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적극적 공세로 30살 총선 후보에
보궐선거에서 낙선하고 호시탐탐(虎視眈眈), 오매불망(寤寐不忘) 국회의원 당선 기회를 노리던 블레어에게 1983년 기회가 왔다. 1983년 총선에 세제필드 선거구(constituency of Sedgefield)에 노동당 후보로 마땅한 인물이 없었던 것이다. 영국민주주의는 정당 정치가 깊게 뿌리내려져 있다. 무소속 후보라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당의 수백년 전통과 지지층이 확고해, 개인플레이는 불가능하다. 인기 좋은 아무개가 혼자 산행하고 좋은 말이나 하고 다니며 얼굴관리 하다가 어느 날 툭 튀어나와 출마하는 코미디 영화같은 정치쇼가 실제 영화같은 요소가 많은 미국 정치문화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영국같은 전통사회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러니, 당이 지명하면 그 후보가 어디든지 자신과 연고가 없는 지역이라도 가서 당선된다. 마침 세제필드는 블레어가 어린시절을 보낸 더램(Durham)과 가까운 북부지방이어서 블레어의 정서에 멀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쉽지 않은 게임이었다. 지역구 조정으로 자리를 옮겨야 할 현역 의원들 가운데 이곳에 관심을 갖는 의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블레어는 후보자를 결정하지 않은 지부를 방문하고 그들의 지지를 호소하는 한편, 존 버튼(John Burton)의 도움을 얻어 결국 지부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최종 후보자 명단(shortlist)에 이름을 올린 블레어는 마침내 현역 의원 레스 헉필드(sitting MP Les Huckfield)를 제치고 노동당 후보자가 됐다. 버튼은 이때 맺은 인연으로 블레어의 대리인이 됐으며 지금가지 블레어의 가장 절친한 지원자 가운데 한 명으로 막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인간의 인연이란 게 참 묘한 구석이 있다. 평소 잘하는 것보다 정말 필요할 때 제대로 한 번 도와주면 그것이 평생동지로 가는 경우가 많다. 블레어와 버튼의 관계가 그랬다. 노동당의 아성에서 현역 의원을 물리치고 30살 초년병이 당 후보가 되기란 얼마나 어려웠을 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2) 여배우 선거 유세지원 받으며 당선
1983년 총선에 나선 블레어. 그의 선거 운동 전단(election literature)을 보면 그가 1980년대 노동당의 전통적인 노선에 충실했음을 보여 준다. 그는 영국이 EEC를 탈퇴해야 하며(개인적으로는 잔류를 선호한다고 표명), 전면적인 핵무장 해제( Nuclear Disarmament)를 적극적으로 열렬하게 주장했다. 격세지감이다. 군비를 확장하며 전쟁정책을 충실히 이행하는 지금과 달리 23년 전 총선에 처음 도전할 당시의 블레어는 군비 확산 반대, 평화애호가였던 것이다. 블레어는 총선에서 무난히 당선됐다. 이때, 노동당은 대처의 집권 보수당에 밀려 최악의 패배를 기록하던 터였다. 재미있는 것은 선거운동. 선거운동기간 동안 블레어는 결정적으로 다시 한번 장인의 도움을 받게 된다. 이번에는 무엇일까. 처음 유력 정치인 소개에 이어, 이번에는... 선거운동에 인기절정의 여배우를 동원해 준 것. 사위의 당선을 위한 눈물겨운 지원이다. 블레어의 선거 유세에 당시 드라마(soap opera)에서 인기를 모으던 여배우 팟 푀닉스(Pat Phoenix)가 동행했다. 장인의 여자친구였다.
3) 국회의원 첫 연설 "나는 사회주의자입니다."
30살의 젊은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당내에서 온건 노선(soft left)을 걸어온 그는 1983년 7월 6일 국회의원(MP, 하원의원 Member of Parliament)으로 국회(하원, House of Commons)에서 첫 연설을 실시했다. "나는 사회주의자입니다. 그러나, 지적 환상에 사로잡혀 교과서만을 읽어 된 책상물림 사회주의자가 아닙니다. 또, 분별없이 막연한 당의 전통에만 사로잡힌 사회주의자도 아닙니다. 내가 사회주의자인 이유는 사회주의야말로 최선의 모습으로 구현됐을 때 현실에 존재하는 가장 이성적이며 도덕적인 이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는 대결이 아니라 공존을 추구합니다. 공포가 아닌 우정을 대표합니다. 평등을 나타냅니다. (I am a socialist not through reading a textbook that has caught my intellectual fancy, nor through unthinking tradition, but because I believe that, at its best, socialism corresponds most closely to an existence that is both rational and moral. It stands for cooperation, not confrontation; for fellowship, not fear. It stands for equality)".
노동당(Labour)은 사회민주주의 정당(social democratic party)이라기보다 민주 사회당(democratic socialist party)으로 불린다. 블레어가 훗날 당수가 돼 1994년 당헌 4조(party's Clause IV in their constitution)를 바꿀 때 확립된 원칙이다. 사회주의 정당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블레어는 이 조항을 넣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블레어가 말한 사회주의자란 의미 속의 민주사회주의에 대해 다음에 다시 자세히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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