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1일 결단의 순간을 맞고 있다. 미국 워싱턴D.C의 미 의회 의사당에서 협상 출범선언이 이뤄진지 1년2개월만이다.
협상이 진행된 기간 내내 우여곡절을 거듭해온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협상 과정을 차례로 짚어본다.
◇ 첫 협상이 열리기까지
한미 FTA의 시작을 알린 신호는 지난해 1월18일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 연설에서 나왔다. 노 대통령은 그 때 한미FTA 추진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그 출발은 순조롭지 못했다. 노 대통령의 언급 이후 2주만에 열린 첫 공청회가 농민 등 협정 추진 반대측의 시위로 파행을 겪었다.
이런 난관 속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포트먼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2월3일(한국시간) 미 의회에서 협상 출범을 선언했다. 4월17일에는 비공식 사전협의에서 협상 일정 등의 조율이 이뤄졌고 5월11일에는 대외경제장관회에서 협정문 초안이 확정됐다.
그러나 협상 초반부터 흘러나왔던 이른바 '4대 선결요건'은 끊임없는 논란거리였다.
미국을 FTA 협상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위생조건 완화와 자동차 배기량 기준 강화 및 건강보험 약가 적정화 방안의 연기, 스크린쿼터 완화를 협상도 시작하기 전에 양보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다.
결국 2차 협상이 끝난 뒤인 작년 7월 노 대통령은 "부당한 양보로 국익을 손상한 바 없다"는 전제를 달면서 "4대 선결조건을 수용했다는 비판을 대통령의 결정으로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 힘들었던 협상 전반
한미FTA 첫 협상은 6월5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진행됐다.
그러나 양측은 '기 싸움' 성격의 탐색전으로 일관한 탓에 협상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워싱턴에서 첫 협상이 열렸지만 다른 분야와 달리, 농업과 위생.검역 분과의 이견이 워낙 커 통합 협정문 작성에 실패했다.
이어 7월 서울에서 진행된 2차 협상은 협정문.양허안 교환이 이뤄지면서 협상이 본궤도에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낳았지만 결과는 파행이었다.
의약품 분야에서 미측이 자국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우리측의 의약품 협상안을 문제삼아 강공을 펼치면서 협상이 무산됐다.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3차 협상부터 양측은 '협상장'을 이용해 상대방에 자신의 요구를 전달하는 형식의 기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미국측이 수도 워싱턴이나 경제 중심도시가 아닌 시애틀에서 회의를 개최한 데다 협상장으로 박물관을 개조한 건물을 사용하기도 했다.
협상 전문가들은 "우리측을 무시하는 인상을 주는 일종의 심리전 성격도 배제할 수 없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자 우리측은 이번에는 오렌지를 개방 예외품목으로 해달라는 요구를 전하기 위해 협상장을 제주도로 옮기는 전략을 썼다. 오렌지를 전면 개방할 경우 초토화될 감귤의 주산지인 제주의 진면목을 보여주면서 미측의 양보와 이해를 얻어내겠다는 구상이었다.
특히 김태환 제주도 지사는 이후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협상 때마다 빠지지 않고 협상장에 나타나 양측 협상단에 오렌지 개방을 막아줄 것을 읍소했다.
이렇게 되자 미측은 5차 협상에서 곧바로 '멍군'에 나섰다. FTA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 정가의 유력인사 맥스 보커스 상원의원이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 요구를 전달할 속셈으로 웬만한 미국인들도 찾지 않는 로키산맥속 오지인 몬태나주의 소읍 빅스카이로 한국 협상단을 끌어들인 것이다.
4차 협상에서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과 인심을 선사했던 한국 협상단은 이번에는 몬태나산 쇠고기 스테이크를 시식하며 한국말로 "맛있습니다"를 연발하는 미국 상원의원에게 "미국산 쇠고기는 뼈가 있든 없든 안전하다"는 일장 훈계를 들어야 했다.
그러나 훈계로 시작된 5차 협상은 무역구제를 얻기 위한 한국의 강공으로 일부 핵심분과의 논의가 다시 파행됐다.
