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추사 김정희 선생의 별세 150주기를 맞아 특별전들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19세기 글로벌 지식인이었던 추사 선생이지만 오히려 우리는 그를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신우선 기자입니다.
<기자>
난초를 그렸으나 난초가 아니라는 '불이선란도'는 추사의 학문과 예술, 정신세계가 모두 합일된 '문인화의 최고 경지'로 평가받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국보 180호 '세한도'는 유배지에서도 꿋꿋했던 노학자의 의지를 여전히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최초로 일반에 공개된 '잔서완석루'는 예서 추사체의 진수라고 합니다.
봉건시대 구학문 전분야에 걸쳐 능통했던 선생은 격변의 19세기 실용학문에도 정통해, 중국과 일본에 흠모하는 학자가 많았던 '동아시아의 스타 학자'였습니다.
[이영훈/국립중앙박물관 학예실장 : 이제는 추사 선생이 남긴 그림이나 글씨의 내용이 뭐냐, 그 정신세계가 뭐냐는 것을 계속 공부하고 찾아나가는 것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추사에 대한 평가는 국내에서보다는 생전에는 중국에서, 별세 후에는 일본에서 오히려 더 높았음은 과천 특별전에서 알 수 있습니다.
20세기 초 추사연구의 선두에 섰던 일본인 학자 후지스카 씨의 유족들이 과천시에 기증한 1만여 점 자료 중 '추사동귀도시'라는 두루마리가 있습니다.
1810년 추사선생이 지금의 북경을 방문했을 당시, 중국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환송연을 베풀고 전별시를 짓고, 선생의 초상과 함께 선물한 것입니다.
추사 선생이 별세 사흘 전 쓴 현판이 서울도심 사찰에 걸려 있습니다.
그의 고매한 인격과 넓은 정신세계가 그리워지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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