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30분 뉴스에 10분 보도
지난 6월부터 약 4개월 동안 BBC TV가 서울 특파원을 연결해 뉴스를 전한 게 3번째다. 한국 뉴스는 아니고, 북한 관련 뉴스다. 장거리 미사일 발사실험과 지난주 핵실험 계획 발표, 그리고 이번의 핵실험 실시 주장. 영국 TV 뉴스의 경우 녹화해야 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해외 특파원이든 국내 취재 기자들이든 생방송 출연으로 뉴스를 전한다. 정치 관련 소식은 불 밝힌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전하는 식이다. 따라서 생방송이라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대신, 그리 많은 숫자의 뉴스 아이템을 다루지 않기 때문에 뉴스 리포트 소재로 채택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를 갖는다.
공영 BBC 1채널의 경우 저녁 6시와 밤 10시에 30분씩 종합뉴스를 다룬다. 9일 월요일 밤 10시 뉴스를 보자. 주요 뉴스에 이어 톱뉴스로 무려 10분간 북한 핵실험 관련 소식을 전했다. 실험의 개요와 왜 실험을 했는 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를 정리했다. 미국과 영국,일본이 보내는 우려와 경고의 메시지도 빠지지 않는다. 이어 서울 특파원 연결. 서울 시간으로 10일 새벽 6시.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가운데, 남대문의 은은한 조명을 배경으로 BBC 서울 특파원이 한국의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 특파원이 늘 쓰는 상투적인 표현, "북한 국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서울..." 주로 북한에 군사적인 사건이 돌발할 경우 뉴스를 전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 쓰는 말이다. 화면은 높은 철조망과 이를 철통같은 경계로 지키는 한국 군인들의 모습. 이어, 북한의 군사 훈련이나 퍼레이드 장면, 여기에 한국 내 보수단체들의 김정일 사진과 인형 불태우기... 한마디로 막 정변이 일어날 듯한 그런 긴장되는 분위기가 전달된다. 상습 전투지역인 중동의 어느 지역을 연상시키듯이.
이어, 중국 베이징 특파원이 천안문 광장에 나오고, 환한 대낮의 워싱턴 백악관 앞이 연결된다. 먼저, 워싱턴 특파원. 이런 저런 설명과 부시 대통령의 반응을 전하고 끝으로 역시 중국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말로 정리한다. 그리고 마이크가 천안문 광장의 베이징 특파원으로 연결된다. 무슨 반응이 나올까. 베이징 특파원은 중국이 손쓸 일이 특별히 많지 않음을 전한다. 이유는 중국이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할 경우 북한이 더욱 위험한 행동으로 치닫게 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또 하나, 북한이 붕괴될 경우 수백만 명의 난민이 중국으로 밀려들게 돼 중국은 이 점도 염려한다는 분석한다. BBC의 뉴스는 이렇게 10분간이나 북한 핵실험 소식을 다뤘다.
민영 ITV는 베이징 천안문 광장 뉴스 진행
민영 ITV는 BBC보다 한 발 더 나갔다. 밤 10시 30분 종합 뉴스를 번갈아 맡는 앵커 2명 가운데 1명이 아예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뉴스를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우리도 큰 일 터지면 스튜디오를 벗어나 현장에서 뉴스를 진행한다. 쉽게 독일 월드컵 당시 독일 월드컵 경기장에서 뉴스를 전하는 식이다. 영국 TV도 이런 뉴스방식을 곧잘 택한다. 레바논 전쟁 당시 거의 일주일 이상을 레바논 현장으로 가거나 이스라엘에서 뉴스를 진행했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에서 지구촌 경찰 미국을 돕는 지구촌 방범대원으로 보직과 역할을 바꾼 영국의 모습을 확인시켜주는 몇 안 되는 증거물이 바로 언론 특히 TV 뉴스의 국제성이다. 영국 국내문제가 없는 것도 아닌데 이들은 국제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뉴스 시간을 할애한다.
천안문 광장에서 메인앵커가 진행하고, 옆에서 베이징 특파원이 이해를 도왔다. 이어 서울과 워싱턴을 생방송으로 연결해 현지 표정과 정부 당국의 분위기를 전했다. BBC가 담담하게 핵실험 주장과 그와 관련된 주변국 반응, 전망만 다룬 데 비해 ITV는 김정일은 누구인가의 사적인 부분까지 상세하게 보도했다. 역시 북핵 관련 소식을 10분 이상 다뤘다. 그리고 나머지 영국 국내 아이템, 심지어 조간 신문의 머릿기사를 들여다 보는 코너까지 천안문 광장에서 현지 진행으로 소개했다. BBC 2에서는 하루 중 가장 화제가 됐던 뉴스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는 '뉴스 와치(News Watch)' 시간에 북핵 문제를 다뤘다.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 실패
영국의 TV 보도내용을 보면서 2가지 결론에 이르게 된다. 먼저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 주변 일본 중국, 한국이 분노하고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강력한 제재조치를 천명했다. 유엔차원의 제재조치가 마련될 것이다." 이게 전부다. 어떤 실효성 있는 조치가 마련될 지 의문부호를 달지 않을 수 없다. 핵과 그 운반수단을 보유한 북한을 함부로 다루기는 쉽지 않다. 관련국이 말로는 요란하지만, 실제로 들어가면 마뜩한 대책이 없어 보인다. 물론 일본의 재무장에 도움을 주는 등의 정세변화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북핵 문제 해결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내용이다.
둘째, 그 동안 국제사회에서 북한 정책을 주도해온 미국의 정책이 결국 실패한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다. 한국 정부가 '햇볕정책' 운운하지만, 이는 곁가지에 불과하다. 미국의 강력한 견제로 한국이 중간자적 역할을 수행할 길이 부시 행정부 이후 원천 봉쇄됐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관심사인 체제보장을 약속하고 이행할 나라는 미국 밖에 없었다. 결국, 여기서 실패했기 때문에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과 핵실험 카드로까지 사태가 악화된 것이라 분석해 볼 수 있다.
인내 갖고 신뢰 구축과 대화 필요
1994년 김일성-카터의 극적인 회담으로 북한과 미국 간에 결정적인 평화 무드가 조성됐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북한 모두 이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북한에 1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더 큰 힘을 갖고 국면을 주도할 수 있는 미국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거나 할 수 있었음에도 안한 것 역시 주요 원인이다. 실패를 가져온 미국 정책의 기본 마인드는 대북 압박이다. 이제 압박의 수위를 더 높일 것인가. 대화가 없는 압박은 화를 키울 뿐이라는 지적에 귀를 기울일 때다. 쥐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신보수주의 가치관에 매몰된 현 미국 정부 아래서 북핵 문제 해결에 기대를 걸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그 틈에 괴로움을 겪어야 하는 것은 한국이다. 이럴 때일 수록 한국 정부는 신뢰와 대화를 강조하고 조언하며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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