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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통신] 영국축구와 훌리건

런던의 무더위와 월드컵 열기 

영국과 포르투칼의 8강전이 열리던 7월 1일. 영국은 여름 한철 한 두달 반짝 햇빛 나는 황금의 태양주간, 그 한가운데 있었다. 기온도 이례적으로 31도 가까웠다. 구름 한점 없이 맑은 날이 사나흘 계속되면서 한여름 땡볕에 누구나 숨을 헐떡였다. 물론 습도가 낮아 응달에 있으면 무덥지 않고, 저녁에는 다시 선선한 바람이 불어 우리네 열대야나 불쾌지수 높은 후덥지근, 끈적끈적한 더위랑은 차원이 다르지만... 아무튼 6월 30일자 석간 타블로이드판 이브닝 스탠다드(Evening Standard)가 머릿기사 제목으로 "A ROASTING FOR ENGLAND(달아오르는 영국)"라고 표현하면서 "...not the World Cup result (hopefully) but the start of a 32C five-day heatwave(희망 섞인 월드컵 결과가 아니라 한낮 최고 32도를 오르내리는 찜통 더위의 시작)"라고 표현한데서 알 수 있듯이 영국은 두 가지 서로 다른 각도에서 달아 올랐었다. 8강까지 진출하며 고조되던 월드컵 축구와 여름 무더위.

 

<런던 교외 킹스턴시 뉴몰든 지역의 맥주집 파운틴 펍(fountain pub). 포르투칼과 8강전이 열리던 날 정경. ⓒ김문환>  

영국인들의 축구사랑은 남다르다. 축구 종주국이라서 그런가? 포르투칼에 8강전에서 아갑게 패하고 두밤을 잤지만, 아직도 TV에서 응원캠프를 철수하지 않은 팬들 연결하며 "disappointed fan(실망한 팬)"으로 자막을 단 팬 인터뷰를 내보낼 정도다. 영국 축구팬들은 보통 커다란 맥주집에 모인다. 우리로 치면 호프집. 이유는 그런것 아니겠는가? 여럿이 모여 보면 더 흥겨운 법. 혼자 즐기는 축제는 없다.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는 스타 플레이어들의 신기(神技)에 가까운 기량을, 응원하는 팀의 골 맛을, 그래서 승리의 기쁨을 정겨운 친구들과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 살아가는 기쁨 가운데 하나로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축구팬들이 모이는 맥주집에 에어콘이 거의 없는 점. 그 흔한 천장에 단 선풍기도 보이지 않는다. 무더운 여름날씨가 오래 지속되지 않아 아예 에어콘이란 것을 설치하지 않은 업소가 많아서 그런 것인지 절약정신이 강한 것인지. 아무튼 없다.

에어콘 없는 호프집서 열광

30도를 넘어 에어콘 없으면 한국의 경우 손님들. 땀을 비오듯 흘리며 아우성이고, 식당주인 혼쭐 나고, 머 그런 풍경이 그려진다. 이곳 사람들은 익숙한 일인지 에어컨 타령도 안하고 마냥 즐거워만 한다. 기자가 태극무늬 부채를 부치며 더위를 쫓고 있었더니 신기해 할 정도다. 맥주집에 모인 사람들은 젊은축이 많지만, 아저씨 아줌마도 적지 않다. 발디딜 틈도 없이 모여 서서 열광적으로 응원한다. 앉을 의자도 많지 않고 경기 내내 서서 구경한다. 2파운드 정도 하는 5백cc 생맥주 마시면서 경기 자체를 즐기는데 골 넣으면 날아갈 듯 환호하고, 경기에 이기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자동차 경적 울리고 퍼레이드하며 즐거워한다. 골을 먹으면 탄식하고, 끝내 지면 슬퍼하며 눈물 흘리기도 한다. 대개는 이 정도 까지다. 이는 필부필부(匹夫匹婦)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응원문화의 하나로 지극히 자연스럽고 또, 인지상정(人之常情)의 하나로 예쁘게 봐줄 수 있다.

<맥주집을 가득 메우고 서있는 영국 팬들. 포르투칼과 8강전을 보기 위해 모인 팬들이다. ⓒ김문환>  

그러나, 언제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지만, 도가 지나치면 사고가 나기 마련.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이렇게 적당히 즐기는 측면에서 축구를 사랑하지만, 5백cc 한잔이 두잔으로. 석잔을 넘어 넉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 상황이 달라진다. 축구 관전과 응원의 차원을 벗어난다. 술에 취해 광기로 빠져드는것. 술취한다고 다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듯이 여기서도 꼭 일부가 문제다.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지고 이기는 것과도 관계없다. 일부에서 오해하듯 패하면 그러는 게 아니라 이겨도 그렇다. 술에 취해 집기를 부수고, 시비를 걸어 싸우기도 하며 거리를 점거한 채 경찰과 대치하기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번 월드컵 때 토고에 승리하고 프랑스와 비겼을 때 자동차를 흔들어 대고 광적인 행동을 벌인 사람들이 문제가 됐다. 져서 그런 게 아니다. 그냥 술에 취해 이성이 흔들린 사람들의 행동인 것이다. 참고로, 거리응원이란 것이 없던 유럽에서 2006 월드컵 때 거리응원이 생겨났다. 2002 한국 월드컵에서 한국인들이 펼친 인상적인 거리응원이 비록 한국처럼 대규모는 아니라 하더라도 축구 종주국 영국과 축구의 본고장 유럽에까지 일부 전파된 점은 놀랍다. 역시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 답다.  

