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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항모 로널드 레이건 호를 가다 ①

비상 상황이었다. 미군 요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상황을 전하자마자 기체 옆면에서 노란색 산소 마스크가 쏟아져 내렸다. 빨리 얼굴에 쓰라는 몸짓을 한다.

미군의 C-2 수송기가 내는 굉음 때문에 모두들 헤드기어를 쓰고 있는 데다 안전띠가 온몸을 감싸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러기에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알고보니 기체 앞쪽에서 흰색 가스가 유출된 것이었다.

마스크를 얼굴에 대고 호흡을 가다듬은 지 30여 분.

"Here we go!"

미군의 고성과 함께 기체는 다시 미 해군 항공모함 로널드레이건호에 착륙했다. 짧은 활주로에서 급정거를 해야 하는 항모이다보니 충격이 제법이다. 게다가 좌석이 뒤쪽으로 향해 있어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다. 이륙할 때 안전띠를 매지 않고 있다가는 몸이 퉁겨져 나갈 판이었다.

낭패였다. 내외신 공동취재단이 항모 취재를 마치고 출발지인 오산 공군기지로 돌아가던 길에 벌어진 일이었다.

함장인 테리 크래프트(Terry Kraft) 대령이 다시 우리를 맞았다. 수송기의 기계 고장으로 육지까지 갈 수 없어 가장 가까운 곳인 항모로 되돌아왔다는 설명을 애써 침착한 표정으로 해 주었다. 문제를 해결한 뒤 확인 비행까지 거쳐 다시 이륙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항공기가 항모에서 뜰 수 있는 데드라인은 저녁 6시. 2시간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항모는 북위00도, 동경000도 한반도 남쪽 해상을 빠른 속도로 항해중이었다. 푸르디 푸른 대양을 바라보며 격납고 구석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리고, 스타벅스 커피 한잔으로 목을 축이며 기다렸다. 그사이 의무진이 취재진 건강에 이상이 없는지 점검에 나섰고 다른 승무원들도 분주히 움직였다. 그러기를 수십 분, 결국 수송기가 뜰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아주 긴 하루였죠? 그렇지만 그만큼 박진감 있지 않습니까? 이제 하룻밤을 항모에서 묵게 됐으니 동료들이 부러워 하지 않을까요?"

동행한 오산 미 공군기지의 공보장교 제시카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안정화 작전'에 나섰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급한대로 항모내 위성 전화로 데스크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취재를 주선한 한미연합사령부도 국방부와 협조해 각 언론사와 집에 연락을 취했단다.


 
항모에서 미군으로 복무중인 한인 병사들이 취재단을 돕기 위해 하나 둘 모여 긴장을 풀어 주었다.

'이러다가 우리도 부산으로 가게 되는 것 아니야?'

로널드 레이건호가 다음날 부산을 방문하기로 돼 있었으니, 무리해서 수송기를 또 탈게 아니라 부산항에 내리면 될 것이었다. 함장이 내린 결론도 그랬다.

상황이 어느 정도 수습되자, 동트기 전 집에서 나와 하루종일 굶다시피한 취재단에게 푸짐한 저녁 식사가 제공됐다. 이어서 핵 추진 항모를 구석구석 들여다볼 수 있는 투어 기회까지 덤으로 주어졌다.

해가 떨어질 무렵의 항모는 정비와 훈련으로 분주했다. 갑판 아래 대형 실내체육관 서너개 크기의 격납고에 F-18 호넷 전투기와 헬리콥터가 줄지어 서있고, 소총을 든 남녀 장병들의 제식훈련이 한창이다. 멀리 어둠속 바다를 바라보니, 항모가 가르는 바닷물에서 신비로운 빛깔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긴 하루를 마치고 미로같은 통로를 통해 숙소로 돌아왔다. 맥주라도 한잔 마셨으면 좋겠지만, 큰 훈련을 앞두고 있어 금주령이 내려졌단다.

영관급 장교들이 쓴다는 깔끔한 숙소가 제공돼 간략한 기록이라도 남길 수 있게 된 것을 위안삼으며 긴박했던 하루를 마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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