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007년의 첫 달, 반이 지나갔습니다.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요즘 감기가 아주 독하다던데, 툭하면 감기 걸리는 제가, 올겨울은 어떻게 용케 안 걸리고 지내고 있으니까요. 예전과는 달리 비타민제를 꼬박꼬박 챙겨먹고 있는 덕을 보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요즘 공연이 아주 많습니다. 보통 1월은 공연 비수기라고 하는데, 이제는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저같은 공연 담당 기자에게는 쏟아지는 공연이 엄청난 '압박'입니다. 물리적으로 다 볼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주요 공연들은 봐줘야 공연계 흐름을 따라갈 수 있으니까요.
다음은 사람마다 '다른' 취향에 대한 이야깁니다. 이번달 클럽 발코니 매거진에 기고한 글이기도 합니다.
같은 공연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른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는 보통 비슷한 방향으로 수렴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가끔씩 예외는 있더라도, 나의 평가 역시 대개 이 방향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나는 공연에 관한 한, 크게 ‘유별난’ 취향을 가지지는 않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최근에 본 몇몇 공연들에 대해서는, 나와 다른 관객들의 반응이 계속 엇갈렸다.
요즘 대학로에서 ‘잘 나가고 있는’ 창작 뮤지컬 ‘뮤직 인 마이 하트’를 볼 때였다.
뮤지컬을 보면서 내내 주인공 남녀 둘이 왜 사랑에 빠지는지, 왜 이 사랑이 위기를 겪는지, 도대체가 공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니 주인공의 대사가 ‘닭살’로 여겨질 수밖에.
상상력이 빛나는 재미있는 장면들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러나 다른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은, 나를 어디서 뚝 떨어진 외계인인 것처럼 느끼게 했다. 어어? 이거 왜 이러지? 왜들 이렇게 좋아하는 거야? 내가 이상한 건가? 그나마 동행했던 후배가 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여서 다행이었다. 결국 우리는 ‘이게 요즘 젊은 사람들 취향인가 보다’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 그럼 내 감각은 젊은 사람들 기준으로 보면 ‘낡았다’는 뜻인가.
내한공연을 앞둔 ‘태양의 서커스’를 취재하기 위해 갔던 라스베이거스 출장 길. ‘태양의 서커스’의 가장 최근작인 ‘러브’를 봤다. ‘비틀즈’의 음악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공연은 딱 꼬집어서 ‘어떤 공연’이라고 설명하기 힘들었다. 서커스의 곡예와 힙합, 비보잉, 현대무용, 익스트림 스포츠, 영상, 모든 것이 뒤섞여 비틀즈의 명곡들을 생생한 시각적 이미지로 무대 위에 구현하고 있었다. 게다가 무대 곳곳에 설치된 대형 스피커는 물론이고 의자마다 스피커가 붙어있어, 그야말로 온 몸이 음악에 흠뻑 젖는 느낌이었다.
공연은 비틀즈의 생전 연주 영상이 대형 스크린에 비치면서 ‘All You Need Is Love'가 울려 퍼지는 것으로 피날레를 맞는다. 관객들도 함께 이 노래를 부르면서 대단원을 장식하게 되는데, 이 대목에서 갑자기 내 가슴 속에서 뭔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비틀즈에 대한 ’존경의 염‘이 뭉클뭉클 솟아나는 이 작품에서 나 역시 뭔가 다른 작품을 볼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던 것이다.
’All You Need Is Love'라는 가사가 왜 이렇게 감동적으로 들리는지. 감격에 겨워 공연장을 나서는데, 아, 이게 웬일인가. 함께 공연을 봤던 일행은 대부분 그저 그랬다는 표정이었다. 내 벅찬 감격을 나눌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아, 비틀즈의 광팬으로 보였던 중장년층 현지 관객들은 예외로 하기로 한다.)
“좀 유치하지 않아요? 노래 가사에 너무 얽매인 것 같아. 'Octopus Garden' 노래 나올 때 무대에 해파리, 문어 이런 것들 둥둥 떠다니고.”
