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요즘 뜨거운 '월드컵 열기'에 가려 주목받고 못하고 있긴 하지만, 일본의 기업형 극단 '시키'의 한국 진출을 놓고 공연계가 시끌시끌합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그동안 취재하면서 든 생각들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공연 자체에 대한 감상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정치적일 수도, 경제적일 수도 있는 이런 사안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 블로그(http://ublog.sbs.co.kr/shkim0423)에도 올렸던 글입니다.
일본의 극단 '시키'가 지난 7일, 오는 10월 개관하는 국내 첫 뮤지컬 전용극장 샤롯데 극장 개관작으로 디즈니 뮤지컬 '라이온 킹'을 공연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날 '시키'의 아사리 게이타 대표는 '시키'의 공연은 세 가지 목표로 진행된다고 밝혔다. 첫째, 한국인 배우를 기용해 한국 관객들을 감동시킨다. 둘째, 스타 캐스팅이 아니라 실력 위주 캐스팅 관행을 정착시킨다. 셋째, 현재 거품이 있는 한국 뮤지컬 티켓 가격을 적절한 수준으로 낮춘다.
고 차범석 선생의 빈소에 다녀오는 길이라며 검은 색 넥타이 차림으로 나온 아사리 게이타 대표는 한국의 공연계와 맺어온 친분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한국의 뮤지컬 제작자들과 '시키'는 적이 아니라 친구라고 강조했다.
이번 공연에서 수익이 난다면 모두 한국에 재투자할 예정이며, 라이온 킹 이후에는 해외 뮤지컬은 공연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시키의 한국 진출은 돈이 목적이 아니라 순수한 문화 교류 차원에서 이뤄질 것이며, 시키의 한국인 배우들에게 설 만한 무대를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라고도 말했다.
'라이온 킹' 공연 계획이 발표되자, 뮤지컬 팬들의 기대도 커지고 있다. 특히 '시키'가 뮤지컬 티켓 가격의 합리화를 주장하며 최고가를 9만원으로 책정했다는 소식에 관심이 집중됐다. 해외 대형 뮤지컬들의 가격이 대개 10만원대를 호가하는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기사들이 '시키'의 한국 진출을 계기로 우리나라 뮤지컬 티켓의 '거품'이 빠질지 여부에 초점을 맞췄다.
뮤지컬 제작자들과 배우들로 구성된 한국 뮤지컬 협회는 다음날 반대 성명을 냈다. '시키'가 국내 첫 뮤지컬 극장을 사실상 독점하는 셈이라며, 이것은 아사리 게이타 대표가 주장하는 '문화 교류'가 아니라고 밝혔다. 또 일본 시장에 진출하는 한국 뮤지컬들은, '시키'처럼 전용극장에서 무기한 공연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단기간 공연에 그치고 마는 현실인데도, 이를 단순비교해서 '한국 극단도 일본에서 공연하는 마당에 일본 극단 '시키'의 한국 공연을 반대할 수 없다'고 하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뮤지컬 협회 소속 배우들의 '시키' 작품 출연 거부 유도, 롯데 제품 불매 운동 같은 강도 높은 반대 운동을 벌이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찬반이 엇갈리고는 있지만, 현재는 시키의 '라이온 킹' 공연에 대해 환영하는 뮤지컬 팬들이 많은 것 같아 보인다. '좋은 상품을 싸게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니, 이른바 '공연 소비자'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기도 하다. 또 이제야말로 '시키'의 진출과 함께 한국 뮤지컬 시장에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돼, 어중이 떠중이 난립하던 뮤지컬 시장이 건전하게 자리잡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그러나 나는 '시키'의 한국 진출을 마냥 환영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시키'의 한국 진출을 찬성하는 입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것이어서, 찬반 중 어느 한 쪽을 택하라면 자신있는 대답을 내놓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결국 49 대 51의 비율로라도, 나는 '시키'의 한국 진출을 달가와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있다.
사실 제작발표회에서 나온 아사리 게이타 대표의 이야기대로라면, 걱정할 일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한국의 뮤지컬 산업 발전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 아닌가. 내가 '극단이 공연을 하는 것은 결국 이익을 내기 위해서인데, 한국 시장에서 이익을 바라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공연을 하는 것인가?'라고 '뻔한' 질문을 했을 때도, 아사리 게이타 대표는 자신은 경제인이 아니라, '예술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나는 '시키'측이 '라이온 킹'의 공연은 철저하게 '문화교류'로 진행한다며 '순수한 의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 도리어 어색했다. 내가 의심이 너무 많은 것인가. 나는 이 날 제작발표회에 갔다와서, '49 대 51의 비율로라도, 시키의 한국 진출을 달가와하지 않는 쪽으로' 내 입장을 정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사리 게이타 대표는 한국의 뮤지컬 티켓 값이 비싼 것은 한국에 뮤지컬 전용 극장이 없어서가 아니라, 산업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고, 현재 스타 위주로 가는 한국의 캐스팅 시스템을 실력 위주로 바꾸고 싶다고도 했다.
