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당직 서열 1위와 2위끼리의 싸움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발단은 서열 1위인 강재섭 대표가 29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꺼낸 말 한마디였다.
강 대표는 당직자들이 대선후보 캠프에서 공개적으로 활동하는데 언급하면서,
"당에 여러 당직자가 많다. 사무총장, 부총장, 정조위원장, 최고위원 등...
이런 분들이 어떤 캠프의 일원으로 직책을 맡는 것은 결코 안된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맨 뒤에 붙은 최고위원이란 표현이었다.
당 안팎에서는 강 대표의 말이 최고위원 가운데 공개적으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지원하는 이재오 의원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곧바로 나왔다.
공교롭게도 이날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던 서열 2위 이재오 최고위원은
지방 행사 참석 도중 소식을 듣고 발끈했다.
"박근혜 전 대표를 공개적으로 지지해 대표가 된 사람이 누군데 상대방 발목 잡으려고 중립운운하나."
"당사자가 회의에 불참한 것을 기회로 등 뒤에서 비수를 꽂는 비열한 행동이다."
그러면서 강 대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마치 지난 해 7.11 전당대회 대표 경선 당시 강 대표를 밀던 박 전 대표가 내 연설이 시작되자 자리를 떴던 것과 다름없다"며 박 전 대표에게도 화살을 돌렸다.
"연설이 시작될 때 자리를 떴다"는 것은 경선 당시 단상에 앉아 있던 박근혜 당시 대표가 이재오 후보의 연설이 시작되자 갑자기 관중석 쪽으로 다가가 인사를 하고 다니면서 연설 분위기를 망쳤다는 것이다.
이 최고위원이 대표 경선에서 역전패를 당해 서열 2위에 머물게 된 것을 두고두고 마음 속 한으로 담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실제로 7.11 경선은 강 대표와 이 최고위원 사이에 이어지는 악연의 시발점이다.
당시 강재섭 후보는 박근혜 대표의 지지를 등에 업고 경선에 출마했다.
당선 직후 기자회견에서 선거승리 요인을 "강풍과 박풍의 합작"이라고 스스로 털어놓을 정도였다.
선거 초반 판세는 이명박 전 시장의 후원 속에 출사표를 던진 이재오 후보가 후발 주자인 강재섭 후보를 어렵지 않게 따돌리고 당선될 거라는 쪽이었다.
당시 경선은 일반 국민 여론조사와 대의원 투표를 반반씩 섞어 당선자를 뽑는 형식을 택했는데 이 후보는 여론조사 부문에서 강 후보를 3대2의 큰 표차로 앞섰다.
문제는 이른바 당심을 반영하는 대의원 투표였다.
현직 대표의 지원을 받은 강 후보는 대의원 투표에서 4,299표 대 3,368표로 이 후보를 따돌려 여론조사의 열세를 만회하고 역전승을 거뒀다.
뼈아픈 패배를 당한 이재오 후보는 전남 순천의 선암사로 가 칩거에 들어갔고 강재섭 신임 대표가 산사를 직접 찾아 "이 선배"라는 호칭까지 쓰며 설득한 끝에 닷새만에야 당무에 복귀했다.
하지만 당무 복귀 이후에도 강 대표와 이 최고위원은 사사건건 신경전을 벌였고 급기야는 정면 대결로까지 번지게 된 것이다.
29일 한바탕 설전을 벌인 1등과 2등은 하룻만에 자제하는 모습으로 돌아섰지만 이제는 그들 뒤에 포진한 이명박, 박근혜 두 캠프가 직접 싸움을 이어받아 공방에 나섰다.
양측 고위급 인사들간의 국지적인 대리전이 전면전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양 캠프의 공격수인 정두언, 유승민 의원이 언론을 통해 날카로운 공격을 주고 받았고 진수희, 한선교 의원이 기자회견과 논평을 통해 지원 사격에 나서는가 했더니 박근혜 캠프의 사령관급인 김무성 의원까지 뛰어들어 당 홈페이지에 "이재오 최고위원은 체통을 지키십시오"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글을 올리기에 이르렀다.
당내에서는 이러다가 당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당이 깨질 가능성은 아직 성급한 전망이라 치더라도 8월까지 이렇게 싸움을 계속하다 나중에 경선 후유증을 어떻게 치유할거냐는 사무처 당직자들의 하소연은 현실적인 문제다.
한나라당 외곽조직인 참정치 실천운동본부는 30일 "후보가 승리하는 대선이 아닌 당이 승리하는 대선"을 외치며 자제를 촉구했지만 "우리편의 승리가 당의 승리"라고 믿고 있는 양 캠프에게는 공허한 메아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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