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와 프랑스가 다시 붙게 됐다. 2000년 '유로 2000 대회' 결승에서 맞붙은 지 6년 만이다. 그것도 유럽대회가 아닌 월드컵에서. 일요일이면 바로 그 2006 독일 월드컵 결승전이 전 세계 축구팬들을 열광시킬 참이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다.
통일국가 베를린 월드컵의 의미
베를린. 2차 세계 대전의 전범인 나찌 독일의 업보를 이어받아 동서 분단 상태로 44년을 고통 속에 살았던 분단의 상징이다. 마침내 1989년 동서를 가르던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면서 평화와 통일 독일의 상징으로 거듭 태어났다. 아직도 분단 상태인 우리 입장에서는 단순히 월드컵 축구를 넘어 만감이 교차한다. 전범국가도 아닌데...정작 아시아를 공포와 파괴의 아수라장으로 몰아넣었던 일본은 멀쩡한 채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피해 국가 한국이 남북으로 국토와 민족이 갈리는 비극을 겪었으니. 강대국의 이해에 묻혀 20세기 세계 역사의 최고 희생자가 된 한국. 분단에서 빚어진 온갖 고통을 지난 50년간 겪어야 했던 우리 입장에서 독일 월드컵은 남다르다. 그런 만큼 16강이라도 갔더라면...
|
|
| <런던 중심가 소호 지구의 프리쓰 거리에 있는 [바 이탈리아] 앞에 모인 이탈리아 팬들. ⓒ김문환> |
런던 중심가 소호 지구 이탈리아 응원단
분단 얘기는 여기서 접고 축구로 돌아가 보자. 이탈리아가 개최국 독일을 멋지게 극적으로 꺽으며 축구의 진수를, 명승부의 묘미를 한껏 선사했던 준결승 날인 7월 4일 밤. 런던은 온통 이탈리아 물결이었다. 다음 날인 5일자 석간 이브닝 스탠다드(Evening Standard)는 1면에 "런던이 이탈리아 물결로 기뻐 날뛰었다(London goes wild for Italy)"고 표현할 정도였다. 기자도 기쁨의 물결이 거세게 일던 그 현장에 함께 있었다. 우리의 서울 명동에 해당하는 지역이 런던은 소호(Soho)다. 우리의 명동에 차이나 타운이 있듯이 소호 한가운데는 서울과 비교도 안되는 거대한 규모의 차이나 타운이 자리한다. 그 옆으로 차이나 타운 만큼은 아니지만 이탈리아 타운이 있다. 올드 캄프톤 거리(Old Compton Street)와 프리쓰 거리(Frith Street)가 교차하는 바로 그 곳 사거리.
|
|
| <[바 이탈리아(Bar Italia)]의 상호. 이곳에서 거리쪽 창에 TV를 내걸어 거리 응원이 이뤄질수 있었다. ⓒ김문환> |
|
|
| 이탈리아 국기를 앙증맞게 얼굴에 그려 넣은 이탈리아 여인 ⓒ김문환 |
사거리 한 귀퉁이에 이탈리아 커피집 '네로'(Nero)가 있고 맞은 편이 맥주집 '바 이탈리아'(Bar Italia)다. 동쪽으로는 극장 메리 포핀스(Mary Poppins)다. 독일시간으로 저녁 7시, 영국 시간으로 저녁 8시 경기가 열리는데, 이미 7시부터 이탈리아인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8시에는 그리 넓지 않은 거리가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뤘다. 한눈에 이탈리아 인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영국이나 독일처럼 체구가 크지 않고 아담한 사람들. 특히 여자들이 그렇다. 남자들은 검은 빛이 감도는 머리결에 빚어 놓은 것처럼 잘생긴 얼굴들. 그들이 한데 어울려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
|
| [포르짜 아주리(Forza Azzurri). "힘내라 아주리"(Come on Azzurri)의 뜻이다. ⓒ김문환 |
"Forza Azzurri(Come on Azzurri, 힘내라 아주리)라고 쓴 현수막을 걸고, "이딸리아(Italia)"를 연호했다. '아주리'(Azzurri)라고 쓴 뒤 '이딸리아'를 연호하는 게 재미있는데...아주리는 베네치아가 있는, 다시 말해 이탈리아 반도와 그리스, 동유럽 사이의 바다 즉 아드리아해(海) 바닷물의 푸른 색을 상징한다. 이탈리아 축구 대표팀 유니폼이 이색을 따서 푸른 색이다. 그러고 보니 프랑스도 푸른 색 유니폼이다. 푸른색(blue) 옷 입은 사람들이란 뜻의 레 블뢰(Les Bleus)로 응원단을 부른다. 국가는 프랑스(France)지만 유니폼 상징은 레블뢰. 이탈리아도 유니폼 상징은 아주리.
