼어듦' 없이 '온전하게'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아르헤리치가 이 곡의 연주를 마치고, 특이하게도 허리를 90도 이상으로 깊숙이 꺾어 인사한 뒤 퇴장했을 때, 나는 많이 아쉬웠다.
무대에 혼자 서는 '고독'이 몸서리쳐지도록 싫어서 독주는 거의 안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서는 실내악에만 주력한다는 아르헤리치. '여제'의 카리스마 뒤에 과연 그런 면모가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러나 나의 아쉬움은 2부 프로그램인 슈만의 피아노 5중주에서 해소됐다. 아르헤리치의 연주는 피아노 두 대의 연주에서보다는, 다른 현악 연주자들과 함께 했을 때 더욱 빛났다. 아르헤리치의 강렬한 음색과 생기 넘치는 터치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연주였다. 그는 때로는 격렬한 속도감으로, 때로는 여유있는 안정감으로 다른 현악 연주자들을 리드하거나, 호흡을 맞춰가며, '여제'다운 연주를 선사했다. 70 가까운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열정과 생명력이 가득한 연주였다.
열화와 같은 관객의 환호에 이어진 앙코르는 이 곡의 3악장을 다시 연주한 것이었다. 아르헤리치는 자리에 앉자마자 현악 연주자들이 튜닝을 마치기도 전에 연주를 시작했다가 중단해,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곧이어 제대로 시작된 연주는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여서 현란하기까지 했다. 이게 아마 아르헤리치가 처음부터 원했던 속도였던 모양이다. 협연하는 현악 연주자들도 더욱 생기 있는 보잉으로 응답했다.
아르헤리치가 더 많은 곡을 연주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앙코르는 새로운 곡으로 연주해 줬더라면 좋았겠지만, (벳푸 아르헤리치 페스티벌에서도 '앙코르'를 하는 일은 드물고, 연주했던 곡을 앙코르로 다시 연주한 것만 해도 특별한 경우라는 게 공연기획사의 얘기다) 아르헤리치가 독주하는 곡이 한 곡이라도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피아노의 여제'를 눈 앞에서 본 어제 오후, 행복했다.
매년 아르헤리치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는 벳푸에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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