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더 회고록…메르켈 정권 비판
독일 사민당(社民黨, 사회민주당, Social Democratic Party) 정권을 이끌며 7년간 독일 총리를 지낸 슈뢰더(Schroder) 전 총리(Chancellor)가 오랜만에 유럽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9월 현 메르켈(Merkel)총리가 이끄는 기민당(基民黨,기독교 민주동맹, Christian Democrtic Union)을 비롯한 보수연합에 패해 같은 해 10월 정권을 내주고 정치일선을 떠난 지 정확히 1년 만이다. 26일부터 판매되는 회고록 발간을 앞두고 독일 주간지 슈피겔(Der Spiegel)과 인터뷰를 가졌고, 이를 영국언론을 비롯한 각국의 언론이 인용하면서 기사화 됐다. 지금은 러시아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공급하는 '북유럽가스관(NEGP)'의 러시아측 국영회사 가즈프롬(Gazprom) 이사회 고위직을 얻어 논란이 되고 있기도 한 그의 말 가운데 2가지 대목이 세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먼저 독일의 현 메르켈 총리를 지도력이 부족한 정치인으로 평가한 것.
메르켈은 누구인가. 올해 52살(54년생)의 동독 출신이다. 2006 독일 월드컵 한국-프랑스 전이 열린 라이프찌히에서 물리학 박사로 연구생활에 전념하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뒤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여인이다. 1990년 독일 통일 뒤 기민당 당수이자 총리이던 콜에게 발탁됐고, 이후 장관등을 거치며 승승장구하다 마침내 통일 독일의 총리에 오른 이력을 지녔다. 우리식으로 치면 김정일 정권에 반대하던 북한 민주화운동 출신 인사가 남북 통일 뒤 통일 한국의 대통령이 된 셈인데... 우리사회에서도 가능할 지의 여부를 떠나 그녀에게 슈뢰더가 던진 말은 차갑기만 하다. "There is simply a lack of leadership. That has created an incredible disillusionment through the conservative party(간단히 지도력의 부재다. 이같은 지도력 부재는 보수당을 통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환멸을 만들어 냈다. 영국 인디펜던트가 전재한 슈피겔지 인터뷰 내용)".
슈뢰더의 부시 대통령 평가
보수당 정권에 대한 비난이나 평가절하, 재임시절 각종 일화같은 독일의 구체적인 국내 정치상황 보다 우리의 관심을 더욱 끄는 대목이 있다. 현재 한국 사회가 당면한 주요 과제를 해결하거나 적어도 이해하는 단초, 나아가 세계정세를 이해하는 하나의 잣대를 제공받을 수도 있는 언급으로 손색없다. 미국 공화당 부시 대통령에 대한 평가이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7년 동안 총리직에 있던 슈뢰더는 부시 대통령과는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서방세계 경제강국으로 의견을 조율해 왔다. 20c 1,2차 세계대전에서 두 번씩이나 지구촌의 운명을 걸고 한판 대결을 펼쳤던 독일과 미국. 승자와 패자로 운명이 갈렸지만, 현재 특별히 두 나라 사이에 애증(愛憎)관계가 없고, 더구나, 슈뢰더 본인 입으로 다시는 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만큼 정치적 복선(伏線)을 염두에 둔 발언은 아닌 것으로 보여 참고할 만 하다. 슈뢰더는 2003년 이라크 전을 떠올렸다. 이라크전을 앞두고 2002년 독일의 슈뢰더 정부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강력히 반대해 미국과 충돌했다.