일행 중 한 명의 말이었다. 그렇긴 하다. ‘Love'는 마치 곡 하나하나의 뮤직 비디오를 무대에서 펼쳐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때로는 정체불명의 ’잡탕‘ 같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좋았다. 새롭고 재미있었던 것이다. 아, 비틀즈의 음악이 워낙 좋아서 그랬을까. 어쨌든 이번에도 나는 ’소수‘가 됐다.
프랑스 뮤지컬 ‘돈 주앙’을 봤을 때도 그랬다. 너무너무 재미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칭찬해 마지않던 그 뮤지컬. 그런데도 나는 중간에 졸았다. 노래 하나하나는 나쁘지 않은데, 계속해서 듣다 보니 그 노래가 그 노래 같이 들려 지루했다. 춤은 볼만했고 배우들의 ‘비주얼’도 괜찮았지만, 결정적으로 드라마가 싱거웠다. 그럭저럭 볼거리로 나쁘지 않았지만 만족스러운 작품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공연이 끝나자 곳곳에서 기립 박수와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다른 관객들은 나보다 훨씬 재미있게 이 작품을 봤나 보다. 공연 관계자에게 들으니, 이 날은 좀 덜한 편이었고, 거의 매일 전원 기립박수가 나왔다고 했다. 이번에도 나이 탓을 해야 할까. 정말 내 감각이 무뎌지거나 낡은 건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나는 정작 다른 사람들에게는 ‘걱정 말고 네 판단에 자신을 가지라’고 했었다. 몇 달 전 딸아이와 함께 무용 공연 한 편 봤을 때의 일이다. 나는 그저 그랬는데 딸은 재미있게 본 듯한 눈치라서 산통을 깰까 봐 별로 공연 얘기는 하지 않고 집에 돌아왔다. 며칠 뒤 집에서 다시 그 공연이 화제에 올랐다. 내가 남편에게 ‘너무 잡스러워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모르겠더라’고 했더니, 딸이 끼어들어 ‘맞아’ 하고 거들었다.
“그래? 너는 재미있게 본 줄 알았는데?”
“아니야. 엄마가 뭐라고 할지 몰라서 그냥 가만있었어.”
엄마도, 딸도, 서로 공연을 본 감상이 다를까 걱정한 나머지, 당시에는 별 얘기를 안 하고 넘어갔던 것이다. 딸은 이제야 엄마의 감상도 자신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 놓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은우야, 공연이 재미없으면 재미없다고 해도 돼. 엄마한테는 재미있는 공연도 너한테는 재미없을 수 있고, 엄마는 재미없어도 너는 재미있을 수 있는 거야. 공연 보고 나서 생각은 다 다를 수 있어. 중요한 건 자기한테 재미있느냐 없느냐 하는 거지, 남들 생각이 아니야.”
나는 딸에게 이렇게 얘기해놓고, 지금 와서 내가 남들과 취향이 다른 것 같다고 걱정하고 있으니. 딸이 들으면 웃을 일이다.
어쩌면 이런 걱정에는 ‘다르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참 요상해서, 어떤 때는 별 개성 없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것에 질색하면서도, 또 어떤 때는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데 안도하기도 하는 것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다르다’와 ‘틀리다’라는 단어를 같은 뜻으로 쓴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본래 ‘다른’ 말이다. ‘맞지 않다(Wrong)’는 뜻의 ‘틀리다’를, ‘다르다(different)’와 혼동해서 쓰게 된 것도, 혹시나 은연중에 형성된, ‘다른 것’을 ‘틀린 것, 옳지 않은 것’으로 보는 관념 때문이 아닐까.
정말 내 감각이 무뎌졌을 수도, 낡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취향을 무리하게 다른 사람들과lsquo;비슷하면서도 다른’ 존재이니까. 게다가 한 사람의 취향 역시 끊임없이 바뀌는 법이다. 당장 나부터, 뮤지컬 ‘렌트’ 국내 초연 당시 다른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소외감을 느꼈을 때만 해도, 몇 해 뒤 내가 ‘렌트’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러고 보면,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고 하더니, ‘움직이는 것’이 사랑만은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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