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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중공업 상대 일본내 소송 사례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한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제기한 소송은 3∼4건에 이른다.

대표적인 것은 지난 1995년 박창환(2002년 사망)씨 등 한국인 원폭 피해자 46명이 일본국과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히로시마(廣島) 지방법원에 제기한 이른바 '미쓰비시 히로시마 중공업' 소송이다.

원고들은 일본과 미쓰비시측에 강제연행 및 강제노동에 대한 책임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과 함께 피폭 후 한국인 노무자들을 방치한 데 따른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청구했다.

이 재판에서 원고측은 1999년 3월 열린 1심 선고재판에서 패소했다.

당시 재판 부는 개인은 국제법상 권리주체가 되지 않는다는 점과 구헌법(메이지헌법) 하에서는 국가가 개인의 손해에 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하는 '국가무답책'의 논리를 적용 해 패소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과거의 미쓰비시 중공업과 현재의 비쓰비시 중공업은 별개의 회사라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2005년 1월 항소심 재판부는 강제연행 등의 주요 핵심적인 부분은 모두 기각했지만 원폭 피해 부분에는 승소판결해 1인당 120만엔의 위자료 지급판결을 내렸다.

이 재판은 일본 내에서 열린 한국인 원폭 피해자 관련 재판 가운데 가장 진일보한 판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앞서 한국인 원폭 피해자 김순길씨가 1992년 강제연행 및 강제노동에 대한 책임과 미지급임금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며 일본국과 미쓰비시 나가사키 중공업을 상대로 나가사키(長崎) 지방법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과 최고재판소에서 잇따라 패소했다.

지난 1999년 3월에는 양금덕씨 등 5명이 같은 청구내용으로 나고야(名古屋)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놓고 있는 상태다.

이 밖에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와 신일본제철 등 일본 기업을 상대로 미국 법정에 제기한 소송도 4-5건이 된다.

미쓰비시는 1870년 설립돼 1934년 미쓰비시중공업㈜으로 회사 명칭을 바꾼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태평양전쟁 발발과 동시에 군수산업의 메카로서 군수물자 생산에 앞장섰으며 한국에서 강제징용된 사람들을 노무자로 사용했다. 

그러나 2005년 1월 일본의 패망과 더불어 맥아더 사령부는 평화헌법과 기업정비법을 제정해 군수재 벌의 해체를 명령하면서 미쓰비시는 서일본중공업 등 3개 회사로 분할된 뒤 1964년 다시 미쓰비시 중공업으로 합병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같은 연혁을 이유로 일본 법정은 과거의 미쓰비시 중공업과 현재의 미쓰비시 중공업은 별개의 회사라는 논리를 펴 왔지만 이번 재판에서 국내 법정은 동일한 회사로 판단했다.

(부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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