|
|
| 정작 TV로 축구경기 중계는 보지도 못한채 앞사람의 환호에 따라 기계적으로 반응하며 응원하는 모습. ⓒ김문환 |
재미있는 것은 우리네 거리 응원은 TV를 보지만 런던 '바 이탈리아' 앞에서는 거의 TV를 보지 못하고 소리만 지르는 점이다. 이유는? 거리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지 않았다. 바 이탈리아(Bar Italia)에서 창문 위에 40인치 쯤 돼 보이는 TV 한대 걸어 놓은 것, 그게 전부다. 술집이 작아서 그 안에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없다. 응원단은 거리에 선 채 창문으로 비치는 작은 TV를 보며 이탈리아를 외쳐댄다. 뒤쪽에 선 사람은 사실 TV 속 축구는 커녕 TV도 잘 안 볼 수 없다. 다른 이탈리아 술집이나 영국계 술집으로 가면 앉아서 경기를 즐길 수 있건만 자기들끼리 모여 응원하는 맛에 정작 축구 내용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마침내 첫골 환호하는 이탈리아 응원단
팽팽하던 균형을 깨고 첫 골이 터진 순간 바 이탈리아(Bar Italia) 앞에는 다음날 새벽 런던에 몰아친 천둥번개와 같은 함성이 미리 쏟아졌다. 친구끼리 부둥켜안고, 연인끼리 힘차게 포옹하며 덩달아 진한 키스도 나누고, 옷을 벗어 던지고, 이탈리아 국기를 흔들며 광란에 가까운 환호를 올렸다.
|
|
| 어둠이 내리고 마침내 첫골이 터지면서 환호하는 이탈리아 응원단. ⓒ김문환 |
전후반 90분에 연장 30분을 더해 120분 혈투가 끝나가던 119분째 첫 골을 넣은 뒤 고개를 가로젓고 뛰며 환호하던 선수 파비오 그로소(Fabio Grosso)나 한 때 이탈리아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군림했지만, 지금은 노병이 돼 벤치를 지키다 연장전에 교체돼 121분째 추가골을 터트린 델 삐에로(Del Piero)의 기쁨보다 더 컸을까마는 축구를 해 본 누구나 이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파비오 그로소의 골 세레모니는 1982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스트라이커 파울로 로시가 골을 터트리고 고개를 가로 저으며 뛰던 모습을 연상시켰는데, 선배에 대한 예우인가? 대를 잇는 전통의 소중함인가?
|
|
| 이탈리아인들은 국기를 흔들며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김문환 |
프랑스와 포르투칼의 4강전도 명승부였다. 특히 당대 최고의 미드필더인 지단과 피고라는 걸출한 스타 플레이어의 맞대결에 앙리와 호나우도라는 역시 당대 둘째가라면 서러울 최고의 테크니션이 맞붙은 경기여서 독일-이탈리아전 못지않게 세계 축구팬을 매료시켰다. 그러나, 연장 후반 종료 직전 2골을 터트리며 극적으로 경기를 마무리 지은 독일-이탈리아 경기는 아마 월드컵 역사에서 다시 보기 힘든 4강전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그렇게 극적인 4강전의 상대팀 독일도 있고, 4강에 오른 다른 프랑스와 포르투칼도 있지만 이탈리아 인들 만큼 멀리 이국 땅 런던에서 열광적인 응원을 보내지는 않았다.
|
|
| 기쁨의 행진을 하는 이탈리아 인들. ⓒ김문환 |
여기서 말머리를 돌려보자. 사실, 우리 한국의 일부 축구팬들은 이탈리아에 대해 좋지않은 기억을 갖고 있는 것 같다. 2002년 서울서 열린 16강 전의 칙칙한 경험 때문이리라. 그러나, 런던에서 보여준 열광적인 응원을 보면 둘이 닮은 꼴이다. 비록 16강 전에서 스위스에 아깝게 패해 운명이 갈리기는 했지만, 우리가 토고를 이겼을 때, 프랑스와 비겼을 때 런던의 한국인들이 보여준 응원 열기 역시 이에 못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난 뒤 런던 중심가 트라팔가 광장(넬슨이 나폴레옹을 상대로 승리한 트라팔가 해전을 기념한 광장. 멋진 석조건물의 국립 미술관 앞으로 드넓게 펼쳐진 런던 중심가)에 모인 한국인들이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한 장면은 이탈리아의 열광적인 환호와 다르지 않았다. 물론 우리나 이탈리아나 타국땅 런던에서 불상사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
|
| 한국팀 16강 좌절이란 운명의 승부가 갈린 스위스전. 선수들 최종 연습경기를 펼치던 독일 하노버 경기장에서 SBS 동료들. ⓒ김문환 |
응원에서도 비슷한 점이 드러났지만, 이탈리아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리랑 닮은 꼴이다. 일단 나라부터 기다란 반도요. 국민 기질도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를 닮아 성격이 다정다감하고, 적극적이며 활달하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체구도 서유럽이나 북유럽 사람처럼 장대하지 않고 아담한 경우가 많다. 경제 수준도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는 좀 쳐져 우리랑 더 어울린다. 없는 집끼리 친하게 지내자는 취지는 아니지만...유구한 역사와 전통 역시 우리랑 맥이 닿는다. 신라 무덤에서 로마의 유리그릇이 나오지 않았던가!!! 유리는 로마의 상류층이 사용하던 고급 제품이었다. 그게 우리 왕실 무덤에 매장돼 있으니... 로마인들과 교류하던 서역의 상인들이 프랑스, 영국은 물론 유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