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14일),
무허가 청과물 재래시장인 서울 영등포 문래동 영일시장에서는 아침부터 전운이 감돌았습니다.
영등포 구청은 140여개의 상점에서 일하는 상인 4백여명에게 철거를 위한 행정집행을 통보한 상태였는데요,
상인들은 동서로 가로 지르는 시장길 양쪽 입구를 컨테이너 박스와 차량으로 틀어막았고이것도 모자라 온몸에 쇠사슬을 감고 인간방패를 만들고 있었죠.
저를 포함한 취재진들에게 보여준 무기는 계란, 고추가루 등이 대부분이었지만, LPG가스통을 개조해 만든 사제 화염방사기도 있었습니다.
결사 항전을 외치는 상인들은 50, 60대 중년의 나이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드디어 행정 대집행이 예고된 오후 2시.
시장 밖에서는 영등포 구청측이 고용한 철거용역업체 직원 천6백명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3개 조로 나누어 동시 다발적으로 쳐들어가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요,
상인들이 만반의 준비를 해놓은 양쪽 입구에는 미끼로 사용할 소규모 교란 병력을 배치해 놓고, 포크레인을 앞세운 주력부대는 시장 중앙부 건너편 벽 반대쪽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철거반이 돌격하고, 포크레인은 지붕위에 할머니 상인들이 앉아 있는 것에 개의치 않고 벽을 부수기 시작했죠.
지붕위의 상인들은 계란을 던지며 맞섰는데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벽이 허물어지자 마치 중세시대 공성전을 방불케 하듯이 철거반 선봉 4백여명이 벽에 난 구멍을 통해 시장 중앙부로 침입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SBS 취재진도 경쟁사 취재진들을 따돌리고 이 구멍을 통해 시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시장 한복판에서 벌어진 '전쟁'.
그렇습니다. '전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처음 2,3분간은 사제 화염방사기로 저항하는 상인들에 의해 철거 용역 선봉대가 주춤했지만, 상대방이 중년을 넘어 체력적으로 약하다 보니 금새 완력으로 이들을 제압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
흥분한 철거 용역들은 주위 물건들을 닥치는대로 집어던지며 상인들을 폭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항을 포기하고 도망가는 상인을 붙잡아 집단 폭행하는 장면이 목격되고, 할머니들에게 철제 의자와 벽돌을 집어던졌으며, 차 안에 있는 상인을 소화기 통으로 유리창을 깨부수며 폭행해 끌어내렸습니다.
계란을 맞은 철거반은 쓰러져 있는 상인 머리에 계란을 던져 맞추며 앙갚음을 했습니다.
그야말로 무법천지.
아비규환의 현장 한 복판에서 취재하던 SBS 취재진도 폭언과 함께 폭력을 휘두르는 철거용역에게 맞아 부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불과 40여분만에 철거반은 무자비한 폭력으로 저항하던 상인들을 제압했습니다.
뒤이어 3,4백미터 멀리 고지대에서 구경만 하던 영등포 구청 직원들이 현장에 들어와 철거를 시작했습니다.
영등포구청 고위 간부는 상인들과 기자가 폭행당한 사실을 아냐는 기자의 질문에 밝은 표정으로 "안에 없었기 때문에 모른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폭행행위에 대해 사과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는 "상황을 몰라 사과해야할지 모르겠다."며 천연덕스럽게 대꾸했습니다.
경찰도 있으나 마나였습니다.
철거현장에서 동시다발적인 불법 폭행이 자행됐는데도, 상황이 다 끝난 뒤에야 도착해 기자들의 안전 여부를 물었습니다.
대규모 철거집행이 이뤄진 다는 것을 알았지만 관청이 주도하는 행정집행에 갑섭할 수 없다는 것이 경찰의 변명이었습니다.
관청과 경찰이 뒷짐지는 사이 전쟁터 같은 폭력 충돌 속에서 상인 26명과 철거반 4명, 그리고 기자 한 명이 부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영일시장은 지난 1971년 무허가 점포들이 모여들면서 생긴 재래시장인데, 상인들은 매년 한 상점당 260만원씩의 벌금을 내며 도로를 무단 점유하고 있고, 그동안 관할 구청도 눈감아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의 도심 재정비사업에 따라 시장 자리에 도로가 들어서게 됐고, 영등포구청측은 상인들에게 위로금 20억원을 제시하며 자진철거를 요구했습니다.
위로금을 제시했는데도 상인들이 이를 거절해 도시개발계획상 어쩔 수 없이 철거에 나섰다는 것이 영등포 구청의 주장이지만, 자신들이 고용한 용역직원들이 기자를 폭행해도 사과할 수 없다는 배짱이 약자인 철거민들에게도 그대로라면 경찰의 수수방관과 맞물려 앞으로 이 같은 폭력사태가 얼마나 반복될 지는 눈을 감고도 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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