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 될 경우에 대비해, 한국과 중국간의 FTA 체결 움직임을 주시해왔다.
체결될 경우 일본은 우선 그동안 주력해 온 인도네시아, 인도, 호주 등과의 협상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한국과의 FTA 협상은 역사문제 등 협상의 장애물이 적지 않은 점을 감안해 우선순위에서 뒤로 놓은 상태다.
특히 올해 들어 2차 대전 당시 군대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인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발언 이후 협상 분위기가 악화된 점도 FTA 논의를 진전시키는데 어려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한국과 일본은 지난 2003년 말 FTA 협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이 공산품은 완전 개방하되 농산물 분야 개방에는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교착상태가 계속됐다.
이후 2005년 10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참배 때문에 양국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협상이 중단된 상태다.
이에 따라 일본은 한국, 중국과의 협상을 일단 2009년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아 왔다.
다만 미국과 한국이 전격적으로 FTA를 체결하면 일본으로서도 이런 방침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은 불가피해 보인다.
한국, 중국 등 주요 경쟁 국가가 다른 국가와 FTA 협상을 속속 진행할 경우 일본으로서도 속도를 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한국, 중국과의 FTA 체결도 앞당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은 2002년 싱가포르와 첫 FTA를 체결한 뒤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멕시코, 말레이시아, 필리핀에 이어 칠레와도 지난 27일 FTA를 체결했다.
중국, 한국 등 경쟁국 보다는 동아시아 역내국가와의 FTA 체결을 우선한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주요 목표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이었다.
이는 일본이 FTA 협상을 하면서 경제 뿐 아니라 외교.안보까지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본은 아세안 전체보다는 개별 국가와의 FTA에 주력해 왔다.
이런 점을 반영한 듯 일본 정부는 FTA보다는 더 포괄적인 경제제휴협정(EPA)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이들 국가와의 협상에서도 일본은 농수산물 시장 보호라는 원칙을 유지해 왔다.
대신 일본은 상대적으로 기술 수준이 낙후된 협상 대상국에 자동차 공장 등의 투자라는 당근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협상을 이끌어 왔다.
일본은 아세안 국가와의 FTA를 둘러싸고 중국과도 경쟁을 벌여왔다.
한국도 아세안 국가와의 FTA를 서두르는 만큼 역시 일본으로서는 한국, 중국의 행보를 신경쓰 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교도(共同)통신 등 일본 언론이 워싱턴에서 진행되는 한.미 FTA 협상 진행 상황을 주요 기사로 속속 보도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도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