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오래된 정원'-그리움, 사랑 그리고 상처

임상수 감독은 자신의 작품 '오래된 정원'이 20세기말 콩가루 가족의 쿨한 모습과 그 속의 상처, 가치관의 혼돈 속에서 자아 찾기를 보여준 '바람난 가족', 10.26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그때 그 사람들'에 이어 현대사 3부작의 완결편이라고 합니다. 시간 순서상으로 선보인 것은 아니지만 386 세대 80년대 초반 대학을 다닌 임 감독이 자신이 살아온 시기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해석하고 또 질문을 던집니다.

'오래된 정원'은 황석영의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방북사건 이후 해외체류에 이어 수감생활을 마친 뒤 쓴 이 소설은 돌아보고 곱씹어볼만한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80년대를 돌아보며 한국사회와 사회주의권 몰락을 배경으로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과 변화된 세상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그렸습니다. 풍부한 통찰과 유려한 문체에 매료돼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임상수 감독은 큰 틀은 유지하되 자신의 시각으로 다시 생략할 것은 생략하고 넣을 것은 넣는 창조적 변형을 시도했고 그 성과는 원작에 짓눌리지 않고 감독 특유의 개성을 불어넣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독재 투쟁에 앞서던 오현우(지진희)는 광주항쟁 이후 수배가 되자 기약없는 도피생활을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숨겨주는 시골학교 미술교사 한윤희(염정아)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외딴 시골에서 6개월간 둘만의 따뜻하지만 죄스러운 시간을 보냅니다. 다시 동지들을 규합하는 과정에서 경찰에 검거돼 무기형을 구형받고 17년 만에 다시 세상으로 나옵니다. '니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엄마는 네 편이다'하던 어머니(윤여정)는 8,90년대를 '방배동 빨간바지'로 이름을 날리며 부동산 투기로 돈을 모아 출소한 아들에게 1천만 원이 넘는 명품 옷을 척척 사줍니다. 그리고는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 '한윤희라고 알지. 죽었다더라'...

현우는 가물가물해지는 20년전 추억을 찾아 외딴 마을 갈뫼를 다시 찾고 거기서 윤희가 남긴 일기장, 메모, 전해지지 않은 편지, 그림을 어루만지며 회한의 추억에 젖습니다. 현우와 헤어진 후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며 운동권 후배들을 숨겨주고 도와주지만 어느 편에 뚜렷이 서지는 않고 후에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출마를 꿈꾸는 주영작(바람난 가족의 남자 주인공)도 만나면서 현우의 딸을 혼자 어렵게 키워갑니다.

80년대 한국 사회에서 혁명을 꿈꾸고 투쟁해왔던 젊은 청춘의 삶과 사랑을 진지하게 다루면서 냉정하리만큼 객관적인 관찰로 일관합니다. 임상수 감독은 대학시절부터 철저한 관찰자였다고 자신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곳곳에서 특유의 재치와 입담, 충격 요법도 등장하는데 이런 부분들이 감독 특유의 색깔을 드러내주며 영화에 생명력을 더합니다. 악덕 기업에서 부당해고에 맞서다 스스로 몸에 불을 당기는 전후 장면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거나 86년 건대사태를 재현한 장면은 소름끼칠 정도로 시대의 아픔을 담아냅니다. 기계적으로 진압작전에 임하는 백골단의 모습, 무기수인 현우 형을 어떻게 꺼내야하느냐는 질문에 ‘전두환을 죽여버려야죠.’하는 답변, 한윤희가 주영작을 보낸 뒤 카메라를 바라보며 설명하는 장면 등등은 생경하면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도드라지게 하는 장치입니다.

이런 사회성을 앞뒤 좌우로 풍부하게 두르고 있지만 결국 핵심은 6개월 만나고 20년 가까이 헤어져야만 했던 두 남녀의 애틋한 사랑입니다. 얼굴 한번 보지 못했던 딸을 만나는 장면에서는 인파 사이로 눈이 내리고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윤희가 환상인듯 실제인듯 현우 주변을 맴돌며 스쳐지나가고 백발이 성성해진 현우가 윤희를 닮은 딸을 만나 윤희의 마지막 작품을 선물로 줍니다. 가슴 아픈 사랑과 비극적인 이별을 거쳐 앞으로도 많이 남은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과 전망을 제시하며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그때의 회한이나 상처에 얽메이지 말고 그때 정신만은 잃지 말고 살아가자는 권유로 들립니다. 정말 냉정한 관찰의 시선이라도 관찰할 당시에는 어땠을까하는 궁금증도 생깁니다.

 

7.80년대, 서정시가 통하지 않고 알콩달콩 예쁜 사랑이나 행복도 죄스러웠던 시절, 뜨겁게 투쟁하고 고민하고 아파하던 젊은 청춘들은 이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고 그때 그 굴레를 벗어던져도 아무도 시비 걸지 않을 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히려 더 사악하게 변신한 일부 인사들의 행태에 대한 비판도 담고 있어 시사회 후 소위 진보진영으로부터 그리 달가운 반응을 얻지 못한다고 합니다. 소위 보수진영은 '왜 저렇게 힘들게 살어' 정도의  반응이랄 것 까지도 없을 듯 합니다.

시사회 때 80년대 태어난 젊은 후배와 함께 봤는데 이 친구는 도통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그 시대 끝무렵을 거쳐온 그래서 많은 부분 공감하고 두 남녀가 불쌍해서, 시대의 무게가 아니었다면 희생하고 고초를 겪으며 낭비하지 않았을 시간에 대한 회한에 약간의 괴로움과 불편함같은 거북스러움이 얹어지며 본 저로서는 20년의 시간이 그렇게 까맣게 잊어도 괜찮을 만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하는 질문과 함께 현재의 삶과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