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15) 서울중앙지법에서 관심을 끄는 한 사건의 선고공판이 예정돼 있었습니다.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회에서 포스코를 상대로 낸 위자료 청구 소송인데요,
소송 취지를 요약하면 "포스코가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지어졌는데,
이 돈은 원래 희생자 유족에게 갔어야 할 돈이니 포철이 대신 배상하라"는 것입니다.
선고공판인 만큼 희생자 유족 100여 명은 재판정으로 몰려왔습니다.
오전 10시 선고가 있은 뒤에는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알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재판이 돌연 연기가 됐습니다.
이유는 이 사건을 담당한 조 모 판사가 "몸이 아파서"였습니다.
재판 결과를 보러 온 100여명이 유족회 사람들과 관계자들은 허탈해질 수밖에 없었죠.
조 판사는 과거에도 이런 일이 한두 차례 있어서, 일부 신문이 기사화하기도 했습니다.
"몸이 아프다"는 것이 핑계인지 아닌지 확인한 결과 아픈 건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재판은 하루 이틀 안에 끝나는 게 아닙니다.
짧아야 한두 달, 길게는 몇 년씩 끄는 재판도 있습니다.
판사가 기록 검토를 끝내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아팠다면,
그래서 예정된 선고공판에서 선고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면
적어도 몇일 전에는 '아 선고 공판이 어렵겠구나'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조 판사가, 예컨대 한 일주일 전쯤 이런 결론을 내렸다면
원고와 피고 양쪽 변호인들에게 '선고 공판 연기' 사실을 통보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여기에 대한 조 판사의 답은 "원래 공판 연기는 재판정에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맞습니다. 모든 재판에서 재판 연기 선언은 재판정에서 합니다.
법이 엄격한만큼 그래야 법의 권위가 서는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기록 검토도 다 못끝낸 재판을 하면서, 그것도 본인의 몸이 아파서 그렇게 된 걸
아무도 모르게 감추고 있다가 꼭 재판정에서 연기 선언을 했어야 했나 다시 생각해볼 일입니다.
양측 변호인들에게 미리 '연기' 사실을 통보했다면
재판 보러 100여 명이 버스와 기차 타고 먼 길을 오지 않아도 됐습니다.
어제 함께 연기된 다른 10건의 선고 예정 사건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양측의 변호사들은 재판정에 와야죠. 법의 권위와 관련된 것이니까요.
어제 이 해프닝을 보면서,
'법이, 법원이, 구체적으로는 판사와 법원 직원들이 좀 더 친절하면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류를 떼러, 혹은 재판과 관련된 일을 하러 법원에 가 보신 분들 가운데
법원 직원들이 불친절하다고 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제 생각엔, 판사도 마찬가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세상이 다 바뀌는데, 법원은 그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 게 아닌가...
법조팀에서 일하게 됐으니 구체적인 사례를 모아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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