아사리 게이타 대표가 지적한 한국 뮤지컬 산업 구조의 문제는, 왜 한국 뮤지컬 산업 구조에 대해 일본 극단 대표가 이렇게 걱정해 주느냐는 문제는 차치하고, 틀린 말은 아니다. 뮤지컬 산업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거품이 많이 끼어 제작비가 상당히 올라버렸고, 이게 관객의 부담으로 전가된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티켓 가격과 전용극장의 유무가 관계 없다는 논리는 이해가 안 간다. 1년 이상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느긋하게 손익 분기점을 책정할 수 있는 공연과, 몇 달 안에 수익을 내야 하는 대관 공연장에서 하는 공연의 티켓 가격이 같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전용극장이 있더라도 한국 뮤지컬 산업은 구조에 문제가 있어서 티켓 가격을 내릴 수 없고, '시키'만 가능하다는 얘기인가?
'시키'의 한국 진출을 둘러싼 논란은 나에게 '스크린 쿼터' 를 둘러싼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물론 사안은 서로 다르다. 그러나 '뮤지컬'이나 '영화'를 하나의 '상품'으로 본다는 점. 요즘 같은 '자유 무역' 시대, 글로벌 시대, 상품 교역에 무슨 '장벽'을 둘 수 있겠느냐는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아 보인다.
그동안 우리나라 영화 우리 국민들이 많이 봐줘서 돈을 많이 벌게 해 줬는데, (또는, 극소수이긴 하지만 일부 영화인들에게는 '지나치게' 많은 돈을 벌게 해 줬는데) 이젠 좀 제대로 경쟁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뮤지컬 시장에서도 비슷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뮤지컬 협회의 반대 입장에 비판적인 여론이 많은 것이 그 증거다.
뮤지컬 협회의 반대 성명, 나도 읽어보니 감정에 치우쳐 유치해 보이기까지 하는 게 사실이다. 시키가 2년 전 한국 진출을 유보했을 때, 언젠가는 시키가 들어올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는데, 그 때부터 대비하지 지금까지 밥그릇 챙기기만 하다가, 이제 와서 민족주의에 기대려고 하는 것이냐는 비판도 맞는 말이다. 맞다. 우리나라 뮤지컬 제작자들, 잘못한 것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키'가 이런 식으로 한국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두 팔 벌려 환영하기도 좀 그렇다.
시키가 한국내 여론 악화로 시장 진출을 유보했던 2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2년만에 이렇게 상황이 바뀐 것은,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흐름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위해' 시장은 완전히 열려야 한다는, 혹은 이게 싫?.
미국이 그토록 줄기차게 요구해 오던 한미 FTA의 선결 조건, '스크린 쿼터 축소'라는 '결단'을 한국 정부가 갑자기, 어쩌면 너무 쉽게, 내려버렸지만, 예전 같은 저항은 없었다. 스크린 쿼터 축소 반대 운동에 대한 관심은 예전 같지 않다. 심지어는 영화인들의 '스크린 쿼터' 축소 운동에 대해 같은 문화계 내에서도 '자기 밥그릇 챙기기'라며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거대 자본을 앞세운 외국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우리 시장에 진출하면 힘겨운 '공정 경쟁(실제로 '공정'한지는 잘 모르겠지?연계 사람들이 다 '예술'에만 신경써서인지, 일찍부터 스크린 쿼터 투쟁으로 '단련'됐던 영화계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순진했던 게 아닌가 싶다. 세속적인 것에 연연하지 않고, 세상과 담 쌓고 '예술만 하겠다'는 태도는, 통하기 어려운 시대다. 어쩌면 '생존'에만 신경 쓰다 보니 폭넓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시키'의 제작발표회에 참석했던 우리 공연계의 한 원로는 기자들의 질문이 아사리 게이타 대표에게 집중되는 것을 보고, '사안이 간단치 않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고 토로했는데, 나는 이 말을 듣고 답답했다.)
사실 '시키'의 '라이온 킹' 공연과 관련해, 공연계에서 직접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많이 무력화되긴 했지만 영화계의 '스크린 쿼터' 같은 보호 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뮤지컬 협회가 담합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출연 거부'를 유도하겠다는 대응방침을 밝히긴 했지만, 제작자들마다 모두 입장이 다른 상황이라 현실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결국 우리나라 뮤지컬 제작자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대응책이 남을 뿐이다.
일본 내 매출액만으로 한국 뮤지컬 산업 전체 규모의 몇 배에 달하는 '시키'의 진출이 한국 뮤지컬 산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희망 섞인 전망을 하는 사람들도 꽤 있지만, 나는 최소한 경계심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뮤지컬 제작자가 아닌 일반 관객들이라도.
최악의 경우, 한국인 배우들과 일부 스태프들의 '고용 창출'이라는, 약간의 효과가 있긴 하겠지만, 전체적으로 외국 자본에 종속되는 작품들이 우리 뮤지컬 시장의 주류가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것은 외국 기업이 우리나라에 공장을 세워 한국인 근로자를 고용해 상품을 생산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가 될 것이다. '공연'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우려가 기우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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