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 전면 개방'- 오늘(5일) 제 기사의 제목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제목은 틀렸습니다.
개방된 것은 '북악산'이 아니라, 북악산을 둘러싼 '서울성곽'이고, 그 또한 '전면 개방'이라 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러니 기사에 쓴 대로 '서울성곽 개방'이 가장 정확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서울성곽은 조선 태조(1398)때 지어진 석성(石城)입니다.
1968년 1.21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청와대 경호를 이유로 일반인 접근이 금지되고 군사지역으로만 사용돼 오다 이번에 일반인에게 개방됐습니다.
(동영상으로 기사 다시 보기를 하시면, 성곽 모습을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성곽'이라 하니, 어떤 분은 요즘의 서울을 생각해 무척 큰 성으로 상상하시는 분도 계시던데, 6백년 전 도성을 둘러싼 성곽의 길이는 모두 18킬로미터였습니다.
4대문인 흥인지문(동),돈의문(서), 숭례문(남), 숙정문(북)을 연결하고, 서울의 내사산인 낙산(동),인왕산(서),목멱산(남),북악/백악산(북)을 잇습니다.
그런데 왜 눈에 띄지 않았냐고요?
남대문,동대문,남산이 포함된 시내 구간이 개화기에 전차 놓고 일제 시대에 건물 지으면서 철거됐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산자락을 따라 지은 10킬로미터 정도만 남아 있습니다.
이번에 계단도 놓고 관람 환경을 조성해 개방된 구간은 창의문(자하문)부터 와룡공원까지 4.3킬로미터 구간이고요.
(관람은 문화재청이나 문화재보호재단 홈페이지에 가셔서 신청하시면 됩니다.)
기사에서는 이렇게 기본적인 내용만 전해드렸지만, 서울 성곽에도 중국의 만리장성 못지 않은 건설 비화가 있다고 합니다.
저도 서울성곽 안내책자(유홍준,박상진 著,'북악산 서울성곽')를 보며 알게 된 것인데, 혼자 알고 있기는 아까운 내용입니다.
태조는 1394년 무학대사와 함께 도읍을 정하자마자 도시계획을 짜고 단 열 달만에 도읍 공사를 마쳤다고 합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공기 단축','데드라인 엄수', 뭐 이런 게 있었나 봅니다.)
전국의 승려가 총동원되고, 팔도의 장정들도 모두 차출된 이 공사에 이어 시작된 게 바로 '서울성곽' 공사인데요,
인력 차출 때문에 농한기에만 공사를 했습니다.
이후 세종 때와 숙종 때, 보수 공사가 이뤄졌는데요, 이 때문에 성곽에서는 크게 세 종류의 벽돌을 볼 수 있습니다.
태조때 것은 작은 돌맹이를 모아 쌓은 것, 세종 때는 큰 돌맹이 사이에 작은 돌을 넣어서 보다 견고하게, 숙종 때는 장정 네 명이 들어야 할 정도로 큰 돌을 네모반듯하게 잘라서 차곡차곡.
세종 때의 보수 공사 때에만 87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이 안내책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앗! 야근중에 취재파일을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큰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리스 산토리니에서 유람선이 좌초됐다네요. 한국인 피해자 없는지 알아봐야겠습니다.
못다한 얘기는 내일 마저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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