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1일 가슴 속 깊이 담 아뒀던 '격정'을 토해냈다.
이날 오후 서울 쉐라톤워커힐에서 민주평통 상임위원회에 참석, 한미동맹 논란을 비롯해 지난 4년간 외교안보 이슈에 대해 회고하는 자리에서다.
노 대통령이 지난 10일 해외순방을 다녀온 후 대외 발언을 가급적 자제한 가운데 나온 이날 발언 수위는 일부 참모들 조차 "깜짝 놀랐다"고 말할 정도로 강도가 매우 높았다.
인사말은 당초 예정된 20분을 훌쩍 넘긴 1시간 10분여간 이어졌다.
노 대통령이 작심하고 '고강도' 연설을 준비했음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노 대통령은 착잡한 표정으로 "지금 국민들한테 원칙 없는 정부로 인식되고 있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고 탄식하며 말을 이어 나갔으나 안보문제에 들어가면서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문제에 이르자 최고조에 올랐다.
원로 장성들을 겨냥, "작통권 환수하면 안 된다고 줄줄이 몰려가서 성명내고, 자기들 직무유기 아니냐"며 고성으로 성토했고 "모든 것이 노무현 하는 것 반대하면 다 정의라는 것 아니냐. 쟤 흔들어라 이거다. 난데없이 굴러 들어논 놈"이라고 자극적 언사까지 동원하며 손으로 연단을 내려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원색적 비판은 보수세력이 여전히 냉전사고 속에서 자신을 통치권자로 인식하지 않고 '반대를 위한 반대'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실제로 "양심껏 소신껏 하면 판판이 깨지는 게 정치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사회 주도층과의 괴리를 인정했다.
노 대통령은 그 사례로 한나라당이 이재정(李在禎) 통일장관의 한국전쟁 발언을 문제 삼아 내정 철회를 요구한 것을 거론했다.
노 대통령은 "장관을 지명해 국회 청문회 내보내놓으면 '6.25가 남침이오 북침이오'라고 묻는다"며 "제가 6.25 전쟁이 남침인지 북침인지도 모르는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할 만한 사고력을 가진 대통령이라는 전제가 붙지 않느냐. 참 억울하다. 저는 제정신이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치풍토에 대해 "'노 후보, 김정일이라는 사람이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물어서 '예' 하면 그날로 박살난다"며 "한국 사회가 그 정도 합의가 안 된다. 어떤 사람은 걔 완전 돌았어 이런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언론관계에 대해서도 "아내와 이틀에 한 번씩 말다툼을 한다. 신문을 보란다"며 "그러나 보고 나서 참모랑 대화를 하면 자꾸 엇나간다"며 좁히기 어려운 괴리가 있음을 지적했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차기 대선을 1년 앞두고 임기말 구상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특히 관심을 끌었다.
노 대통령의 발언 강도와 내용에 미뤄 일단 외교안보 등 외치분야 만큼은 참여정부의 초심대로 '마이웨이'를 가겠다는 의지가 읽혀진다.
노 대통령은 "원칙이란 참여정부 최대의 목표가 흔들리고 있으나 저는 결코 승복하지 않는다"고 다짐했고 "터질 때는 터지더라도 다르게 할 건 다르게 하겠다. 그게 단임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한 핵심 참모는 "대중 앞에서 길게 연설을 하다 보니 발언 수위가 높아진 것"이라며 "외교안보 분야에서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이 옳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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