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벨'에 출연한 일본 무명 여배우 기쿠치 린코(25)가 제64회 골든글로브와 제79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잇따라 오르자 일본에서 지명도와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일제히 "영화 '바벨'에 출연한 여배우 기쿠치 린코는 지난 7일 미국비평가협회에서 신인여우상을 받은 데 이어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 후보로 지명돼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세계적인 여배우들과 함께 당당하게 레드카펫을 밟았고,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도 올라 수상이 기대된다"고 보도했다.
이어 "이는 미야자와 리에, 다케우치 유코 등 일본의 톱 여배우들도 이루지 못한 일을 해낸 것"이라며 기쿠치의 아카데미 노미네이트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일본 배우가 미국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것은 2003년 '라스트 사무라이'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와타나베 겐 이후 3년 만이며 여배우로는 1957년 '사요나라'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낸시 우메키 이후 49년 만의 일이다. 일본에서는 철저한 무명이었던 배우를 아카데미가 인정한 것이다.
지금까지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일본인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특별명예상), '란'의 에미 와다(의상상), '마지막 황제'의 사가모토 류이치(작곡상),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미야자키 하야오(장편애니메이션상) 등이다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랑셰가 주연한 영화 '바벨'은 성경의 '바벨탑 이야기'를 모티브로 미국, 멕시코, 일본을 오가며 인간들 사이의 단절과 소통을 그린다. 일본에서는 4월에 개봉한다. 조연으로 출연한 기쿠치는 1년 넘게 피를 말리는 오디션 끝에 캐스팅됐다. 톱배우라는 이름값에 기댄 다른 배우들과 경쟁, 기쿠치는 실력으로 배역을 따낸 것이다.
1999년 기쿠치 유리코라는 이름으로 영화 '살고 싶어'로 데뷔했지만, 이후 단역만을 전전하다가 '바벨'에서 청각장애를 지닌 여고생 '지에코'를 연기했다. 속옷을 벗고 일부러 다리를 벌리는 등 전라 연기도 서슴지 않으며 도발성과 순수성이라는 복합적 감성을 표현했다. 또 여고생 때의 젖살을 표현하기 위해 체중을 불리고, 실제 장애인처럼 수화로 생활을 하기도 했다.
기쿠치는 "내겐 분에 넘치는 영광이며 지금까지 변함없는 팬으로 봐주신 부모님께 가장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면서 "시상식에서 스타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는 기대감과 수상 소감을 발표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립니다"라고 밝혔다.
AP통신은 "기쿠치는 팀 버튼, 페드르 알모도바르, 우디 앨런 등 거장들과 작업하기를 원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그녀의 차기작은 일본 코미디물로 '바벨'에서 맡은 드라마틱한 역할과는 거리가 먼 배역에 캐스팅될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편 기쿠치 이외에도 일본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가 작품상, 감독상, 음향편집상 등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돼 수상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태평양전쟁을 다룬 2부작 중 하나로 아카데미위원회는 같은 전쟁을 미국인의 시각으로 담은 '아버지의 깃발' 대신 일본판을 후보로 선정했다. 북미 흥행수입은 240만 달러(약 22억 원)로 그리 많지 않았지만 작품성을 인정한 것이다. 영화에는 와타나베 겐, 가세 료, 나카무리 시도 등 중량감 있는 일본 배우들이 출연했다.
(도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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