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5월의 만남>
2003월 5월 14일 ,백악관 맞은편에 있는 영빈관 블레어 하우스에 대통령 노무현이 묵고 있었다. 블레어 하우스는 미국 33대 대통령 트루먼이 백악관 개, 보수 때문에 4년간 머물면서 그 유명한 트루먼 독트린, 마샬 플랜을 마련한 곳이다. 한국전 참전도 이곳에서 결정됐다. 노 대통령, 그는 생애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하고 있었다.
부시와의 회담을 하루 앞두고 그는 워싱턴 특파원들을 불렀다. 취임 백일이 채 안된 젊은 대통령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정열적이었다. 내가 과거에 만났던 낙선한 전직의원의 우울함은 읽을 수 없었다. 청와대 출입기자로서 봤던 해양수산부 장관 노무현의 당당함과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워싱턴에 나타난 남한의 쉬뢰더(South Korea's Schroeder: 미국의 보수지 월스트리트 저널을 노 대통령을 이렇게 불렀다.)에 워싱턴 외교가도 긴장해 있었다. 사실 이라크 전쟁에 사사건건 발목을 걸던 독일의 게르하르트 쉬뢰더 총리나 반미 시위속에 탄생한 한국의 새 대통령 모두 백악관엔 귀찮고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노 대통령은 워싱턴에 입성하기 전날 뉴욕에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한반도 전문가들의 모임인 코리아 소사이어티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 53년 전(6.25때) 미국이 한국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쯤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 지도 모른다”
'정치범 수용소' 발언 때문이었을까? 노무현과 부시의 첫 만남은 큰 성과도 없었지만 예상치 못한 불상사도 없었다. 물론 보수언론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실용적인 외교노선이라고 이례적으로 칭찬을 했다.
불과 몇 달 전 대통령 후보 시절 “반미주의자면 어떠냐?” 고 했던 그였기에 파문이 컸다.
그를 지지했던 인터넷 매체는 이렇게 노 대통령을 비판했다.
“국익을 최우선시해야 하는 대통령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의 발언은 지나쳤다고 인식되기에 충분하다... 첫 미국 방문에 들뜬 나머지 너무 낯간지러운 발언을 해버린 셈이다...”
<2007년 4월3일자 조간신문>
이제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다음날인 4월3일자 조간신문을 살펴보자.
조선일보 1면 톱, <14조 달러 시장 통합 KORUS FTA 개막>
중앙일보 1면 톱 <제3의 개국...대한민국 G7 시대 연다>
동아일보 사설 <노대통령의 FTA 리더십 높이 평가한다>
한겨레신문 1면 톱 <개성공단 상징 챙기고 실익 더 내줬다>
한겨레 사설 <한미 FTA 타결안 그대로 수용할 수 없다>
경향신문 3면 <교역 증대뒤에 드리운 더 깊은 그늘 간과>
그동안 그리도 노 대통령을 비판하던 보수언론은 그의 현명한 선택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반대로 그와 한때는 동지적 관계를 맺는 듯 했던 신문들은 등을 돌렸다. 4년 전 모습을 보는 듯 하다. 그때와 다르다면 그때는 외교문제고 이번에는 경제문제가 초점이다.
<역설의 정치?…뒤틀린 지지구조>
지지 세력과 비판세력이 뒤바뀐, 역설적인, 뒤틀린 구조는 정치권에서 더 심하다.
노무현을 지지하며 단기필마로 뛰던 그의 정치적 동지 천정배는 아직도 단식중이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굴욕적인 태도를 적절한 타협으로 둔갑시키는 대통령의 모습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메일을 정치부 기자들에게 보내왔다.
반면 탄핵에 앞장섰던 민주당 조순형 의원은 “ 대통령의 소신과 결단력을 높이 평가한다.”며 극찬했고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 김종훈 수석대표와 김현종 통상교섭 본부장은 역사가 기억할 것”이라고 극찬을 늘어놨다.
이쯤 되면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만 하다.
<왼쪽 깜빡이에 우회전?>
그러나 지난 4년간을 돌이켜보면 이렇게 싸운 게 하등 이상하지 않다. 좌와 우가 바뀌고 찬과 반이 가끔 가끔 뒤바뀌었을 뿐 이렇게 싸워왔다. 대통령 취임초부터 레임덕을 우려하는 지금까지 동서로 갈라졌던 싸움이 좌우로 대체됐을 뿐이다. 양극화 해소를 국가적 과제로 해놓고 이념적 양극화, 경제적 양극화, 정치적 양극화를 향해 무지막지하게 달려왔다.
책임의 많은 부분은 물론 대통령 몫이다. 노대통령은 항상 <수시로 말을 바꾼다>고 비판받는다. 상호 모순된 발언과 처신이 한, 두 번이 아니라는 말도 많다. 맞다. 노대통령은 항상 <왼쪽 깜박이를 켜고 우회전>을 한다고도 한다. 그것도 맞는 것 같다.
이게 우리의 상식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대통령 노무현을 욕한다.
<손가락을 자르기 전에...>
자,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 노무현을 찍었던 손가락을 자르려면 시간이 별로 없다.
올 12월 19일에는 새로운 대통령을 뽑아야하고 또 다른 손가락을 잘라야할 지 모르니까 말이다.
그래도 손가락 자르는 일은 쉽지 않으니까 잠시만 참아보자.
그리고 잠시만 시간을 노 대통령의 첫 방미 즈음으로 되돌려보자. 당시 정찬용 인사수석은 노 대통령의 대미 접근과 관련해 노대통령을 실용적 이상주의자로 불렀다고 한다. 매사를 실용적으로 판단하고 이상적으로 결정한다는 덕담이었다고 한다. 그 말에 노대통령은 ‘뜨거운 얼음’이라는 말과 비슷하다고 받아넘겼다고 한다.
공존시키기 어려운 두 가지 가치, 상생하기 어려운 2가지 접근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니 많은 갈등이 생기고 문제가 야기된 것이다. 대통령도 알고 최측근도 알았다. 그러나 <부조화의 조화>가 필요함을 노대통령은 이미 알았을 게다. 또 그게 쉽지 않은 길임을 알고도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한 것이라고 믿고 싶다.
노 대통령은 자신을 좌파 신자유주의자라고 했다. 한미 FTA 협정체결이후 FTA 반대론자들은 노대통령은 좌파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자일뿐이라고 공격을 퍼붓고 있다. 그의 지지기반인 왼쪽에서의 공격이다. 노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이미 예견했을까? 자신을 좌파 신자유주의자라고 한 것은 우파는 물론 좌파로부터도 공격을 받기 때문에 한 말이라고 토로했다. 보수와 진보의 중간에 서서 실리를 추구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다.
노 대통령은 한미 FTA가 “ 정치의 문제도 이념의 문제도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다.저 개인으로는 아무런 정치적 이득도 없다. 정치적 손해를 무릅쓰고 내린 결정이다“라고 말한다. 노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선택인 한미 FTA의 성공여부는 대통령의 손가락이 아닌 우리 손가락을 자를 일이다.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실리를 놓고 판단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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