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라이온 킹' 잘 될까?

안녕하세요?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10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올해도 이제 두 달 남았습니다. 후회없이,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저는 며칠 전에 '라이온 킹과 한국 뮤지컬'이라는 제목의 편지를 보내드렸었는데요, 오늘은 당시 말씀드렸던 대로 저의 '라이온 킹' 관람기를 보내드립니다.  

***제 블로그(http://ublog.sbs.co.kr/shkim0423)에도 올렸습니다.

드디어 '라이온 킹' 한국 공연을 봤다. 정식개막 직전에 열렸던 마지막 프리뷰 공연이었다. 알려진 대로, 뮤지컬 '라이온 킹'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199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고, 1998년 토니상 작품상과 최우수 연출상을 비롯해 6개 부문을 휩쓴 세계적인 화제작이다.  동물들만 등장하는 원작 애니메이션을 뮤지컬 무대에 옮기면서, 오리지널 연출가인 줄리 테이머는 무한한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발휘했다.

1막이 시작되면 무대는 황금빛 태양이 떠오르는 초원으로 변하고, 곧이어 초원을 메우는 '동물 퍼레이드'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원숭이 주술사 라피키의 영혼이 느껴지는 선창에 따라 차례차례 등장하는 우아한 사슴, 치타, 기린, 초원을 날아다니는 새들, 거대한 코끼리...... 가운데 회전무대가 솟아오르면서 높은 절벽이 되고, 사자 왕 무파사가 다스리는 왕국의 계승자로 갓 태어난 아기사자 '심바'가 왕국 시민들 앞에 첫선을 보인다. '생명의 순환'을 뜻하는 'Circle of life'가 장엄하게 불려지는 이 장면, 압권이다.

이밖에도 '라이온 킹'에는 무대장치나 의상, 연출 면에서 신선한 충격을 주는 장면들이 숱하다. 줄리 테이머는 동물 모양 마스크를 배우의 머리에 씌우는 관처럼 사용해, 그 마스크의 형상으로 동물을 표상하면서도, 그 역을 맡은 배우의 표정 연기를 드러냈다. 또는 앵무새 '자주'나 미어캣 '티몬'의 예에서 보듯이 배우가 인형을 조종하게 하면서도 그 배우의 표정 연기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때로는 그림자 인형극으로 상황을 묘사하기도 한다. 동물과 사람, 인형과 배우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대초원 '프라이드 랜드'에서 음산한 '코끼리 무덤'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무대가 안겨주는 시각적 즐거움은 엄청나다. 수직 몇 겹으로 세운 사각 무대를 사용해 멀리서부터 무대 바로 앞까지. 들소 떼가 돌진해오는 것을 표현하는 장면은 기발한 상상력과 아이디어의 극치다.

하지만 인터미션 이후, 극이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극의 긴장감은 다소 떨어진다는 게, 2년 전,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의 느낌이었다. 2막에서도 심바가 밤하늘에 떠오르는 (혹은 심바가 바라보는 물 속에 비치는) 아버지 무파사의 형상을 만나는 장면 등 반짝거리는 순간들이 있긴 하지만, 종반으로 갈수록 무대나 의상, 연출에서 느꼈던 초반의 신선한 충격은 가라앉고, 드라마 자체에서는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시키가 제작한 한국어판 '라이온 킹'을 보면서도 이런 느낌은 그대로 재연됐다. 두번째 보는 것인데도 막이 오르자 무대 위에 펼쳐지는 화려한 색채의 무대, 조명, 의상과 연출에는 다시한번 감탄했고, 이 감탄은 극이 종반으로 치달을수록 급격히 수그러들었다.

뒤로 갈수록 신선감이 떨어지는 것은 원 작품 자체가 그런 것이니, 논외로 하더라도, 이번 '라이온 킹' 프로덕션은 아쉬운 부분이 눈에 많이 띄었다. 아무래도 두번째로 보는 것이라 신선한 느낌이 덜해서였을까. 처음 봤을 때와 비교해, 무대 장치와 의상과 색채는 그대로지만,  뭔가 기계적인 느낌이고, 그 '아우라'는 사라졌다고 할까.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성에 차지 않았다. 라피키 역의 배우가 무슨 사정인지 도중에 바뀌었다고 하더니, 신인 치고는 잘 했다고는 해도,  영혼이 느껴지는, 원시적인 생명력이 독특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노래들을 소화해 내기에는 무게감이 부족했다. 다른 배우들도 대체로, 동작이 굳어 있었고, 대사는 맛깔스럽지 못했다. 역을 소화하는 데 급급하다는 느낌. 긴장을 많이 해서 그런가.  게다가 몇몇 배우들은 외모나 목소리가 역할의 이미지와 영 어울리지 않았다.

