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이 노래가 중동전에 겹쳐졌다.
제목 [그 누가] 노래 [둘 하나]
(막내둥이 꼬마 녀석아. 등불을 꺼 줄래. 하얀 달빛이 창가에서 머물고 있다.
막내둥이 꼬마 녀석아. 창문을 열어 줄래. 오늘밤은 달님이랑 새우고 싶다.
달님도 외로워 우는 밤에 풀벌레도 잠 못 이루고
별님도 슬픔에 이슬 내려 풀잎 마저 울게 하네
이 세상이 무지개처럼 곱기만 하다면 그 누가 그 누가 눈물 흘리나
이 세상을 비둘기처럼 살수만 있다면 그 누가 그 누가 화를 내겠나)
추악한 전쟁, 어린이에 이어 농부 33명... [그 누가]
평화로운 해결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데 전쟁을 택한 이스라엘의 입장을 앞선 글에서 살펴봤다. 그런데 전쟁을 이스라엘 혼자서 치를 수 없다. 미국이 없으면 이스라엘의 전쟁은 불가능 하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든든한 정신적 후원자에 그치는 게 아니다. 실질적으로 이번전쟁에 사용되는 첨단 장비와 무기들을 공급하고 있다. 미국 본토에서 건너간 물자는 대서양 건너 영국 공항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이스라엘로 날아간다. 그리고 레바논의 선량한 시민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노래가 들려주던 [그 누가 눈물 흘리나]의 주인공은 8월 4일까지 900명의 시민 사망자 가운데 30%를 차지하는 12살 이하, 무지개처럼 곱고 막내둥이 꼬마 녀석 같은 어린이다. 어린이의 눈물을 보고 비둘기처럼 평화롭게 살지 못하는 현실에 화내는 이는 전 세계의 양심이다.
오늘도 비극적인 소식이 새롭게 들려왔다. 어린이 만큼이나 가슴 시리게 만드는 소식이다. 레바논 북부 시리아 국경지대에 농사짓는 농부 33명이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격으로 사망했다. 시리아에서 넘어온 쿠르드족으로 복숭아를 기르며 평화롭게 살던 농부들이 죽었다. 전쟁과 무관한 사람들이다. 6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탐방하면서 살펴본 시리아와 레바논 지역 농경지는 정말이지 축복의 동네였다. 더운 사막 지대 한가운데를 흐르는 물줄기 옆으로 과수원이 이어지고 농가가 점점이 자리하는 풍경은 금수강산에서 어렸을 적 살던 시골 정서 그대로였다. 택시를 대절해 다니며 유적을 훑을 때 물 한 모금 청했던 농가에선 수줍은 듯 아주머니가 물 한 바가지 건넸고, 그 물은 감로수나 넥타처럼 타오르던 목을 적셔 줬다. 쇠붙이 문명과 동떨어져 평화롭게 살던 마을에서 날벼락 같은 폭탄으로 희생된 농민들의 죽음에 명복을 빈다. 이역만리서 흙에 살던 농촌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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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적절한 전쟁을 종식시키자는 세계 여론에 토요일 미국과 프랑스가 유엔결의로 종전을 추진한다는 데 합의했지만 일정은 나오지 않았다. 아직은 휴전이 요원해 보인다. |
언제까지 이런 비극이 지속돼야 하나. 미국의 본심이 혹시 휴전이 아니라 전쟁이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평화적인 해결방식을 모색하는 나라라면 광포한 인명살상과 문명파괴를 가져오는 무기를 공급하면 안 된다. 북한과 기타 여러 과격하고 불확실한 국가에 대량 살상 무기 제조나 유통을 엄격하게 금지시키면서 자신이 지키지 않는다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런 훈장 선생님의 가르침은 회초리가 떨어지는 순간 학동들에게 외면당한다. 솔선수범과 인격이 학동들의 자발적인 존경과 복종을 가져온다. 이중적인 잣대로 평화적인 해결책 모색에 차일피일 휴전 여론을 교묘하게 피해가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모습에서 노래 [그 누가]가 떠올랐다.
[그 누가]. 제목이 참 절묘하다. 그 누가 지구촌의 양심과 이성을 화나게 만든단 말인가. [둘 하나]라는 남녀 듀엣의 이름도 마음에 든다. 남녀 둘이 하나돼서 멋진 하모니를 연출했는데, 그렇게 이세상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하나 돼 평화의 하모니를 빚어 낼 수 있다면... 이 노래는 1980년 MBC 대학가요제에 나왔던 노래다. 1980년이라... 1979년 10월 26일 박 대통령이 암살당하면서 생긴 권력의 공백기에 전두환장군을 중심으로 한 일부 정치군인들이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손에 넣었다. 신군부는 1980년 5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광주항쟁을 무력으로 짓밟으며 수백 명을 잔인하게 학살했다. 이후 정권을 거머쥔 신군부는 무시무시한 폭압정치로 한국사회를 질식상태로 몰아 넣었다.
