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미국과 북한의 관계는 현상만을 보면 종잡을 수 없습니다. 파란 불인가 하고 다시 보면 어느새 빨간불로 바뀌고, 충돌로 치닫는 듯 하다가도 대화로 방향을 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뉴스는 이와 같이 밖으로 드러나는 널뛰기만을 쫓아다니지 말고 그 밑에 흐르고 있는 일관된 흐름을 잡아야 합니다. 지난주 북핵 관련 보도에서 그 사례를 살펴봅니다.
지난 19일 SBS 8시뉴스는 미국 힐 차관보의 말을 인용하여 북한과 미국이 금융제재 해제와 핵 문제에 대해 상당한 공감대를 이룬 것 같으며, 6자회담이 곧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23일 뉴스는 북한 측은 미국 입장의 긍정적인 변화를 확인했다며, 북측도 변화가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미국 쪽의 태도 변화는 부시 대통령의 연설에서도 드러났다고 24일 뉴스는 보도했습니다. 부시의 연설이 북한에 대한 거친 표현을 자제하고, ‘집중외교’라는 말로 압축한 것은 북핵문제를 힘이 아닌 대화로 풀겠다는 의지를 시사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19일부터 24일까지의 뉴스에 따르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청신호가 일단 켜진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지난 19일 SBS 뉴스는 이와는 흐름이 전혀 다른 북핵 관련 미국 하원 청문회 소식을 함께 전했습니다.
뉴스는 민주당이 장악한 미국 의회의 한반도 정책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느껴지고 있다면서, 이날 열린 청문회에서 페리 전 국방장관이 폭격을 통해서라도 북한의 핵시설 확대를 막아야 한다고 증언했으며,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원들의 주문도 이어졌다고 보도했습니다. SBS 8시뉴스가 같은 19일 보도한 힐 차관보의 말과 하원 청문회 소식은 북미 관계의 흐름을 놓고 서로 충돌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뉴스는 두 기사를 아무 설명 없이 나란히 보도함으로써 도대체 북미관계가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게 만들었습니다. 더욱이 SBS 뉴스가 전한 청문회 소식은 강경분위기가 좀 과장되었다는 느낌까지 줍니다. 폭격이라도 해야 한다는 페리의 증언에는 “핵 포기를 위한 외교적 노력이 통하지 않을 경우”라는 전제가 붙어 있습니다. 또한 대북 압박을 주문했다고 뉴스가 해석한 의원의 발언은 “북한을 의미 있는 대화로 끌어 들이기 위해 당근과 채찍을 모두 준비해야 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새로운 주장이 아니었습니다.
이럴 때 뉴스는 어느 쪽이 주요한 흐름인가를 가려내고, 주요한 흐름이 아닌 것은 묵살하거나, 설명을 붙임으로써 두 기사가 충돌하지 않게 정리해주어야 합니다. 힐 차관보의 말이 주요 흐름이었다는 것은 그 후 이어지는 뉴스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삼성관련 기사 삭제에 항의하여 장기파업중인 기자들에게 회사 측이 직장폐쇄로 대응한 ‘시사저널’ 사태는 올 초 한국 언론계의 주요 사건입니다. 그러나 SBS 뉴스는 이를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빠뜨리지 말아야 할 뉴스가 빠진 자리는 빠져도 그만인 소식들로 채워졌습니다. 시사저널의 직장폐쇄 조치가 나온 지난 22일 SBS 뉴스는 새 만원권과 천원권을 받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한국은행 앞이 북새통을 이뤘다고 보도했습니다. 앞 번호, 좋은 번호가 찍힌 새 지폐를 받아 비싼 값으로 팔겠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SBS 뉴스는 비슷한 내용을 19일, 20일에 이어 사흘 째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대박을 바라면서 몰려든 사람들에게 그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가를 설명해주는 계도성 기사도 아니고, 이런 현상의 배경을 짚어주는 분석기사도 아닌, 그저 현상자체만을 보여주는 뉴스를 왜 되풀이해서 보도하는지 그 취지조차 분명치 않았습니다. 지난 21일 뉴스는 최근 가수 유니 씨의 자살사건으로 유명인의 자살 후 자살률이 급격히 느는 이른바 ‘베르테르 현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뉴스는 베르테르 현상이 일어나게 만드는 큰 책임이 바로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에 있다는 사실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그 전형적인 사례가 바로 지난 12일 SBS 8시뉴스가 보도한 20대 여성의 자살 사건입니다. 강남의 고급아파트에 살고, 월 2천여만 원을 벌면서 한 유명 남자 연예인과 사귀다 헤어진 젊은 여성이 “세상이 힘들다며” 자살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건이 어떻게 8시뉴스에까지 등장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지난 23일 뉴스는 유신정권 당시 대표적인 공안 조작 사건인 2차 인민혁명당 사건의 피고인들에게 무죄가 선고됨으로써 이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지 32년 만에 법적으로 완전한 명예회복이 이뤄졌다고 보도했습니다. 뉴스는 이 소식과 함께 무죄선고 순간의 재판정과 유족들의 표정, 판결의 의미에 대한 사건 관련자들의 주장과 무죄선고를 끌어낸 변호인 측의 이어지는 소송계획 등을 전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의 이번 판결은 사법부가 잘못된 과거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유신시대의 공안사건 재판에 대한 전반적인 뒤집기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파장이 엄청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뉴스는 이번 판결에 대한 사법부 내부, 검찰, 정치권의 반응, 문제의 인민혁명당 사건 및 재심청구를 기다리는 유사한 공안사건에 대한 설명 등을 계속 보도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아무런 후속기사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한국 사법부의 역사, 더 나아가 한국 현대사가 새로 기록되는 현장을 보고 있습니다. SBS 뉴스도 적극적인 추적 보도로 이 역사의 현장에 동참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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