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방송사에 동영상을 팔겠다?

지난 주 한 통신사 직원이 저희 인터넷부 사무실에 찾아왔습니다. (여기서 통신사란 KT나 SKT같은 망 사업자 말고 텍스트 뉴스와 사진를 공급하는 뉴스에이전시를 말합니다)

그 통신사와 인터넷 컨텐츠 관련 협의 사항이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그런가보다 했는데 나중에 선배한테 들어보니 이 통신사 직원이 '몹시' 흥미로운 제안을 했더군요.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뉴스 동영상을 살 생각이 있냐"는 겁니다.

텍스트 기반의 통신사에서 동영상 기반의 방송사에 와서 동영상을 팔겠다니 이건 삼성전자에 반도체 팔러온 셈이고, 현대자동차에 자동차 팔러 온 셈 아니겠습니까.

이 때 한 장면이 머리를 스쳤갔습니다. 2년  쯤 이라크에 있는 자이툰 부대 취재 갔을 때였는데, 국방부 기자단 중에 어제 왔던 통신사의 기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열심히 컴퓨터 자판만 두드려대던(가끔 사진도 찍긴 했지만) 이 친구, 캠코더를 들고 와서 이것저것 찍어대길래 '저걸 뭐하러 찍나, 저렇게 찍으면 누가 사긴 하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음. 찍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지금 그 통신사는 동영상 제작하는 인력만 50여명에 이른다고 하는군요. '통신사가 방송사에 뉴스 영상을 팔러 온다...' 저는 처음에는 제가 잘못 들었나 의심했지만 이것이 현재 미디어 전쟁의 더도 덜도 없는 단면입니다.

현재 위 통신사 뿐만 아니라 10여개의 국내 신문사가 영상 뉴스를 자사 웹사이트를 통해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크로스 미디어'란 이름의 기획을 통해 자신들이 만든 컨텐츠를 신문과 지상파 방송을 통해 동시에 뿌리고 있습니다. (솔직히 선전에 비해 흥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국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퀄리티 페이퍼의 상징들인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도 동영상과 블로그 서비스를 하고 있고, 방송사들은 인터넷용 뉴스(webcast)를 따로 만들고 있습니다.

ABC 뉴스의 경우, 뉴스 리포트 하나하나를 새로 만드는 건 아니지만 '월드 뉴스 투나잇'의 메인 앵커인 깁슨이 따로 인터넷용 뉴스를 진행할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과거의 신문(텍스트)과 방송(비디오, 오디오)이 서로 넘을 의지도, 능력도 없었던 매체 사이의 벽은 완전히 무너지고 있습니다. 미디어 시장이 이종 격투기 시장으로 바뀌고 있는거지요.

사실 신문 기자가 캠코더 들고 나가 찍는다고 다 그림이 되는 건 아닙니다. (훌륭한 소설가라고 해서 곧 훌륭한 시인이 되는 건 아니지요) 각 장르에는 그에 맞는 문법들이 발달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 문법은 단시일 내에 익히기도 어렵죠. 하지만 소비자는 크게 개의치 않는 듯 합니다. 하긴 소비자가 그게 관심있어야할 이유도 없지요. 재미있거나 유익하면 그만이니까요. 제 생각에 소비자는 확연한 차이가 아니라면 어정쩡한 퀄리티 차이는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너도 나도 동영상 서비스를 한다고 해서 그게 수익으로 연결되냐하면 그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동영상이 돈벌이가 되는지 않되는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동영상 플랫폼을 만든 유투브 창립자 몇 명은 떼돈을 벌었지만, 유튜브를 인수한 구글은 수익 창출이 쉽지 않아 고민이라는 기사가 나오더군요.

이렇게 한 치 앞이 안보이는 미디어 황사 속에서 언론사들은 일단 남들이 하는 건 다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일종의 보험 같은 거지요. 

기사에 대한 가치관도 바뀌고 있습니다. 기존의 제도권 언론은 고급 기사, 퀄리티가 보장되는 기사로 영향력을 행사해왔지만 소비자가 왕인 시대에서 소비자들은 더이상 의미만 있고 재미는 없는 기사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제 생각엔 먹고 살기 바쁜 대중들이 이른바 고급 정보를 원하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그리고 이미 대중 매체에 실린 고급 정보가 어디 고급 정보인가요?)

결국 이 분야도 '규모의 경제'로 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비디오든, 텍스트든 구색을 갖춘 미디어 기업만이 살아남는. 아니면 전문 분야를 개척하거나 틈새 시장을 노려야 하겠지요. 색깔이 다양하거나, 색깔이 확실하거나.

지금 형국은 '올드 미디어'만으로는 안된다는 사실 하나만 확실할 뿐.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위기이거나 기회이거나.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오늘의 숏뉴스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