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비운의 당수 존 스미스
예비내각을 통해 착실히 국정 수행능력을 배우던 블레어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다가왔다. 노동당수 존 스미스(John Smith)는 1994년 갑자기 숨진 것이다. 사인(死因)은 심장마비(heart attack). 존 스미스 당수의 죽음은 정말 예상 밖의 것이었다. 1992년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닐 키녹 당수가 물러 난 뒤, 당수가 된지 2년 만이었다. 그의 나이는 고작 55살에 불과했다. 런던 시내 아파트에서 1차 심장 발작을 일으킨 스미스 당수는 병원으로 가는 앰뷸런스에서 다시 치명적인 2차 발작을 일으켰다. 끝내 회복하지 못한 스미스 당수는 성 바르돌로뮤(St Bartholomew)병원에서 숨졌다. 부인 엘리자베스와 20대인 3명의 딸을 남기고 유명을 달리했다.
1970년 처음 의회에 진출해 22년만에 노동당권을 장악하고, 이제 막 정치적 완성이라 할 수 있는 영국 총리 자리에 오를 그런 시점이었다. 참 관운(官運)이 없는 사람이다. 보수당의 인기가 바닥으로 가면서 다음 선거에서는 노동당이 승리할 참인데... 1988년에도 심장발작 경험이 있었던 그는 결국 나라를 다스리기 전에 건강을 다스리지 못해 운명 앞에 무릎을 꿇고 만 경우가 됐다. 정당을 떠나 이름 꽤나 알려진 모든 정치인들이 조문하고, 국회(House of Commons)는 추도의 표시로 휴회에 들어갔다. 유력한 정치인의 죽음은 개인차원을 넘는다. 노동당은 물론 국가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
1979년 집권당에서 야당으로 전락한 노동당은 당의 완고한 집단주의적 가치관이나 정강 정책을 유연한 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개혁 요구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었다. 내분을 겪던 노동당에서는 스미스만이 당내 통합을 유지할 유일한 정치인이라고 여겨 왔다. 스코틀랜드 출신 변호사로 1970년 국회에 들어온 이래 경제통 온건주의자로 명성을 얻은 스미스는 당내 좌우 대립의 내분을 수습하고 차기 총선에서 승리를 가져다 줄 정직하고 예의 바른 정치인으로 받아들여졌다. 국민 입장에서는 날로 인기를 잃어가는 보수당 메이저 정권 대신 스미스의 노동당에서 국가를 이끌어 갈 새로운 희망을 엿보던 참이었다.
2) 블레어의 40대 기수론과 치열한 당수 선거전
정치란 비정(非情)한 것이다. 세상사 비정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 마는... 존경받던 정치인이 비운에 갔지만, 후진들에게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됐다. 존 스미스가 살아 10년 정도 당권을 장악한다고 가정했을 때, 스미스 차기를 노리던 인물들에게는 10년 세월이 갑자기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 조문을 표시하자 마자, 후계를 노리는 인물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마치 공화국 로마에 종지부를 찍고 황제를 노렸던 독재자 카이사르가 뜻하지 않게 암살 당하자, 카이사르의 충복이던 안토니우스와 양아들 옥타비아누스 등이 후계자리를 놓고 각축을 벌였듯이...
당 부대표(deputy party leader)이던 노동당내 여성 정치인 마가렛 베켓(Margaret Beckett)이 일단 임시 당대표를 맡았다. 새 당수를 뽑을 때까지 당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마가렛 베켓은 본인 스스로가 새 당수, 즉 노동당의 첫 여성당수를 꿈꿨다. 보수당에서는 이미 대처가 첫 여성당수에 총리까지 역임한 적이 있으니 무리한 욕망이 아니었다. 예비내각의 내무장관(Home Affairs spokesman)을 맡고 있던 41살의 토니 블레어(Tony Blair)도 때를 놓치지 않았다. 40대의 고든 브라운(Gordon Brown), 그 외에 로빈 쿡(Robin Cook)과 존 프레스콧(John Prescott)도 출마 채비를 갖췄다.
3) 블레어, 고든 브라운의 지지로 당선
여기서 그 유명한 그라니타 회동(meeting of Granita)이 열렸다. 40대 기수론을 제시하던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이 런던의 이탈리아 식당 그라니타에서 만난 것이다. 무슨 얘기가 오고 갔는지는 물론 비밀에 부쳐졌다. 정치는 결과만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결과는 고든 브라운이 출마를 포기하고, 당수직에 블레어를 밀어주기로 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쉽게 예상해 볼 수 있는 시나리오는 젊은 후보 둘이 나서서 표를 갈라 먹지 말고 한 사람(블레어) 먼저 하고 난 다음에 나머지 한 사람(브라운)이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들의 구도대로 차기는 고든 브라운으로 가는 분위기다. 우리나라의 경우 양김씨가 서로 먼저 하겠다면서 타협을 보지 못한 채 둘 다 나서 1987년 대선 때 대통령을 군부 출신 후보에게 헌납한 사례가 있다. 마침내 1994년 7월 21일 열린 노동당 당수 선출대회에서 고든 브라운의 지지를 받은 블레어가 존 프레스콧과 마가렛 베켓을 물리치고 새 당수로 뽑혔다. 40대 당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현재 블레어 정부에서 고든 브라운은 재부장관으로 차기 당수와 총리를 점찍어 놓고 대망의 그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며, 존 프레스콧은 부총리(큰 실권은 없음)로 블레어가 고든 브라운과 함께 가장 신임하는 당내 인사로 자기자리를 찾았다. 마가렛 베켓은 노동당의 첫 여성 당수 대신 현재 영국의 첫 외무장관 직을 맡아 수행중이다. 당수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사람들이 다시 한 몸이 돼 국가를 위해 일한다. 유력한 정치인들의 역량이 한 곳에 집중되는 그런 모습이다. 당수 선거에서 낙방하면 당직을 맡지 않고 외곽으로 빙빙 도는 문화는 아무래도 정치력의 낭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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