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 투박하며 감정의 끝을 파고들어간 멜로 영화가 나왔다.
7일 개봉하는 김승우·장진영 주연의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하 '연애참', 제작 굿플레이어)는 로맨틱 코미디영화같은 제목과는 달리 정통 멜로영화다.
물론 영화 제목에서 소설과 영화로 알려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생각나고 그로 인해 '참을 수 없이 가볍다'는 의미가 결코 가볍다는 의미만은 아닐 것이라 연상되지만 말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이는 김해곤 감독.
영화계에서는 '파이란' '블루' 등의 시나리오 작가로 더 잘 알려져 있고(그의 직업중 시나리오작가로 버는 돈이 가장 많다) 대중들에게 그는 영화의 감초같은 조역으로 낯익다.
술집 여자와 백수의 사랑.
여자는 사랑에 목숨 걸고, 남자는 결혼할 여자가 있으면서 연애를 즐긴다.
뻔할 것 같은 이야기는 김감독의 손에서 뻔하지 않은 연애담으로 태어났다.
관객은 사랑에 목숨거는 술집여자도, 철저히 이기적인 사랑을 하는 남자도 그리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 이들은 사랑이라는 것을 한다.
자기 방식대로.
결코 익숙한 사랑 방식이 아니다.
"배우들과도 이야기를 별로 안했습니다. 배우들은 계속 의심했죠. 장진영씨에게 '술집 여자의 사랑이라고 뭐가 다르겠느냐'고 말했죠. 연아는 그냥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라고. 김승우씨도 영운을 그리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너라면 안그러겠느냐' '너라면 어떠했겠느냐'고 말했을 뿐입니다."
1998년 이 시나리오를 공모전에 출품했는데 두 군데 모두 선정됐다.
당시만 해도 직접 연출을 맡을 생각은 없었다.
그 때 이 시나리오를 본 이창동 감독은 그에게 "영화가 뭔가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잘 만들면 고급스런 영화가 될텐데, 못 만들면 바닥을 길 것"이라고도 말했다.
김감독은 "멜로를 하려한 게 아니라 비루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을 그리고 싶었다. 어차피 사랑하고 이별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비록 틀렸더라고 확고하게 가자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파이란'에 이어 그는 '연애참'에서 여주인공에 대해 더 지극한 애정을 보이는 듯 했다.
마초적 느낌을 주는 그의 외모와 달리 여자의 연애를 보는 시각이 오히려 더 따뜻하다.
"연아에 대해 내가 애정을 갖고 있음을 드러내는 장면이 두 군데 나와요. 영운의 제주도 신혼여행 장면이 연아의 판타지로 이어지는 장면과 마지막에 영운을 만나고서도 결코 일어서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우는 장면이죠. 네가 이 자리에 있고 싶겠지만 머플러가 바람에 흘러내리듯 너도 이제 그냥 흘러가라는 바람입니다. 아무리 죽을 것 같은 사랑도 세월 앞에는 고개 숙이잖아요."
영화는 두 남녀의 사랑과 함께 두 남녀 주변 인물들, 즉 영운의 한심해보이는 친구들과 연아의 술집 동료가 중요한 축으로 등장한다.
내일이 없는 듯 살아가는 그들을 통해 인생을 보는 감독의 시선이 담겨 있다.
"'너 왜 이러고 사니'라고 물었을 때 '나중에 어찌 되나 보려고'라는 대사가 어찌보면 가장 핵심입니다. 왜 그렇지않나요? 속절없이 살다 문득 나중에 뭐가 돼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죠. 영운의 친구들이 지금은 한심해 보이지만 결혼해서 애 낳고 살다보면 그런 삶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돼요."
감독이 체험한 밑바닥 정서, 일명 양아치 정서가 투박하고 솔직하게 그려져있다.
영화평론가 심영섭 씨는 "개인적으로 김감독이 멜로영화는 안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전제하에 "양아치 정서에 대한 묘사는 누구보다 탁월하다"는 평을 할 정도.
"술 마시고, 노가다 뛰고, 그렇게 번 돈으로 수상스키 타러 가서 다 써버리고. 재미만 좇아 사는 그런 양아치 같은 삶을 살았어요. 주변 사람들과 다른 게 있다면 문자중독이라고 할 만큼 책을 읽었다는 것일 뿐. 그렇게 살다가 '장군의 아들' 개봉 이후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님이 한 3년 간 그 때 출연했던 배우들을 몰고 다니며 제가 경험하지 못한 상류층 세계를 보여주셨죠. 회색분자로서 살아간 겁니다."
그런 그의 평범하지 않은 삶은 작가로서, 감독으로서 독특한 세계관을 만드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터.
영화 속에서 영운은 약혼녀이자 나중에 결혼까지 한 여자 몰래 연아를 만나기 위해 거짓말을 능청스럽게 한다.
심지어 영운의 결혼 후 급격하게 무너져가는 연아가 아내에게 전화를 걸자 죽도록 패고 나서 울면서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전화한다.
판을 깨지 않기 위해서다.
감독은 그게 여자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영운이 남자니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여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판을 안 깨고 딴 짓을 하려면 누구든 그렇게 하겠죠. 가해자와 피해자의 개념으로 본다면 가장 큰 피해자는 (영운의 아내인) 수경입니다."
그는 두 남녀의 징글징글맞은 사랑을 통해 그저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마음속의 문제를 내비치고 싶었다.
밖으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않을 뿐이지 영운이가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내 것은 내주지 않으면서도 나름대로 진실한 사랑, 편안한 상대를 만나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보는 것.
데뷔작을 내놓은 감독으로서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투자한 사람들이 손해보지 않을 정도만 되면 바랄 게 없다.
"이 시나리오를 들고 갔을 때 아무도 투자안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생각했던 김승우를 결정했고, 쌍욕을 해도 미워보이지 않을 장진영을 캐스팅했죠. 거기에 오달수, 김상호, 탁재훈 등을 불러내 '봐라, 내가 만드려는 게 상업영화이지 않느냐'고 항변했습니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제작사에서 돈을 모두 마련해야 했지만요."
그의 첫 영화가 어떤 흥행 결과를 가져올 지 아무도 모른다.
평도 엇갈린다.
불편하다는 이, 뭔가 만들다 만 것 같다는 이들과 멜로 영화에서 이 정도로 감정을 끄집어냈다는 점에 박수를 보내는 이 등으로.
그러나 결코 한 마디로 규정지을 수 없는,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쉽게 결론지을 수 없는 영화를 만든 것 만은 분명해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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