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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우리 읍내'

안녕하세요?

요즘 여름을 타는지 피로가 쌓여서 공연을 보고도 글 한 줄 쓸 여유를 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동안 마음 한켠에 담고 있었던 공연 이야기, 짧게라도 해 보려 합니다.


국립극단이 공연 중인 연극 '우리 읍내'.

원작은 미국의 극작가 손튼 와일더의 퓰리처 수상작 'Our Town'입니다.

미국 중서부의 소읍을 배경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잔잔하게 그려낸, 현대 연극의 교과서로 불리는 작품입니다.

국립극단 예술감독 오태석 선생은 이 작품을 경기도 가평을 배경으로 한 향토색 짙은 이야기로 번안했습니다.

한동네에 영희라는 여자아이와 준기라는 남자아이가 살았습니다.

둘은 같은 학교에 다니고, 함께 성장하고, 사랑하고, 결혼합니다.

과수원을 꾸리며 살아가던 두 사람은 아이를 낳던 영희의 죽음으로 헤어지게 됩니다.

어찌 보면 밋밋하고 단순한 줄거리입니다.

무대는 소박합니다. 별 장식 없는 사다리와 탁자 같은 물건들이 무대 장치의 전부입니다.

소품도 없습니다. 배우들은 마임하듯, 빈 식탁에 앉아서 보이지 않는 밥을 먹고, 보이지 않는 두부를 건네주고, 받고, 합니다.

손튼 와일더의 '텅 빈 무대'는 배우의 연기에 관객을 보다 집중하게 하고, 상상력을 발휘해 빈 무대를 채우게 합니다. 

배우들은 모두 맨발입니다. 이 '맨발' 컨셉은 오태석 선생의 것입니다. 그야말로 '자연'이죠..

극은 무대감독 역할을 맡은 배우가 이끌어갑니다.

(다른 등장인물과 구별되는 무대 감독만 양말을 신었습니다.)

때로는 비약하고, 때로는 생략하며, 30년에 걸친 '우리 읍내'의 일상을 관객들에게 펼쳐보입니다.

무대 감독은 권성덕, 장민호, 두 원로배우가 번갈아 맡습니다.

마치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구수한 이야기처럼 들려 더욱 생생합니다.

어쩌면 무척 심심해 보이는 이 작품을 그야말로 '고전'으로 만드는 것은 이 단순한 줄거리 안에 촘촘하게 박혀 있는  '의미 있는 순간들'입니다.

특별한 것 없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생생한 감동을 발견하는 순간들입니다.

태어나고 자라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죽는, 삶의 순간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작품을 보면서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래서 교과서로 불리는 것이겠지요.

세상을 떠난 영희의 시각으로 애틋한 삶의 흔적을 보여주는 장면은, 아, 정말. 

"살면서 자기 삶을 제대로 깨닫는 인간이 있을까요? 매순간마다요?"

지나가면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아프도록 소중한 삶이란.

이 작품의 시연회를 본 지난 주 목요일, 새벽 '커튼콜' 출연 때문에 잠이 부족했던 날이라, 조금만 지루하면 잘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미처 예상치 않았던 감동 덕분에, 피로하긴 했지만, 졸리진 않았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오태석 선생을 만났습니다. 선생 역시 맨발이었습니다.

잘 봤다는 제 얘기에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더군요.

예전에 극단 '목화'에 취재하러 가서 자주 보던 웃음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교과서'로 불리는 만큼,  고등학교 연극반이나 대학의 연극 관련 학과, 서클에서 많이 하는 작품이랍니다.

국립극단에서 공연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국립극단을 맡은 선생은 이 작품을 통해 '기본 중의 기본'을 다시 짚어보고 싶었나 봅니다. .

선생은 '우리 읍내'를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예전 방학 때면 놀러가던 시골 외할머니댁 같은 정겨운 삶의 모습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사는 요즘 젊은이들이, 이 연극을 봤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저도 요즘 이 작품을 주변 사람들에게 권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대형 뮤지컬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심심한 작품일지 모르지만, 이 때문에 관객들은 더욱 상상력을 발휘하고, 이것저것 생각도 많이 하게 됩니다.

어쩌면 이게 다른 공연과 차별되는 연극의 매력인가 봅니다.

1938년 미국에서 초연된 이래,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공연되지 않았던 날이 하루도 없다고 할 정도로, 시공의 벽을 넘어 공감을 이끌어내는 원작의 힘.

그리고 여기에 한국적 빛깔을 입혀낸 재창조의 힘.

이런 공연이 있어, 행복합니다.   

(오태석 선생의 인터뷰를 제 블로그 http://ublog.sbs.co.kr/shkim0423에 올려놓겠습니다. 아 참, 이 작품을 창작 뮤지컬로 각색한 '우리 동네'도 대학로 나무와 물 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입니다. 지난 5월부터 공연됐는데, 관객 반응이 좋아 8월말까지 연장공연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같은 작품을 한국적으로 각색한 연극과 뮤지컬이 나란히 공연되고 있는 셈입니다. 뮤지컬도 보고 싶습니다. )

또 뵙겠습니다.  건강하게, 즐거운 여름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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