훌리건 용어는 축구와 관계없이 출발

아무튼 축구 경기 뒤 난폭한 행동을 일삼는 사람들을 훌리건(hooligan)이라고 부른다. 물론 축구 종주국 답게 영국에서 처음 생긴 말이다. 이 단어를 우리가 잘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영국문화나 축구, 유럽의 축구문화를 자칫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훌리건이란 말은 '축구장 난동꾼'의 뜻이 아니다. '거리에서 싸움을 일삼는 불량배'를 가리키는 말로 옥스퍼드 대학의 한 자료는 1898년 신문에서 '훌리건(hooligan)'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고 전한다. 축구와 관계없이 시작된 말이다. 단어의 유래에 대해서는 훌리 갱(Hooley's gang)이라는 말이 바뀌었다거나, 아일랜드 출신의 무뢰한 패트릭 훌리한(Patrick Houlihan)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2파운드 정도하는 생맥주 5백 한잔씩을 마시며 관전하다 보면 점점 취기가 오른다.ⓒ김문환>  

축구장에서 관중들의 난폭한 행동은 이미 19c에도 있었다. 그런데, 축구장의 난폭한 행동과 훌리건이란 말을 결합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0c 후반 들어서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맥락이 스며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을 승전으로 이끌었던 영국은 총선에서 윈스턴 처칠의 보수당을 두고 노동당을 선택했다. 우리나이로 92살을 산 전쟁 수상 처칠이 진보적인 노동당에 패배한 것이다. 정권을 잡은 노동당은 전쟁에 시달린 국민들에게 평안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을 제안하며 새로운 제도의 슬로건으로 그 유명한 "요람(搖籃)에서 무덤까지(from the cradle to the grave)"를 내세웠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국가가 복지를 책임지겠다는 야심찬 구상이었다. 완벽한 사회보장제도의 실시를 주장한 것인데, 이런 원칙이 미국 문화권을 제외한 서유럽 국가 전반에 퍼져 오늘날까지 국가의 이상적인 목표가 됐다. 물론 나라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고, 여러 문제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훌리건은 정치,사회적인 요인서 유래

그러나, 집권 노동당이 물러나고 다시 보수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1960년대 과도한 재정부담을 이유로 복지정책 축소에 나섰다. 하층민들에게 큰 타격이었다. 축구는 주로 하층 서민이나 실업자같은 사람들이 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이 날로 심화되는 빈부격차나 복지축소의 보수당 정권 정책에 불만을 품어오다, 축구장에서 그 감정을 폭발시킨 것이다. 응원하는 팀이 진 것을 기회로 과격한 행동을 일삼게 됐다. 정치적 불만을 축구장에서 응원팀이 패배할 때 해소한 셈이다. 동대문서 뺨을 맞고 한강서 화풀이라고 할까? 

<이 맥주집에는 아예 영국 국기와 한국의 태극기를 함께 걸어놓고 영업한다. ⓒ김문환>  

영국에서 현대적 의미의 훌리건 탄생의미는 이렇게 정치적인 사회적인 요인이 내포돼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축구 자체가 신체 접촉이 많고 과격해서 광적인 응원이 생긴다는 주장은 너무 피상적인 접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태권도나 복싱 경기에서는 더 큰 난동이 일어나야 한다. 80년대 한국서 권위주의 군부정권의 3S 정책과 함께 놓고 보면 스포츠를 단순히 스포츠로 바라봐서는 본질을 놓칠 수 있음이 더 분명해 진다.

본질 빠진 채 겉모습만 남은 히피문화와 비슷

196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전쟁을 반대하고 인간성을 회복하며 평화롭게 살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강조하며 시작돼 전세계로 퍼졌던 히피(hippie)의 저항 문화가 고상한 정신은 쏙 빠진 채 후세로 가면서 퇴폐문화로 변질되듯 정치적 성격을 띠었던 축구장 불만 폭발이 차츰 난동 그 자체로 변질돼 버렸다. 본질 대신 드러나는 겉모습만 남은 본말전도(本末轉倒) 현상. 1963년 리버풀에서 더 콥(The Kop), 1970년대 켄싱턴, 첼시 팬들의 헤드헌터스(Headhunters), 웨스트 햄의 인터 시티 펌(Inter City Firm) 등의 응원단이 생기면서 과격성은 더욱 거세졌다.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원정 응원이 성행하고 이 과정에서 충돌이 빚어지곤 했다. 축구장의 폭력문제가 사회문제로 비화된 된 것이다.

 

<한국전을 중계한다고 적어놓은 안내 간판. ⓒ김문환>  

사실 운동경기 뒤 난동이 영국만의 일이겠는가? 기자가 어릴 적 8.15 광복절을 맞아 읍민대항 체육대회 할 때 해질녘이면 막걸리 거나해진 아저씨들이 꼭 동네 싸움을 일으키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인간이 사는 사회에서 대결이 있는 곳에선 언제든 다툼의 소지가 있기 마련이다. 이것을 절제하는 이성의 힘이 위축될 때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쉽게 예측 가능하다. 나쁜 것은 빠르게 전파되는 경우가 많다. 축구장 난동도 세계적으로 퍼졌다. 그렇잖아도 스포츠라는 게 응원하는 사람의 관심과 열기에 따라 다툼의 소지가 큰데, 영국서 큰 본보기를 봤으니... 물론 우리도 붉은 악마가 있지만, 과격성과는 거리가 멀고, 거리응원에 나온 일부 술취한 사람들의 행동이듯, 대부분 영국인들의 응원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은 축구자체를 즐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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