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테러 음모의 파장
영국의 항공기 테러음모 적발이 지구촌을 뒤숭숭하게 만드는 가운데 이스라엘 올메르트 총리가 오늘(12일) 유엔 결의안 수용의사를 부시 대통령에게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시민학살 전쟁이 조속히 중단될지는 미지수다. 이에 앞서 47개국으로 구성된 제네바 소재의 유엔 인권이사회는 어제(11일) 아주 의미있는 결정을 하나 내렸다. 레바논 민간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체계적인 학살 행위를 조사하기 위한 위원회 구성에 합의한 것이다. 찬성 27개국, 반대 11개국, 기권 8개국(우리나라 포함)으로 채택된 결의안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민간인 공격이 인권 침해와 국제인도주의법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면서 민간시설에 대한 군사작전을 즉시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동시에 인권 침해행위를 조사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래도 국제사회에 양심이 살아 있음을 보여 준다.
파키스탄 출신 영국인들의 비행기 테러 음모 적발 사건 이후 내무부 장관이 "2차세계 대전 이후 최대의 국가 위기사태"라고 거듭 밝히는 데서 현재 영국인들이 현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읽을 수 있다. TV 뉴스는 액체 폭탄이 비행기 안으로 위장 운반돼, 제조, 사용되는지 실험을 통해 생생히 전달한다. 섬뜩한 장면도 적지 않다. 정론지들은 그나마 점잖게 접근하지만, 대중지나 무가지(無價紙)들은 자극적인 문구로 공포분위기를 강조한다. 여기에 평소 바른 말을 잘하는 켄 리빙스턴 런던 시장은 "진정한 범죄자들 때문에 이슬람 교도들이 분별없이 비난 받아서는 안되며, 단결을 통해서만 테러를 이길 수 있다"고 테러의 불동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낸다. 이성을 상실한 집단광기(mass hysteria)를 경계하는 의미다. 아직도 혼란이 채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이번 테러음모 적발이 각국에 미칠 파장 들여다 보자.
영국: 위기의 블레어 일병 구하기
대서양 연안 바베이도즈로 여행을 떠났던 블레어 수상은 휴양지에서 긴급사태를 보고받고 현장 지휘하며 부시 대통령과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블레어 입장에서는 이번 테러 음모 적발에 표정관리가 필요하다. 레바논 전쟁에서 미국을 일방적으로 추종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일거에 잠재울 수 있는 호재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국회의원 100여 명이 블레어의 중동 정책을 비난하며 임시국회를 요구하는 등 정치 공세가 강화되는 중이었다. 국방 장관을 무보수로 보좌하는 정무 차관(영국에는 이런 정무직이 많다)직을 최근 자진해서 내놓은 국회의원 짐 셰리단 의원은 "레바논 전쟁을 조기 종식시키려 하지 않는 정부 입장을 지지할 수 없다"면서 블레어 정부를 비난했다.
심지어 수상 임기도 올 가을로 끝이 아니냐는 위기론도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이제 이런 분위기는 물 건너 갔다. 조국 영국을 어떻게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구해내느냐가 최대 관심사가 됐다. 블레어에게 중동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있느냐는 추궁이 오히려 강 건너 불이 됐다. 위기에 몰렸던 블레어 일병. 자신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이슬람 과격분자들에게 돌리며 사지에서 탈출해 내년까지 수상임기를 연장할 극적인 기회를 맞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의 명분 얻어
당연히 미국이 바빠진다. 도덕적으로 그 동안 수세에 몰리면서도 이스라엘을 지원해 왔지만, 이제 대량 인명 살상을 기도했던 테러 음모를 적발했다고 발표함으로써 대내외적으로 레바논 전쟁 반대 목소리를 잠재우고 자신의 의도를 더 관철해 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병사 납치에 이은 레바논 전쟁과 이번 영국의 비행기 테러 음모 적발 사건은 미국 국민들에게 이슬람권이 얼마나 불순한 세력인지 각인시키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됐다. 이슬람권에 대해 강력한 적대정책을 취해온 하는 신보수주의 논리를 강화하고 이들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해주는 결과로 이어질게 분명하다. 부시 대통령이 이번 비행기 테러 음모 발표가 있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슬람 파시스트(Islamic fascists)"와의 전쟁이라고 말한 것은 미국사회 미국 정계의 움직임을 잘 보여준다. 이성도 최소한의 합리적인 판단기준도 상실한지 오래다.
부시에 앞서 마이클 처토프 미 국토안보부 장관은 "용의자들을 체포해 일단 위협을 없앴지만 이런 위협이 완전히 제거됐다고 확신할 수 없다"면서 미국으로 향하는 모든 항공기에 대한 위협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영국경찰이 발표한 비행기 납치 음모의 주동자들을 최종 결론은 아니지만 알 카에다라고 추정했다. 이제 명확한 근거도 없이 레바논 전쟁에 갑자기 알 카에다가 끼어 들게 됐다. 미국 역사이래 미국 본토에서 발생한 가장 큰 사고에 놀라 있는 미국인들에게 알카에다를 들먹이는 것은 이슬람권 전체에 대한 분노를 부추겨 비난의 초점이 된 이라크 전쟁은 물론 레바논 전쟁 정책에도 면죄부와 함께 강공 일변도 정책에 위임장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 하나, 유엔 안보리 결의안 합의나 이행과정, 즉 레바논 전쟁 수행과 전후 처리과정에서 미국의 입장이 강화되고, 결국 미국의 구미에 맞는 방향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며 이슬람 세력을 적대시하는 미국(영국 포함)의 주장에 테러음모가 힘을 실어 줬기 때문이다.
울고 싶던 차에 뺨 맞은 이스라엘, 충분한 공격 뒤 종전
이스라엘은 날개를 달았다. 정말 바라고 싶었지만, 감히 말할 수 없던 차에 바라던 대로 일이 진행된 쪽은 이스라엘이다. 자신의 전쟁이 선량한 시민들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무고한 시민들을 살상하는 테러리스트 근절 전쟁임을 보란 듯이 과시할 수 있게 됐다. 파병과 전쟁 확대에 대한 세계적인 비난 여론을 누그러트리며 명예롭게 손을 뺄 호기를 맞았다. 더구나,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수용한다고 하지만, 휴전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살상을 지속하며 충분히 원하는 만큼 자신의 욕심을 채워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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