슈뢰더 "부시, 신과 대화를 통해 정책결정…협상의 여지가 없어"
슈뢰더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적는다. "우리의 사적인 만남에서 나는 부시 대통령이 얼마나 독실한 신자이며 그가 얼마나 많이 이 신성한 권위에 복종하고 있는 지를 반복적으로 들어야 했다.(During our private meetings, I was reportedly reminded of how 'God-fearing' this president was and how much he considered himself to be in tune with this highest authority,". 현 메르켈 독일 총리가 소속된 정당은 기독교 민주당이다. 다시 말해 슈뢰더 본인은 사회민주당 소식이지만, 기독교라는 이름 아래 정당을 만들고 또 집권하는 종교적인 독일 풍토에서 정치를 한 인물이다. 따라서, 웬만한 내용을 갖고 종교적이란 표현을 하기는 어렵다. 그런 독일 총리가 특정 국가 대통령으로부터 지나치게 종교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면 그 심각성을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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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뢰더 전 총리. 회고록에서 부시대통령을 신과 대화하며 정책결정하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
슈뢰더의 다음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런 종교적 입장을 가진 사람과 일할 때 문제는 정치적인 결정들이 신과의 대화를 통한 결과물로 만들어진다는 인상을 점점 강하게 받을 때 시작된다. 이런(종교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정치적인 선택을 정당화하는 사람은 비판이나 논의를 통해 그의 생각을 바꿔야 할지도 모를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심지어 다소 입장을 완화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The problem I have with such a stance begins when the impression increases that political decisions are being made as a result of a conversation with God. Somebody who justifies his political choices in this way cannot accept that they may be altered or even toned down through criticism or discussion)"
이라크전과 부시의 전쟁 정책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근거없는 이라크 전을 반대하며 적어도 유엔의 이라크 정부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 결과가 나온 뒤에 결정하자는 태도였지만, 미국은 영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밀어붙였다. 지금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대량 파괴무기나 알 카에다 지원 같은 부정확한 정보를 갖고 침공을 강행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현재 이라크전은 제 2의 베트남전으로 비화돼 미국과 영국의 수렁이 되고 있다는 일부 지적에 직면해 있다. 영국의 TV뉴스를 보면 체면 구기지 않고 빠져 나올 궁리에만 몰두하는 미국과 영국의 다급해진 상황이 느껴진다. 이를 보고 있자면 출발부터 무리수가 많았을 뿐 아니라 50만 사상자를 내고 1백60만 명의 피난민을 낸 비극적인 전쟁에 대한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사필귀정(事必歸正)을 생각하게 된다.
[9.11 사태]와 아무 관련이 없는 이라크 양민의 죄없는 죽음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며 군사적 승리에 고무돼 늘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전쟁에 대한 주장을 굽히지 않는 부시. 설마 그의 종교적 신념과 다른 사람을 이단이나 마녀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니겠지만, 정치적 결정을 종교적 판단에서 구한다는 슈뢰더 전 총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다시 생각해 볼 대목이다. 이는 종교와 정치의 연결고리가 20c 이후 거의 단절된 서구 사회에서 지구촌 민주주의와 양심의 자유, 인권을 다시 중세시대로 후퇴시키는 역행으로 받아들여진다. 종교와 정치의 연결성을 찾기 어려운 동양적 특히 한국적 전통에서 더욱 그렇다. 신정 정치(神政政治)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행위에 가깝다.
북핵 문제와 부시의 압박 정책
이슬람 사회인 중동을 떠나 동북아 국제현실로 오면 바로 우리 문제여서 암담해진다. 북한 문제에서 단 한 번의 양보도 없이 일방적 복종과 백기항복만을 강요하는 압박 정책의 부시 대통령. 북한 김정일 정권이 백 번 잘못하는 것임을 전제로 하고, 그런 정권을 다루는 부시 정책의 효용성을 판단하는 문제도 떠난다고 쳐도 도대체 한 번 정하면 입장을 바꾸지 않는 그의 완고함이 어디에 근원을 두고 있는지. 슈뢰더의 회고록은 이런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잣대를 제공해 준다. 슈뢰더의 시각이 꼭 옳다는 게 아니라 이런 시각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자체에서 좀 더 종합적인 가치관으로 세계 문제와 북한 문제, 우리 문제를 들여다 보는 지혜를 얻는다는 의미다. 지구촌 누구나, 또 상당수 미국인조차 자유롭게 미국이나 부시 대통령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할 수 있지만, 그럴 경우 공산주의 동조자로 매도되는 사상적 황무지 단계의 일부 한국 우익 풍토에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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