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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유럽영화 - 3월 네째주 개봉영화

지난 주 [300]의 돌풍이 거셌습니다. 첫 주말 동안 백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오랜만에 선보여 반갑기도 하고 왠지 잘 되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한국 영화 [쏜다]를 거꾸로 쏴 고꾸라뜨렸습니다. 며칠 전 만난 영화계 인사로부터 '스크린 쿼터가 축소되면서 국내 외화 수입업자들이 이전 같으면 국내에 수입 안했을만한 고만 고만한 외국 영화들도 많이 들여오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관객 입장에서야 평소 볼 수 없는 다양한 영화를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기회이겠지만 침체된 한국 영화 회복이 더 더뎌질수도 있는 우려가 있습니다.

타인의 삶

이 영화는 극장가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독일 영화로 통일 전후 동독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통독 과정의 아픔을 웃어야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블랙 코미디로 그린 [굿바이 레닌]이후 오랜만에 선보이는 동독을 무대로 한 독일 영화입니다. [타인의 삶]은 지난해 열린 제 56회 독일영화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7개 부문을 휩쓸었고, 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습니다. 탄탄한 작품성과 묵직한 주제, 배우들의 호연까지 합쳐져 오랜만에 보고난 뒤 여운이 길게 남는 영화입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인 80년대 후반 동독의 비밀경찰 비즐러(울리히 뮤헤)는 상관의 지시로 동독에서 잘 나가는 극작가 드레이만(세바스티안 코치)와 그의 애인인 여배우 크리스타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습니다. 빈집에 들어가 곳곳에 도청장치와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건물 다락방에서 헤드폰을 끼고 24시간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매일 보고서를 제출하는 격무이지만 비즐러는 타고난 비밀경찰답게 업무를 완벽하게 처리해 나갑니다.

그러나 국가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거창한 대의명분 뒤에는 문화부 장관의 구린내 나는 탐욕스런 음모가 있었으니 바로 드레이만을 사상범으로 엮어 감옥으로 보내버리고 미모의 여배우 크리스타를 차지하려는 꿍꿍이입니다. 드레이만은 자신의 스승인 반체제 작가가 자살한뒤 숨막힐 듯한 체제의 억압 아래서 절망하면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살아가고 이를 엿듣는 비즐러는 자신도 모르게 점점 이들의 처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드레이만은 더 이상은 이대로 못살겠다는 결연한 심정으로 모종의 거사를 계획하고 그를 확실하게 고문과 감금으로 보낼 수 있는 꼬투리를 잡은 비즐러는 위험한 결단을 내립니다.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는 우리나라로 하면 중앙정보부, 보안사 같은 기관으로 독일 통일 후 슈타지가 행한 첩보활동이 공개되기 시작하자 독일 뿐 아니라 세계의 양심들은 치를 떨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 영화가 시종 무겁고 지루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감독의 꼼꼼한 연출솜씨는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며 흥미롭게 영화에 몰입하게 만듭니다. 특히 케빈 스페이시를 많이 닮은 울리히 뮤헤는 훔쳐보기와 엿듣기를 반복하다가 그 인물의 처지를 점점 이해하며 갈등하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잘 표현하며 겉은 차갑지만 속은 복잡하고 뜨거운 독특한 캐릭터를 흠잡을데 없이 완벽하게 소화해 냅니다. 후일담에 해당하는 영화 마지막 장면의 감동까지 골고루 갖추고 있어 '요즘 영화들 너무 가볍고 말초적이어서 볼 게 별로 없어' 하시는 분들에게 강력 추천할 만한 영화입니다.

수

지진희, 강성연 주연의 수는 재일동포로 일본 영화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해 온 최양일 감독이 한국에서 연출한 첫 작품입니다. 이 영화에서 징글징글한 악역으로 나오는 문성근씨는 기자시사 무대인사에서 "최 감독님은 옛날부터 아주 깊이 존경하고 있었다. 재일동포로서 일본국적으로 귀화하지 않고 활동하면서 일본감독협회장을 두 번 이나 지내신 대단하신 분이다. 이번에 출연 요청을 받고 열일 다 제쳐놓고 뛰어왔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의 작품은 [피와 뼈] 한편만 보았는데 기타노 다케시, 오다기리 죠 같은 쟁쟁한 배우가 나오는데다 거친 듯하면서 직설적인 연출, 상상을 뛰어넘는 잔인한 폭력묘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 영화도 ‘하드 보일드 액션’이라는 용어로 설명하는데 그 폭력의 수위가 장난 아닙니다.

'수'라 불리며 유능한 해결사로 활동하는 태수에게 한가지 소원은 어릴 적 자신의 잘못으로 폭력배 밑에 들어간 쌍둥이 동생 태진을 찾는 것입니다. 태진은 강력반 경찰로 활동하고 있었고 19년만에 다시 만나는 자리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 나눠보지 못하고 저격당해 숨을 거둡니다. 태수는 죽은 동생의 복수를 위해 태진으로 행세하며 경찰에 잠입해 단서를 찾아나가고 이후 끝까지 가는 지독하고 처절한 응징을 계획합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전후 사정이 이렇다 저렇다는 것을 과감히 생략해 상당히 불친절합니다. 특히 이야기의 논리구조나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을 못 참아하는 우리 관객들의 취향에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보고나서 바로 든 느낌은 기대만큼은 안된다는 실망감이었는데 점점 곱씹어 볼수록 감독의 '힘'의 실체가 거대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편집과 음악의 사용이 적재적소에 정밀하게 맞아 떨어지는 점은 특히 본받을만 합니다. 지진희, 강성연은 촬영과정에서 정말 고생 많이 한 것 같은데 특히 최후의 대결 장면에서 지진희의 모습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 상황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지진희를 아끼는 여성팬들 가슴을 많이 아프게 할 것 같습니다.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유명한 소설을 영화화한 영국 영화입니다. 보도자료를 보다보니 세계적인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베를린 필이 OST를 녹음했다는 게 눈에 띄더군요. 래틀과 베를린필이 영화 OST를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랍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래 올라있어 줄거리는 따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소설에서는 인간의 후각과 향취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압권인데 영화에서는 그 부분이 잘 표현되지 않아 실망스럽다는 의견도 있는데 소설을 읽지 못한 제가 보기에는 그래도 볼만한 영화라고 여겨집니다. 특히 수천명의 군중이 모여 만들어내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이밖에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인 [빼꼼의 머그잔 여행]과 짐 캐리가 또 심각한 역할을 연기하는 [넘버23] 저예산 한국영화 [내 여자의 남자친구]등이 개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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