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으려 한다고 잊혀지는 것도 아니고 잊은 척 사는거죠"
32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성수대교 참사' 12주기인 21일 유족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성수대교 북단 양지바른 곳에 마련된 위령탑 앞에서 추모제를 지냈다.
1주기 추모제에는 100여명이 모여 통곡이 그칠줄 몰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참석 인원은 줄어들어 올해는 9명이 찾아와 담담하게 행사를 진행했다.
유족회 대표 김학윤(40)씨는 추도사에서 "가족을 어이없이 떠나 보낸지 12년이 지나 유족의 상처는 많이 아물었지만 고통스러운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며 "32명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이 땅에서 다시는 부실공사로 인한 대형사고가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추도사와 '영전에 바치는 시'가 낭독되는 동안 12년 전 '그 날'이 뇌리에 되살아난듯 희생자의 이름이 새겨진 위령탑을 말없이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고(故) 지수영(당시 47세)씨의 아내 황옥자(52.여)씨는 "하루 아침에 남편을 잃고 혼자 남매를 키우면서 한 달에 1∼2번 힘들거나 보고싶은 날에는 위령탑 앞에 찾아왔다"며 "원망도 했지만 이제는 나와 내 남편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학여고에 다니던 딸을 잃은 황모(53.여)씨는 "처음에는 딸 아이의 환청이 들 려 다른 집으로 이사할만큼 힘들었지만 세월이 약이었다"며 "살아있으면 29살, 시집갈 나이일텐데 내게는 12년 전 여고생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고(故) 김광수(당시 28세)씨의 형 양수(47)씨는 "잊은 듯 살지만 비오는 날이나 성수대교 근처를 지날 때는 동생이 무척 보고싶다", 유족회 대표 김씨는 "어머니 생신에 쓸 쇠고기를 사온다던 형(중식씨. 당시 31세)은 왜 12년째 안돌아 오는지 모르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오전 故이승영(여.당시 20세)씨의 가족과 '승영장학회' 장학생들이 승영씨의 시신을 기증한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뒤 감은탑에 모여 추모 예배를 가졌다.
이씨 유족들은 '장학회를 만들고 싶다'는 고인의 생전 뜻에 따라 보상금으로 받은 2억5천만원을 전액 교회에 헌증, '승영장학회'를 만들어 그동안 50여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1994년 10월21일 오전 7시40분께 서울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 성수대교 5번, 6번 교각 사이 상판 48m가 붕괴돼 버스 등 차량 6대가 한강으로 추락, 출근·등교길 승객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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