우리측이 제기한 무역구제 개선요구가 거부되자 김종훈 수석대표가 우리측 협상단에 의약품과 자동차,무역구제 협상장을 박차고 나오도록 지시한 것이다.
한국측의 강공에 웬디 커틀러 미국 대표가 당황해하자 김 대표는 "커틀러 대표도 2차 협상 때 내 심정이 어떠했는지 알게 됐을 것"이라며 '복수의 변(?)'을 밝히기도 했다.
협상단의 한 관계자는 협상 과정을 되짚으며 "솔직한 생각으로 5차 협상까지는 미국측이 우리를 다소 가볍게 보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던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 6차협상부터 진전
한미 FTA 협상이 진전쪽으로 확실히 방향을 틀고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은 1월 서울에서 진행된 6차 협상부터다.
미측이 무역구제 분야에서 우리측이 요구했던 법률 개정사안들에 손을 댈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하면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을 주고받는 형태의 '빅딜론'이 설왕설래 수준에서 점차 가시권에 들어왔다.
미국 의회가 행정부에 부여한 무역촉진권한(TPA)의 시효를 감안한 사실상의 협상시한이 3월31일로 못박힌 점도 무작정 시간끌기 전략을 구사할 수 없도록 했다.
특히 우리측이 '협상 타결'이라는 목표를 공개적으로 내세우면서 기존 요구수준을 접고 양보안 제시를 본격화한 점이 협상의 진척을 가져왔다.
6차 협상에서 우리측은 배기량 기준 자동차 세제의 개편에 대한 미국측 요구를 수용했고 의약품 분야에서도 독립적 이의심사기구의 설치나 허가기간을 고려한 의약품 특허 연장 등을 고려할 수 있다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2월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이 전화 통화로 서로의 협정 타결의지를 확인하면서 협상 페달을 좀 더 빠르게 밟기 시작해 서울과 워싱턴을 오가는 8차 실무협상까지 경쟁과 정부조달, 기술무역장벽 등의 분과가 차례로 타결됐다.
◇ 쇠고기,자동차 놓고 최후 신경전
하지만 이른바 '딜브레이커'(협상결렬요인)로 꼽혔던 쇠고기 등 농산물 문제는 막판까지도 진통을 거듭했다.
미측이 '뼛조각 쇠고기'반송을 문제삼아 불과 1년 전 합의했던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을 다시 바꿔 뼈있는 쇠고기까지 전면 수입하라는 요구를 거두지 않았다. 개방 대상에 쌀까지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도 굽히지 않았다.
미국은 이에 그치지 않고 우리측의 핵심 요구사항인 자동차 분야에 대해 8차 실무협상이 끝날 때까지 관세철폐 방안을 내놓지 않아 한국 협상단의 애를 태웠다.
우리측도 쇠고기 문제는 FTA의 의제가 아닌 데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공식 결정과 이에 따른 자체 검토 절차를 거쳐야 가능한 사안이어서 사전 약속은 불가하다고 버텼다. 쌀에 대해서는 `거론하면 협상을 깬다'는 강공으로 맞섰다.
진통은 막바지까지 계속됐다. 결렬시 손해가 큰 쪽이 먼저 무릎을 꿇게 되리라는 계산속에 양측이 마지막 버티기를 시도하면서 협상 시한 2주를 남겨놓고 서울과 워싱턴에서 동시에 진행된 양측 수석대표의 고위급 절충이 별 소득없이 끝난 것이다.
양국은 3월26일부터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 USTR 부대표를 내세워 3월31일 오전 7시를 시한으로 하는 최후 담판을 시작했다.
그러나 쇠고기와 자동차를 필두로 섬유와 금융분야 일시 세이프가드,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의 간접수용 범위 등을 놓고 진행된 양측의 막판 신경전은 극도의 긴장을 불러왔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미국과의 과거 통상협상 사례를 볼 때 이 정도로 우리가 강하게 입장을 개진했던 것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라고 자평했다.
이로 인해 양측은 당초 시한인 3월31일 오전 7시까지 협상타결에 실패했고 48시간 동안의 추가 협상에 들어가는 고육책까지 써야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