바로 그 시점에 나온 이 노래는 가사가 곱고, 예쁘면서 시적이다. 토속적인 정서를 담은 서정적 분위기가 잔잔한 애상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후반부로 가면서 갑자기 숨이 가빠진다. 달님도 외롭고 별님도 슬프고, 풀벌레도 잠 못 이루고, 풀잎마저 울게 하는 짓눌린 상황에서 무지개처럼 곱고 비둘기처럼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것이다. 눈물 흘릴 것도 없고 화낼 것도 없는 자유와 평화의 민주사회. 이스라엘과 미국이라는 절대권력 아래 시달려야 하는 레바논과 지구촌 현실이 마치 1980년대 은유적으로 시대상황을 읊었던 이 노래와 닮아 좀 길게 소개했다.
애타게 지연되는 휴전 : 라이스, 볼튼...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휴전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세계의 여론이 드세지자 31일 예루살렘에서 느닷없이 "이번 주 안에 휴전을 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희망을 심어 줬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 다시 일요일(8월 5일)이 됐지만, 휴전은 실현되지 않고 있다. 당시 이스라엘에 쏠린 엄청난 비난의 화살을 휴전이라는 당근으로 포장해 세계인의 눈을 돌렸던 것이다. 비록 미국과 프랑스가 5일(토요일) 유엔 개입 아래 전쟁을 종식시킨다는 해결책에 합의했다지만, 휴전이 언제 될 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휴전의지가 아직은 확실치 않은 것이다. 점점 거세지는 세계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미봉책이 아니라는 근거가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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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스, "긴급히 시도해야 할 일치된 의견이 있는 데 바로... 말 뛰어나간 뒤 외양간 문 잠그는 것" 긴급히 해야할 일치된 의견은 즉각 휴전이다. 라이스 국무장관이 이말을 할줄 알았더니 기껏, 이스라엘이라는 광포한 죽음의 저승사자가 말 끌고 나가 레바논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은 뒤에야 외양간 문 닫으라고 소리치는 뒷북, 다시말해 전쟁을 말릴 생각이 없음을 표현한다. 인디펜던트 만평. |
볼튼 미국 유엔대사의 말에서도 미국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신보수주의 그룹 내에서도 가장 막가파로 UN대사로 임명될 때 미국 내에서도 반대의 여론이 심했던 볼튼은 전쟁 초기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이스라엘)가 어떻게 테러리스트 집단(헤즈볼라)과 협상을 하느냐"면서 이스라엘이 각국의 휴전 요구를 묵살하고 레바논에 맹공을 퍼붓는 현실을 지지하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일정기간(미국이 원하는 만큼) 전쟁을 종식시킬 의도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테러리스트와 대화할 수 없다는 볼튼의 주장은 미국의 전통적인 외교방식이 아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구성한 아라파트의 팔레스타인 인민해방기구(PLO)도 80년대 초 테러집단으로 불렸다. 그 테러집단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 평화세력으로 인도해 냈던 것이다.
미국이 원하면 전쟁을 치를 수도 막을 수도 있다. 이스라엘도 결국은 미국 주도하의 세계에서 하나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미국이 인정하고 돕지 않는다면 그 엄청난 핵무기를 제조해 보유할 수도 없고, 또 이번 레바논 전쟁을 치를 무기도 자원도 부족하다. 부시도 인정했듯이 이라크 전쟁도 잘못된 정보에서 출발했다. 현재 지구상에서 미국의 의도와 코드를 맞추지 않는 전쟁은 불가능하다. 이스라엘의 전쟁정책을 미국이 돕는다는 해석보다 미국의 세계 경영전략을 정확히 읽는 이스라엘이 전쟁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한 분석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자위권 문제라면서 짐짓 손을 놓는 듯한 태도를 취해 왔다. 세계 여론을 보아가면서 기본적인 언급과 조치로 휴전을 추구하는 인상만 준 뒤 자신이 의도하는 무엇인가를 관철했다고 판단하는 순간에서야 유엔이라는 이름으로 개입할 것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그 동안 미국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음 편에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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