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7일 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기 총회에서 단체의 이름을 바꾸는 문제를 놓고 文人들 사이에 격론이 일었다고 한다. 작가회의는 원래 ‘자유실천문인협의회’란 명칭으로 출범했다가 지난 87년 6월 항쟁 직후 ‘민족문학작가회의’로 개명한 뒤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름을 바꾸자는 쪽은 ‘민족문학’이라는 말이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주장하고 반대하는 쪽은 ‘민족문학’이라는 말의 유통기한이 끝나지 않았거나 아예 유통기한이 없다고 보는 듯하다.
그런데 이틀 뒤 대부분의 주요 일간지들은 이날 벌어진 논쟁이 명칭 변경 자체보다는 작가회의 내부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생긴 거라고 분석했다. 요컨대 집행부가 지역 회원들에게 명칭 변경 건 자체에 대한 고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일간지는 기사는 이날 일을 ‘문단의 촌극’이라며 운을 뗐는데, 이 신문이 전하는 총회 풍경을-일단 정확하다고 가정하고-보자.
‘김준태 시인은 “문학을 포기해도 민족이란 당당한 말을 포기할 수 없다”며
“아직 민족문학의 깃발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집행부를 겨냥한 그는
“젊은 작가들 몇이 모여 의견수렴도 없이 일방적으로 일을 처리한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는 둘째 치고, 작가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이라며
“우리는 다른 사회 단체처럼 일사불란한 조직이 아니다”고 거세게 항의했다.’
…(중략)…
‘4시간 동안 총회에서 찬반 토론을 벌였던 문인들은 인사동의 한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언제 싸웠느냐는 듯이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신명나게 놀았다.
“문인 단체니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야”라며 울산에서 올라온 김태수 시인이
웃으면서 술잔을 들었다.’
조직이란 기실 일사불란함을 목적으로 한다. 도대체 오합지졸을 표방하는 조직이란 게 세상에 어디 있는가. 그런데 문인들은 대놓고 “우리는 일사불란한 조직이 아니다”라고 한다. “그래서 더욱 자랑스럽다”는 투다. 또 그렇게 싸워놓고도 서로 어울려서 신명나게 논 문인들은 “문인 단체니까 이런 일이 가능한거야”라고 했단다. 이런 자신감과 소속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근대 이전의 서양, 특히 기독교적 사고에서 보면 자신이 속한 계급과 자신의 가치는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게 큰 흐름이었다고 한다. -'수백년동안 자리는 재능보다는 혈연에 따라 분배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수 백년 동안 서양 사회는 통치 자격이 없는 왕, 장원을 관리할 능력이 없는 영주, 전투의 기본 원리도 모르는 사령관, 주인보다 똑똑한 농민, 마님보다 아는 것이 많은 하녀로 가득차게 됐다’ (알랭 드 보통 <불안>중에서)
알랭 드 보통에 따르면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가 18세기 중반부터 세습제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는데 세습의 불합리를 강조하기 위해 든 예가 바로 문단이었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능력 위주의 제도가 자리를 잡아 심지어 세습적 특권의 헌신적인 지지자들조차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삶의 영역, 즉 문단과 비교가 이뤄졌다. 책을 고를 때 중요한 것은 저자의 아버지가 문인인가 또는 부자인가보다는 책이 좋으냐 나쁘냐는 것이다’
이렇게 고래로부터 자유경쟁시장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은 이들이라-역설적이게도 문인들은 대개 이런 자본주의적 경쟁 같은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그들의 자존심이 세고 소속감도 남다른 것 같다.
문학에서 얼마나 문인 개개인의 재능과 역량, 노력이 중요한 지는 다른 분야로 눈을 돌려보면 알 수 있다. 스포츠계 같은 데서는 이따금 노력을 바탕으로 한 세습의 원리가 통하는 걸 본다. 메이저리그 홈런왕 베리 본즈의 아버지인 바비 본즈 역시 뛰어난 야구 선수였고, 켄 그리피 주니어 또한 켄 그리피 시니어로부터 물려받은 탤런트에 노력을 더해 빅 스타가 됐다. 그리고 다들 잘 아시는대로 차범근의 아들인 차두리.-이 경우 과연 세습이 제대로 됐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날로 늘고 있지만-
그런데 왜 문학에서는 세익스피어 주니어, 빅토르 위고 2세 등등은 없는 것일까. 우리는 최치원과 박지원의 자식들이 어떤 훌륭한 문장과 문학을 남겼는지 잘 알지 못한다. (남기긴 했다. 후세가 몰라줘서 그렇지) 문학이란게 부모 자식 사이에도 가르쳐서 되는 건 아닌가 보니 문인들은 확실히 자부심가질 만한 사람들이긴 한가 보다.
* 문학적 재능의 세습 사례, 필자가 과문해서 모를 수도 있으니 아시는 분들은 가르쳐주시길.
근자의 한승원-한강 부녀 빼고.
문인들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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