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박찬종 전 의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 서한 전문:
後廣 金大中선생께 드리는 글
평강하신지 문안드립니다.
"전두환 군사정권에 의하여 추방, 미국에 망명중이던 김대중 선생께서 2월 7일 귀국하십니다. 그의 무사 귀국을 위해, 부산시민들께서 열렬한 박수로 격려 해주십시오!"
이말은, 1985년 2월 12일 제12대 국회의원 총선거때, 제가 입후보 했던 부산지역에서 연설 할 때마다 앞머리에 했던 것입니다.
이 선거를 비롯, 선생과 저 사이에는 민추협 (民推協), 신민당, 통일민주당을 거치면서 인연이 켜켜이 쌓여있습니다.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 선생께서 당선 되셨을때, 선거과정에서 선생과 제가 밀약, 거래를 했다는 허무맹랑한 오해가 있었지만, 저는 당선을 축하했고, 지역갈등 극복과 화해, 번영의 초석을 놓는 대통령이 되기를 기원했습니다. 그때로부터 어느덧 9년, 선생과 저는 단절의 세월을 지냈습니다.
오늘 제가 펜을 든것은 우리 조국의 안보환경이 위중 (危重)하고, 민생이 어려움에 빠져들고 있는데, 선생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국민을 우려케 하는 말씀과 행동을 보여주고 있기에, 몇가지 고언 (苦言)을 드리고자 함입니다.
(1) 이른바 6.15 남북공동선언은, 북한이 핵실험을 통해 핵을 보유함으로서 그 순간 원인무효가 되었습니다.
6.15 공동선언은 선언문에 명시한대로 91년 체결한 남북 비핵화 선언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북한이 핵을 보유한 이상 그 공동선언은 북한에 의해 파기 되었고 더 이상 존속할수 없어 이미 폐기 된것입니다.
(1)
사정이 이런데도 선생은 북미대화 부재에서 초래된 사태이므로, 미국에 직접대화 할것을 촉구하는 등 여전히 그 공동선언이 유효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인식은 착오이고 위선입니다. 선언의 상대방인 김정일 위원장께, 선생께서는 엄중한 항의를 하고, 조건없이 핵폐기를 하고 공동선언 정신에 복귀하라고 촉구하는것이 도리인데, 북한의 핵개발을 미국 탓으로만 돌리고 있습니다.
남북대치 상황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순간 군사적 균형은 깨어진 것입니다. 핵무기는 양적군사 균형만 깨는것이 아니라, 질적균형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것입니다. 핵무기의 군사전략상 원칙이 이러한데도, 북한핵은 방어용이며, 남한을 겨냥한것이 아니라는 노정권의 주장을 선생께서 앞장서 대변하고 계십니다.
이는 북한의 의도를 어림짐작한 토대위에서, 저들의 선의에 기대어 국민들의 안보 불감증을 부추기고 우리의 안보체계를 흔드는 상황을 만들어 가는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공동선언이 폐기 됐음을 분명히 하십시오.
(2) 이른바 햇볕정책으로 불리는 대북한 포용정책은 명백히 실패하였습니다.북한의 핵보유 이후의 무조건적 지원은 "조공"(朝貢)입니다.
햇볕정잭은, 동서독 관계에서 처럼 교류, 지원이 상호주의, 투명성이 확보되는 조건하에 시행돼야 하며, 목적이 아닌 남북 화해, 평화를 위한 수단이 되었어야 마땅합니다. 이런 원칙을 무시한 무조건 퍼주기식 지원은 남북 긴장완화에는 한순간 도움이 되었겠지만, 북한의 "버티기작전"을 도와서 핵보유에 이르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북한의 핵보유는 재래식 무기에 의한 남북 군사균형을 깨고 북한이 군사적 우위에 선것이므로, 이후 무조건적 대북지원은 약자가 강자에 갖다 바치는 조공입니다.
선생이 햇볕정책창시자로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단안을 내리십시오.
(2)
(3) "무호남 무국가" (無湖南 無國家)라고 하였는데, "무영남 무당선" (無嶺南 無當選)은 어찌 하란 말씀입니까?
선생께서 지난주 목포를 방문해서 無湖南 無國家라는 휘호를 쓰고 "대통령, 노벨평화상등 모든 영광을 전라도의 여러분께 바친다"고 했습니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이념이나 어떤 주의보다 위에 존재하는것이 "전라도주의, 경상도주의"입니다. 이 심각한 지역갈등은 선거, 남북관계 인식등에 적대감을 형성할 정도의 편가름을 하는 수준에 있고, 우리는 이 현실을 애써 외면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선생께서는 "영호남" 지역 갈등 위에서 정치적으로 성취를 쌓았고, 대통령직에까지 올랐습니다. 군사정권이 깊이판 지역주의를 온존(溫存)시키고, 혜택입은 대표적 인물 가운데 선생이 앞자리에 꼽힙니다.
1987년 대통령 선거때 巨山선생과 後廣선생께서 분열하지 않았다면 "노태우 군사정권"의 출현을 막고, 고질적인 영호남 지역 갈등은 극복의 결정적 계기를 맞이 했을 것입니다. (그때 제가 그 분열에 항의,삭발한 일 기억하시겠지요.)
그 역사적 분열에 대해서 지금껏 사과한 일 없고, "4자 필승론" "전자 개표부정" 주장등으로 얼버무려 온것은 지도자의 태도일수 없습니다. (巨山선생도 같은 책임이 물론 있습니다. )
어떻든 선생께서 97년 대통령 선거에서 네 번째 도전 끝에 당선되셨습니다. 왜 당선 될수 있었습니까?
부산, 영남표 때문이었습니다.
호남의 사실상의 100% 지지표에 부산, 영남 지역에서 예상외로 많은 지지표가 나왔고 덧붙여 2위 낙선자인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표가 그 지역에서 예상외로 적게 나온 결과로 당선될수 있었습니다.
(3)
이번에 선생께서는 목포, 전라도에만 가셨고, "호남인의 은혜"를 갚는다고 했습니다.
부산, 영남은 안가실 것입니까? 돌을 맞아도 좋다는 심정으로 부산역 광장에 서는것이 진정한 큰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선생의 이번 행보는 심각한 지역갈등 구조를 고착시키는 쐐기를 박는것과 같습니다. 이를 깨어야 할 책임이 선생께 있지 않습니까?
선생께서는 목포 방문에 이어 전라도 표심을 100% 묶어내는 "전라도 당" 창당을 공개적으로 성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편가르기식 현실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연연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왜 선생께서 서두르시고 나서는 것입니까?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고 있는 것입니까?
저는 최근 선생의 일련의 말씀을 듣고, 행보를 보면서 망연자실 (茫然自失)한 심정을 금할수 없습니다.
이 공허함을 어떻게 메워야 할른지, 선생의 회답을 기다리겠습니다.
건승을 기원하면서...
2006. 11. 6
朴 燦鍾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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