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민주주의의 창--BBC 탐사보도
BBC 흑인 학생 살인사건 1년 취재 보도
7월 26일 밤 9시 세계적으로 공정성과 진실추구 정신으로 평가를 받는 공영방송의 표상 BBC 1 채널에서 특별 프로그램이 방송됐다. 정규 편성에 없던 프로그램. "스테판 로렌스를 죽인 소년들(The Boys Who Killed Stephen Lawrence)". 1시간 짜리 탐사보도(Investigative Reporting) 프로그램으로 흑인 고등학생 스테판 로렌스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집중 조명했다. 이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범인을 소년들(Boys)로 단정지었다. BBC의 마크 달리(Mark Daly)기자가 1년을 집중 취재하기 전까지 상황부터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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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종 차별의 장벽속에 숨진스테판 로렌스> |
1993년 당시 고등학생이던 자메이카 출신의 흑인 스테판 로렌스가 아무 이유 없이 인종차별주의적 생각을 갖고 있는 18살 청소년 5명으로부터 칼에 질려 사망했다. 경찰의 수사는 원점에서 맴돌다 끝났다. 1997년 일간지 데일리 메일(Daily Mail)이 살인자라면서 스테판 로렌스를 죽인 5명의 이름을 밝혔지만, 모두 무죄처리 됐다. 이는 영국사회에 아직 남아있는 인종 차별적인 요인이 종합적으로 작용해 멀쩡한 범인을 두고 증거 없다는 이유로 기각시킨 위선의 결과물이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런 문제제기와 가족들의 애타는 절규와 관계없이 사건은 흐지부지 그렇게 13년을 지나고 있었다.
드레퓌스 사건에 비견되는 인종 차별에 뇌물까지
여기까지는 지난 날 식민지 경험을 거쳐 형성된 다민족 국가의 필연적인 숙제. 즉, 민족, 인종 차별 문제가 핵심으로 비쳐진다. 1894년 프랑스 사회를 국론분열의 혼란으로 몰아넣었던 드레퓌스 사건이 떠오른다. 독일 정보부에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프랑스 국방부 드레퓌스 대위가 혐의를 받았는데 그는 유태인이었다.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그가 모든 혐의를 뒤집어 썼다. 군 법정은 드레퓌스에게 간첩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했다. 이에 유명작가인 에밀 졸라가 나서 "나는 고발한다(J'accuse)"는 글을 만천하에 밝혔다. 증거도 없이 유태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드레퓌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기존 프랑스 지배계급의 부당성과 위선을 고발한 것이다. 이후 10여 년 넘게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다. 마침내 인권이 인종차별을 이겨 1906년 드래퓌스는 무죄로 최종 판결받았다. 프랑스 사회는 이를 계기로 20c 성숙한 민주주이 사회로 한발 짝 더 도약할 수 있었다.
영국에서 에밀 졸라의 역은 BBC가 맡았다. 종식되지 않은 인종차별의 딱지아래 그렇게 묻혀 가는 사건을 BBC가 10년만에 맡았다. 백년 전 에밀 졸라는 인종차별이 선량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든 사건을 고발했지만, 이번에는 정반대다. 인종차별이 멀쩡한 범인을 무죄로 만든다는 고발이다. BBC의 취재 결론은 한마디로 단순한 인종차별이 아니라는 점. 표면적인 인종 차별의 배경에는 뇌물이란 독버섯이 도사리고 있음을 폭로했다. 5명의 청소년 용의자(이제 13년이 지났으니 이들도 어느덧 30대로 접어들었다) 가운데 한명인 데이비드의 아버지 클리포드 노리스가 담당 경찰 존 데이비슨(John Davidson) 경사에게 뇌물을 건네 사건이 흐지부지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존 데이비슨은 뇌물을 받았다는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켄 리빙스턴 런던 시장도 유죄 확신
이제 문제가 새로운 차원으로 옮아간 것이다. 경찰 권력의 부정. 이는 인종차별만큼이나 무서운 민주주의의 적이다. 인종차별은 막연한 추상적 개념이지만, 뇌물은 구체적인 사건이므로 실체가 발견될 경우 사건의 진실이 공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앞으로 이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까?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BBC의 보도 뒤 50건의 전화가 새롭게 걸려 왔다. 독립기구인 경찰 불만 처리 위원회(Idependent Police Complaints Commission, IPCC)는 전직 데이비슨 경사에 대한 소환조사를 이미 결정해 놨다. 켄 리빙스턴 런던 시장도 한마디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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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자로 지목된 5명. > |
진실을 밝히는데 언론 공조
민주주의의 핵심은 자유다. 자아가 지시하는 대로 생각하고 표현하며 행동할 권리가 자유다. 이런 자유는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평등이 뒷받침 돼야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평등하지 않은 자유사회는 특정인만을 위한 귀족정치나 왕정에 가깝다. 이미 인류 역사를 통해 퇴츨 명령을 받은 제도다. 그런데, 이 자유와 평등은 공연히 얻어지는 게 아니다. 진실과 정의가 무엇인지 탐구해서 자유와 평등의 근본 바탕으로 삼고자 하는 끝없는 자기 정화 노력이 필요 충분 조건이다. 이 험난한 진실과 정의 탐구를 맡은 집단이 민주사회에서 언론이다. 그래서 언론이 제구실을 다하는 사회는 민주사회요, 그렇지 못한 사회는 민주주의가 꽃폈다고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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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간 프로그램을 취재한 BBC 마크 달리 기자가 뇌물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전직 경찰을 취재하고 있다. 경찰은 모든 내용을 부인하며 취재를 거부했다. > |
어느 사회인들 진실과 정의를 찾는 언론이나 언론인이 없겠는가. 문제는 사회 전반의 운영원리로 이런 진실 추구 노력이 자리잡혀야 한다는 점이다. 영국에서는 흠잡을 데 없을 만큼 이런 풍토가 잘 조성돼 있다. 1996년 일간지 데일리 메일이 파헤치다 중단 된 것을 10년 만에 공영방송 BBC가 나섰고, 나머지 언론들도 BBC 방송을 계기로 인종차별과 뇌물이라는 숨막히는 장벽속의 진실을 찾기 위해 용감하게 공조한다. BBC를 비롯해 모든 신문 방송이 용의자들의 실명과 주소 가족상황까지 정확히 적어가며 사진도 큼직하게 실었다.
사건의 본질을 짚는 언론의 용기와 공조. 어느 사회든 반드시 이해관계는 엇갈리게 마련이다. 분명 영국사회에 상당수 인종 차별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엄존한다. 그들의 시각에서 보면 BBC나 나머지 언론의 보도는 심히 불쾌한 것이다. 소모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국익 훼손 행위로 비칠 수도 있다. 황우석 사태 당시 진실규명과 위선적인 국익이 충돌했을 때 한국언론이 보여 준 분열 양상. 과연 당시같은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실 추구가 가능한 것인가.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일에 한목소리를 내는 영국사회 언론의 한 단면, 그리고 이런 언론이 만들어내는 민주주의의 한 단면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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