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블레어: 새 노동당(New Labour)의 '제 3의 길'
고든 브라운(Gordon Brown), 피터 만델슨(Peter Mandelson)등과 손잡고 블레어가 마련한 "새로운 노동당"(New Labour)의 핵심은 노동당의 위상을 집단주의적 정책(collectivist policies)에서 시장지향 정책(pro-market policies)으로 수정하는 데 있다. 그렇다고 미국식의 전면적인 시장지상주의 정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전임 닐 키녹 당수 시절에 고수했던 완고한 집단주의적 정책에서 벗어나 시장주의정책도 포괄하는 것으로 현대적 의미의 민주 사회주의(modern democratic socialism)를 가리킨다. 외교정책이나 모든 국내외 정책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는 "제3의 길(the third way)"이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블레어가 과거의 사회 민주주의와 구별해서 말하고자 했던 현대적 민주사회주의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럴 듯 한 정치철학과 달리 표현하기 쉽지 않다. 현실정치에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실현될 때 워낙 다양한 변수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양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는 뒤에서 다시 살펴본다. 오늘은 먼저 블레어가 남긴 정치적 공과를 들여다 보는 전초단계로 정치입문 과정을 살펴본다.
2) 밴드에 심취했던 법학도
블레어는 전통적인 이미지의 노동당 의원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지적이며 완고한 이미지가 주를 이루는데 비해 블레어는 요즘도 휴가지에서 알록 달록 체크무늬 수영복 입고 해수욕을 즐기는 모습이 종종 신문 사진에 등장한다. 좀 개방적인 이미지라고 할까. 블레어의 이런 특성은 이미 대학시절부터 나타난다. 그는 대학시절 록밴드에서 활동했다. 기타도 치고 노래도 불렀는데 그룹 이름이 재미있다. "추문(醜聞, Ugly Rumours)". 그 또래에서 흔히 나타나는 치기(稚氣) 어린 이름이다. 이 시절 그는 훗날 미국의 사이코 감독이 되는 매리 해론(Mary Harron)과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물론 결혼은 옥스포드 대학교를 2그룹 성적으로(second class degree) 졸업한 뒤 법률 사무에서 견습 소송 변호사(pupil barrister)로 일할 때 만난 셰리 부스(Cherie Booth)와 하게 되지만...
블레어가 노동당에 가입한 것은 1975년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하고다. 청년당원이라고 할까. 22살에 가입했으니 말이다. 일찍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블레어는 국회의원이 되보려 무진 애를 썼다. 블레어는 장차 총리(Prime Minister)가 되겠다는 포부로 가득 차 있었지만, 초기에는 특정 정당에 가입하는 것에 대해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인이 되는 자체가 꿈이었던 것일까. 대통령 되겠다고 하숙집 책상머리에 써놓고 살았다는 김영삼 대통령을 생각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26살, 대한민국 최연소로 국회의원이 됐듯이 블레어도 나중에 3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국회의원이 되고, 44살이라는 영국역사상 최연소 총리가 되지만...
3) 장인도움으로 정치 입문
1980년 셰리 부스와 결혼은 블레어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다. 정치에 입문하려는 블레어가 처갓집 덕으로 정계와 인연을 맺게 되기 때문이다. 블레어는 장인에게 유명 정치인과 선이 닿도록 부탁한다. 사위도 사위지만, 그런 사위랑 사는 딸 생각해서 사위와 이름이 같은 장인 토니 부스(Tony Booth)는 당시 노동당 의원 톰 펜드리(Tom Pendry)에게 "어떻게 좀... 우리 사위 좀 봐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다. 펜드리는 블레어의 장인이랑 친했는지, 블레어를 불러 의회(하원, House of Commons)을 구경 시킨 뒤 보수당 지역인 비콘필드(Beaconsfield)의 보궐선거(by-election)에 출마해 보라고 권유했다. 펜드리 의원은 마침 비콘필드 지역당 원로를 잘 알고 있던 터였다.
이래서 블레어는 노동당 후보로 뽑혀 보궐선거에 나갔다. 결과는 참패. 블레어는 10%를 얻는데 그쳤다. 그러나, 이때 블레어는 노동당의 지도자 마이클 푸트(Michael Foot)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당내에 뭔가 자리를 틀고 앉을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이무렵 청년 블레어는 지금처럼 '제3의 길'을 내세우다 중도노선으로 빠진 것과 달리 스스로를 사회주의자(Socialist)였다고 묘사한다. 국회의원이 되려 애쓰던 1982년 노동당 지도자 푸트에게 썼던 편지(2006년 6월 공개)에는 이런 정황이 잘 나타나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일반적으로 급진 개혁 성향이 점점 온건한 방향으로 바뀌게 마련이다. 블레어는 정치 입문당시 '사회주의자'에서, 총리가 될 당시 '제3의 길', 총리 연한이 깊어질수록 우파적 성향이 강한 중도주의자로 변해간다. 물론 획일적으로 규정하기에는 문제가 있지만, 이해를 쉽게 하자면 그렇다.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