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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정 "'인간극장'아닌 성장드라마"

영화 '허브'에서 장애우 연기

'올드보이'와 '웰컴 투 동막골'의 잔상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일까.

'연애의 목적', '도마뱀' 등 그리 튀지않은 역을 잇달아 했음에도 희한하게 강혜정의 이미지는 여전히 강하다.

그런 그가 쉽지않은 장애우 연기로 또 다시 깊은 인상을 준다.

스무 살이지만 일곱 살 지능에서 멈춰버린 정신지체 장애우의 사랑을 그린 영화 '허브'(감독 허인무, 제작 KM컬쳐)에서다.

어떤 캐릭터든 배우에게는 도전이겠지만 좀체 만나기 어려운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순수하고 밝고 감동이 있었어요. 안할 수 없죠.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제가 맡게 된 거예요. 하하."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은 채 그는 차상은과 영화를 소개했다.

"상은의 모델이 없으니까 처음엔 막연했습니다. 대본연습을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잡아나갔지만 장면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았어요. 그래도 힘든 만큼 해내고 난 이후 감정도 짜릿했죠."

상은이가 어떤 감정일까 늘 고민됐다.

일곱 살의 정신세계를 갖고 있지만 20년 동안 몸으로 습득한 것은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반창고도  잘  붙일 수 있고 청소도 잘하며 포장으로 직장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특별해 보이지 않고 되레 평범한 아이예요. 다만 좀 엉뚱할 뿐이죠."

영화는 두 개의 큰 축으로 나뉜다.

엄마와의 사랑과 종범이라는 한 남자와의 사랑.

"모녀라는 관계는 가장 평범한 사이지만 그 무엇보다 특별한 관계죠. 그렇다고 현숙이 특별한 엄마로 남고 싶지는 않았을 거예요. 다만 상은을 독립적으로 키우고자 했을 뿐이죠. '내가 없어도 잘살아'라며."

이 영화가 그저 '인간극장'류로 장애우의 일상을 담는게 아닌 '성장 드라마'로 보이는 건 종범과의 사랑이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

"멜로 코드가 있다는 게 다른 장애우 영화와 가장 큰 차별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잘 표현돼야 상은이 성숙해가는 과정이 잘 표현되는 거죠."

상은이 종범에게 이별을 고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그는 "더디지만 멈춰있는 건 아니다. 성장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어느 한 순간 상은이가 부쩍 자랐다는 걸 느끼게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화를 찍으며 내 사람, 내 가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단다.

"제가 이만큼이나 컸어도 여전히 절 걱정하는 아버지가 생각났고 제가 사랑하는 단 한 존재를 떠나보내야 하는 자식의 심정도 느껴졌어요. 효도해야죠. 근데 지금도 잘 안되네요."

장애를 갖고 있는 딸과 죽음을 앞둔 엄마 이야기.

그 이야기의  전개가  다분히 예측 가능할 수 있다.

"예측 가능하다는 게 나쁘지는 않잖아요. 진정성만 있다면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감정을 거르지 않고 다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야만 상은이 고통을 극복한 후의 감정이 더 깨끗해질 수 있으니까."

단순명쾌한 답이다.

"우리 영화의 강점은 밝다는 거예요. 웃기다는 게 아니라 밝은 거죠. 영화 속 등장인물 중 그 누구도 찌들어 있지 않아요. 장애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해서 소외된 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들도 평범한 사랑을 할 만큼 충분히 독립적이라는 걸."

상은이 다른 사람과 똑같이 한 인간으로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줬듯 강혜정 역시 배우로서 참 잘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연인 조승우와 찍었던 '도마뱀' 을 빼고는 흥행도 작품성도 인정받은 영화를 해왔다.

"정말 다행인 건 연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필모그래피가 내 역사다'라고 생각하며 연기했던 거예요.  제가 선택한 작품에 대해서는 목숨만 빼고 다 줄 정도로 쏟아 부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결과물은 항상 아쉬웠지만요. 앞으로 더 잘해야겠죠."

자기가 하는 일에 목숨만 빼고 다 줬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데서 이미 강혜정은 특별하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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