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초쯤 이었던 같다. 손학규 경기지사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 SBS 국회팀과 손학규 지사팀의 만찬자리였다. 매우 인상적인 자리였다. 손지사는 매우 열정적이었다.
<딱새와 찍새>
"투자유치를 위해 지난 4년간 43차례 해외를 나갔다. 지구를 14바퀴 돌았다. "
그는 신화창조를 도운 경기도 공무원을 딱새와 찍새로 불렀다. 투자진흥과 찍새들이 해외에 나가 외국기업을 찍어오면 투자정책. 입지팀인 딱새가 현장에서 각종 지원을 했다고 했다.
"열 번 넘게 비행기를 갈아타고 ,공항에서 쭈그린 채 잠을 자고....요즘 정치인들 .민생은 뒷전이고 정치놀음만 하고 있다. 일자리가 중요하다. 경제가 중요하다...."
그의 열변에는 비전이 있었다. 꿈이 있었다. 그래서 정열적이었다.
경기지사 손학규는 그랬다.
마치 워싱턴 정치에 반기를 들었던 아칸소 주지사 클린턴가 그랬던 것처럼...
<낮은 데로 임하려 했던 사람>
기자들이 끼면 통상 그러듯 폭탄주가 돌았다. 술자리는 무르익었고 얼추 모두 취했다.
본격적인 술자리는 취한 뒤에 시작된다. 그 쪽 팀과 우리 팀이 1대1로 팔짱을 끼고 러브 샷을 시작했다. 우리 팀이 5명, 그쪽 팀이 4명. 마지막에 우리 팀 한명이 남았다.
충성(?)스런 손지사 측근 한명이 짝이 맞지 않자 재빨리 술을 자청했다.
"이 사람아 그러면 안 되지. 내가 해야지" 손지사가 부하 직원을 말리고 대신 마셨다.
폭탄주를 만든 사람은 손지사였다. 폭탄주를 제조하다 부하직원이 마실 폭탄주의 뇌관에 양주가 너무 많이 들어가는가 싶으면 재빨리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부하 직원이 마실 폭탄주의 뇌관 양주를 먹어치워 부하의 부담을 덜어줬다.술 취한 가운데서도 인간 손학규는 부하직원을 챙겼다. 손학규는 그랬다.
그의 인생 자체가 그랬다.
손학규는 경기 중, 경기고를 나온 수재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갔다.
그러나 그는 기득권에 안주하는 것을 거부했다.
대학 2학년때는 삼성의 전신인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 규탄 데모를 주동하다 무기정학을 당했다.
무기 정학중에도 학원 자유화 운동을 하다 또 무기정학을 받았다. 그러자 그는 강원도 한백탄광에 가서 석탄을 캤다 . 대학을 졸업하고는 소설가 황석영씨와 자취하면서 구로공단에 취직했다. 박형규 목사의 권유로 청계천 판자촌에서 빈민운동을 하다 반공법위반으로 구속됐다.
손학규는 그랬다. 항상 낮은 곳을 잊지 않았다.
<손학규가 만난 사람들>
그 박형규 목사를 손 전지사가 만났다. 25일 오장동 서울제일교회에서다. 탈당하고 두번째 만난 사람이다. 함께 예배를 하고 환담을 했다. 박목사는 손 전지사의 결혼 주례도 섰던 사람이다. 손 전지사 내외 모두 이 교회의 신자다. 박목사는 기독교장로회 총회장과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 등을 지낸 경력을 바탕으로 현재도 기독교계와 범여권 등에 두루 영향력을 갖고 있다.
박 목사는 손 전 지사의 탈당을 어떻게 보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한나라당의 방향이 손 전 지사와는 잘 안 맞는다. 잘했다고 본다. 우리나라를 올바로 이끌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면서 사실상 지지를 표명한 뒤 손 전 지사의 선택을 예수의 제자인 야곱이 걸었던 '고행의 길'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쯤하면 손 전지사로서는 성과를 충분히 거둔 자리였다.
<김지하, 엄청난 결단...자랑스럽다>
앞서 22일엔 손전지사는 김지하 시인을 만났다.
김시인이 최근 '문화 사랑방'을 표방하면서 문을 연 창덕궁 인근 '싸롱 마고'에서다.
손 전 지사는 "여당도 야당도 아닌 제3당, 새 문명을 선도할 새 정치세력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라고 탈당 이유를 설명한 뒤 "형님이 이끌어주시고…"라며 지원을 요청했다.
김 시인은 "엄청난 결단이 고맙고 놀랍다. 생각 잘 했다. 자랑스럽다"고 했다.
<찍새, 딱새,,,그리고 철새>
하지만 정치권의 평가나 시중의 평가는 비판적이다. 손전지사의 정치행보에 대한 평은 박형규 목사처럼 "잘했다"는 것도 김지하 시인처럼 "엄청나고 자랑스러운 결단"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한나라당 후보가 되지 못할 것 같다는 판단아래 탈당한 것이고 개인이 내세운 거창한 명분은 치장에 불과하다"는 비난이다. 제2의 이인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인제 의원은 왜 나에 비유하느냐고 항변한다. 자신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자칫 <손학규와 찍새, 딱새>가 <손학규와 철새>가 될 판이다.
<시베리아에 서 사는 법... 손학규의 사는 길>
정치부 기자로서 뛰면서 수많은 정치인들이 떴다가 사라져가는 것을 봤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인기를 구가하다가 잊혀진 사람, 무소불위의 권력을 맘껏 휘두르다가 결국은 감옥까지 갔던 사람들, 심지어 대권을 잡았다가 국민의 웃음거리가 된 사람도 있다.
현명함과 절제, 원칙과 명분, 기본을 잊은 사람들이었다. 국민을 외면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국민이 외면했던 사람들이다.정치는 항상 양손에 두 가지를 들어야한다고 한다. 한 손엔 성경, 다른 한 손엔 칼, 즉, 명분과 현실, 원칙과 표가 조화를 이뤄야한다는 것이다.
손학규는 표가 없었다. 표가 없어서 자기가 서있던 곳을 떠났다. 그래서 원칙까지 못 지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표는 맘대로 안 된다. 박형규 목사를 만나고 김지하 시인을 만나고 손학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조직하고, 각종 정치적 이벤트를 해도 표는 마음대로 안 된다. 민심은 그만큼 무섭다.
자신의 말대로 죽는 길로, 시베리아로 간 손학규가 살아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게 있다며 그 것은 원칙을 지키는 일일 것이다. 자기가 평생을 추구해왔던 원칙들 말이다. 무기 정학을 당했을 때, 막장에서 일할 때, 빈민운동을 할 때 매달려왔던 원칙들 말이다. 이제 손 전지사는 갈림길에 섰다. 낮은 데로 가더라도 원칙을 지킬 것인가? 높은 데로 가기위해 다시 원칙을 버릴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따라 권력에 연연하는 보따리 장수가 될 수도, 그가 주창한 중도통합의 밀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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