연기에 공감이 가지 않으니, 2막이 예전보다 더 지루하게 느껴졌다. 등장 인물들(아니 동물들)이 번뇌와 갈등을 토로하며 혼자 노래부르는 장면에서 맥이 빠졌고, 심바가 스카를 물리칠 때조차 긴장이 풀어져 너무 느슨했다. 물론 공연 초반이니 앞으로는 더욱 나아질 여지는 많겠지만 말이다.

요즘 대형 뮤지컬에서는 필수적으로 여겨지는 오케스트라 라이브 반주 대신, 2명의 타악 주자만 등장해 녹음 반주에 맞춰 연주를 하는 점도 걸린다. 귀 뿐 아니라 눈까지 오케스트라 피트 속, 열정적인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연주에 익숙해진 한국 뮤지컬 관객들에게는 많이 아쉬운 점 아니었을까. 시키측은 '일본에서도 도쿄 소재 극장에서만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고, 다른 극장에서는 대부분 녹음 반주를 사용한다'고 설명했다지만.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의 환호성과 박수 소리는 컸고, 몇몇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즐길 만한 공연이었지만, 이는 이번 프로덕션 자체가 훌륭해서라기보다는, 원작의 힘에 기인한 것이라는 게 솔직한 내 생각이다.

은우는 미국에서 봤을 때보다 더 재미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대사를 다 알아들을 수 있으니 더 나았나 보다. 하지만 3시간 조금 안되는 공연 시간은 너무 길었던지, 막판에는 연신 하품을 해댔다. 공연 보느라 강행군을 한 셈이다.

사실 나만 해도 이 공연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마침 그 날 휴가를 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내가 공연 담당 기자라 해도, 평일날 일은 일대로 하고 저녁 공연을 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서초동 예술의 전당 8시 공연에 맞춰 가기도 빠듯한데, 잠실 샤롯데 극장 7시 반 공연을 보기는 더욱 어렵다.

나는 이 날 은우를 데리고 가기 위해 학교에 들렀다 가는 시간까지 고려해 2시간 반 전에 출발했는데도 중간에 차가 막혀서 강남역 부근에 차를 세워놓은 채 지하철로 갈아타고 겨우겨우 시간 맞춰 갔다. (물론 우리 집이 멀기 때문이기도 하다.) 식사는 중간 휴식 시간에 샌드위치로 때워야 했다.

그러고 보면 작품을 떠나, '디즈니표 가족 뮤지컬'은 한국 사람들의 바쁜 일상과는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은 초등학교 3, 4학년들도 밤늦게까지 학원에 다니는 경우가 많으니, 평일날 저녁에 공연을 보기 위해 시간을 내기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어린이들 혼자 갈 수 없으니 어른들이 데리고 가야 하는데, 어른들도 퇴근해서 저녁 7시 반까지 공연장에 가기가 만만치 않다. 어른들의 퇴근 시간도 빠르고, 어린이들의 사교육 열풍도 그리 거세지 않은 선진 외국과는 상황이 다른 것이다. 역시 디즈니 뮤지컬인 '미녀와 야수'나 '아이다'의 한국 흥행 성적이 외국에 비해 부진했던 것도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아직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다는 것은, 거꾸로 그만큼 새로운 관객을 개발할 여지가 많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시키의 '라이온 킹'이 한국의 뮤지컬 시장 확대에 기여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던 것이고. (현재 시키 측은 '라이온 킹'이 올 연말까지 좌석의 절반 정도가 이미 예매됐다고 밝히고 있다.)

국내 최초의 뮤지컬 전용극장인 샤롯데 극장은,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가깝다는 점이 만족스러웠다. 내 자리는 2층의 사이드 쪽이었는데 무대가 한 눈에 가깝게 잘 들어왔다. 다른 시설도 훌륭한 편이었다. 은우가 졸라대서 기념품 매장에서 2만원하는 '라이온 킹' 기념 티셔츠를 샀다.

극장을 나서면서 기분이 약간 묘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공연계 인사 한 명은 언젠가 '라이온 킹 공연이 잘 돼도 걱정이고, 안 돼도 걱정이다'라고 했었는데, 내 기분도 이와 비슷했달까.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오늘의 숏뉴스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